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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Oct 13. 2022

선택(단편)

이번에는 소설이다.

각오는 하고 있었다. 힘들 거라는 거. 모든 것이 다 달라질 거라는 거. 하지만 각오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각오하고 예상하고 준비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왜?”


“보통의 엄마는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축하해 주지 않아?”


“그런가?”


“근데 엄마는 왜 왜라고 물어?”


“안 해도 되니까.”


“말리는 거야?”


“아니. 말리지 않아. 다만, 너의 선택이라는 말을 해주는 거야.”


알고 있었다. 결혼은 선택이라는 거. 한 번도 내가 꼭 결혼을 하겠다거나, 결혼할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잘 준비해서 취업을 했다. 그리고 좋아하던 취미 동호회에서 말이 잘 통하는 꽤 근사한 남자를 만났다. 2년의 연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미래가 생겼다. 결혼이 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결혼을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태어났다.


내가 결혼을 한다는 말에 “왜?”라는 질문을 했던 엄마도 내가 임신을 했을 때는 축하를 해주었다. 주변에서 먼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는 친구들처럼 겁을 주지도 않았고, 마냥 호들갑을 떨며 축하만 해주지도 않았다.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현실적인 준비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우선 40분이나 떨어져 있던 엄마와 아빠의 집을 팔고, 우리 아파트의 옆 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올타임으로 일하시던 문화센터 강사일을 스스로 파트타임으로 돌리셨다. 엄마의 그런 선택들은 나에게 미리 상의를 하거나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었고, 스스로 선택하시고는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는 했다.


“너네 옆 동에 집이 나왔길래 이사하기로 했어.”


“강의를 좀 줄였어. 일주일에 2~3번만 가면 돼. 하루에 한 4시간씩.”


하지만 그런 엄마의 무심한 선택들이 모두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와 내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는 순간부터 엄마는 나와 함께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갑상선에서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육아는 나의 모든 것을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슬슬 갉아먹던 나의 멘털부터 시작해서, 새벽 수유는 나의 밤잠을 갉아먹었고, 하루 종일 나를 찾아 울어 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나의 손발을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엄마가 함께해 주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나의 아이를 안아주곤 했다.


아이의 돌잔치를 준비하던 때, 엄마의 병을 알게 되었다. 전부터 좋지 않았던 갑상선이 결국은 터지고야 만 것이라고 말을 하는 엄마였지만, 내 마음은 내가 엄마의 갑상선을 갉아먹어버린 기분이었다.


“요즘 갑상선 암은 암도 아니래. 너무 흔하고 완치도 잘 돼서, 암보험에서도 빠졌다더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애나 잘 보고 있어. 엄마 금방 낫고 올게.”


엄마는 동네 마트를 가듯이 그렇게 가볍게 병원으로 향했고, 그렇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돌이 지난 아이를 안고 엄마를 보내면서 나는 엄마의 “왜?”라는 질문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래서 그런 말을 한 걸까? 결혼은 하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던 그날로 나는 밤마다 되돌아갔다.


“미안해. 결혼 안 할게”


아무리 꿈에서 대답을 바꾸고, 선택을 되돌려도 눈을 뜨면, 아이가 나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에게 결혼을 마음먹게 한 그 근사한 남자는 어느새 가장이라는 무게로 삶의 굴레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던 카메라들은 어느새 아이의 유모차가 되었고, 카시트가 되었다. 실제로 아이는 나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내를 떠나보낸 아빠는 여전히 우리 집 옆 동에 살고 계신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아빠는 엄마가 나와 육아를 함께 할 때도, 교직에 있을 때부터 이어오던 봉사활동과 조기축구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셨지만, 엄마가 떠나고 나자, 엄마처럼 또 스스로 정리를 해버리셨다.


“내가 이제 자주 올 테니까. 너무 걱정마라.”


“싫어.”


“뭐?”


“싫다고. 아빠 그냥 봉사활동해. 조기 축구도 하고, 애가 뭐라고 아빠까지 매달려.”


“그게 무슨 말이니.”


“됐어. 여하튼 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빠는 아빠 삶이나 챙겨요. 가끔 이렇게 와서 밥이나 먹고 가고.”


말이 독해졌다. 남편은 육아의 스트레스로 그런 거라고.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만 쎄진거라고 나를 포장하지만, 아니다. 나는 마음이 더 독해졌다. 아이는 너무 예쁘다. 지금도 이 아이만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천국인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아이가 울고, 나에게 매달리고, 아이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지옥 불에 앉아 천국을 구경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어느 밤,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온 남편의 팔을 잡고 펑펑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한 시간을 울기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진이 빠져버린 나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엄마.”


“왜?”


“엄마. 왜라는 말 하지 마. 나 무서워. 미안하단 말이야.”


“왜?”


“나 때문이잖아. 엄마가 거기 있는 거. 나 때문이잖아.”


“아닌 거 알잖아.”


“아닌 거 아는데, 맞는 거 같은 걸 어떻게 해.”


“아니야. 너 때문이 아야. 나 때문이지.”


“왜?”


꿈속에서 만난 엄마는 이해하지 못할 말만 하고 있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 엄마는 나를 말없이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결혼한 거. 아이를 낳은 거. 후회하니?”


나는 엄마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너무 예쁘고, 소중한 존재가 나에게 온 것이지만, 그로 인해 없어지고 사라진 것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너무 그리웠다. 엄마처럼. 그래서 엄마의 질문에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되돌리고 싶어? 그럴 수 있다면?”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후회하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해도, 되돌릴 거냐는 질문에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어. 되돌리기에는 내가 너무 사랑해. 내가 너무.”


“만약에 엄마가 잠시 아기를 봐준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아?”


“진짜? 좋지.”


“그럼 뭘 하고 싶은데?”


“글쎄.. 너무 많아서 오히려 생각이 안 나. 그냥 그 생각을 하는 거 만으로도 너무 설레.”


엄마는 나의 대답에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나에게 말했다.


“잘 들어. 네가 이 잠에서 깨면 너에게는 아이가 없을 거야. 결혼도 하지 않았을 거고. 그냥 온전히 너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어 있을 거야. 대신 걱정은 하지 마. 슬퍼할 필요도 없어. 엄마만 믿으면 돼. 아이는 엄마에게 있는 거고, 엄마는 네가 아이가 없는 삶을 사는 동안 여기서 잠시 네 아이를 대신 봐주는 것뿐이니까.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봐줄지는 네가 정하는 거야. 그저 네가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잠이 들면 엄마가 오늘처럼 찾아와서 모든 걸 다 되돌려 놓을 거니까.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어. 시간을 소중히 써야 해. 잘 생각해서, 무엇들이 그리웠는지. 무엇이 제일 하고 싶었는지. 네 마음에 따라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그 안에서 머물 수도 있겠지만, 잊지 마. 넌 분명히 다시 돌아오게 될 거야. 그러니까 시간을 소중히 써야 해. 알았지?”


“어. 알았어.”


꿈속에서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저 꿈일 거라고, 너무 피곤해서 복잡한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정말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말했던 그 삶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타임리스 같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삶이었지만, 나에게 남편과 아이가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 깨는 순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전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한 번도 이렇게 늦게까지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내 의지로 잠에서 깨고, 잠에서 깨고 나서도 그대로 침대에서 뒹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나는 그렇게 침대에 누워 오전 시간을 보냈다. 이 삶에서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미루고 미뤘던 휴가를 쓰는 중이었다. 우선 5일의 하계휴가를 올려놓은 상태였지만, 남아 있는 연차가 15개나 남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쉴 수 있었고, 그마저도 곧 해가 바뀌기 때문에 다시 이어서 내년의 연차를 쓸 수도 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나는 얼마든지 이 삶을 더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우선 침대에서 나와 식탁에 앉았다. 집에 있는 캡슐커피와 토스트로 간단히 허기를 채울까도 생각을 했지만,. 시간을 소중하게 쓰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천천히 샤워를 한 나는, 제일 아끼는 롱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 위에 근사한 코트까지 걸친 나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쇼핑몰로 향했다. 1층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테라스에서 에그 베네딕트와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켰고, 시계를 보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브런치를 즐겼다. 때마침, 오랫동안 육아를 핑계로 보지 못했던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한참을 기분 좋게 수다를 떨었고, 오늘 밤에 바로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그 쇼핑몰을 한 바퀴 둘러보며 쇼핑을 하고, 그 안에 있는 영화관을 예약해서 혼자 영화도 한편 봤다. 그러고도 남은 오후의 시간은 약속 장소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산 후,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해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것은 엄마의 “왜?”라는 질문이었다. 이렇게 나로서 충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데, 나는 왜 결혼을 하고, 나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아이라는 존재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잠깐씩 의식의 버퍼링이 걸리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애써 이성의 줄을 잡고, 나의 사고를 합리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근사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아주 근사했고, 너무 즐거웠다. 임신의 기간과 수유의 기간 동안 참아야 했던 와인은 혼자서 좋아하는 한 병을 다 비울 정도로 원 없이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시간이 흐르고 나니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잠들기 전에 엄마의 말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서둘러 잠에 들어 버렸다.


다음 날도 나의 삶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람시계 따위와는 상관없이 내 눈이 떠지는 순간에 잠에서 깼고, 마치 엄마의 말이 성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을 소중하게 쓰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통해 통장에 두둑한 잔고를 확인할 수 있었고, 고민도 하지 않고 간단한 손가방만을 챙긴 채, 공항으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일. 예약도 하지 않고, 항공사 부스로 가서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엄마의 꿈으로 인해 달라진 현실이었지만, 오히려 지금의 삶이 더 꿈만 같았다. 나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휴양지에서 신혼여행 때보다 신나는 시간들을 보냈고, 비록 너는 분명히 다시 돌아갈 거라는 엄마의 말이 걸려서 근사한 로맨스는 포기했지만, 혼자서도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을 선택의 고민을 잊고자 술에 취해 잠이 들었고, 그렇게 엄마가 선물해 준 새로운 삶을 미련하게 잡고 있었다. 이상하게 술에 취하지 않던 그날까지 말이다.


와인을 3병이나 마셨다. 룸서비스를 통해 근사한 안주도 시켰지만, 불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와인만 4번째 주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4번째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내가 술에 취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가 보고 싶다.


지금의 삶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냈는지 세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어느새 오기를 부리듯이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시간에 상관없이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보고 싶어.


나는 4번째 와인을 병째 입으로 가져갔다. 쉬지 않고 반 병의 와인을 마신 나는 말없이 호텔의 방을 돌아봤다. 처음에 들어와서 감탄하던 근사한 스위트 룸은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멍하니 앉아 마신 와인만큼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바닥에 굴러 다니는 빈 와인병을 보면서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엄마. 나 돌아갈래요…”


눈을 뜨니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나를 안아줬다.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나는 또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운 뒤에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가 나를 보며 웃고 계셨다.


“잘 다녀왔니?”


“어.”


“어땠어?”


“시시했어.”


“왜?”


“몰라.”


“알잖아.”


“맞아. 알아. 고작이었어. 고작.”


나는 다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 몸에 흐를 눈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엄마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고작 늦잠이더라. 내가 아이와 바꾼 시간에 하고 있는 것이, 고작 늦잠이고, 고작 커피를 마시는 거고, 고작 영화를 보는 거고, 고작 쇼핑을 하는 거였어. 고작. 아이가 내 삶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 아이만 없다면 엄청 자유로워지고 다시 화려한 삶이 펼쳐지고, 꿈같은 시간들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결국 겨우 낮잠을 자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걸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 알아.. 엄마도..”


“그런데 더 바보 같은 건,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거야. 그렇게 별 것도 아닌 것들을 붙잡고 있느라, 이렇게 오래 걸렸던 거야. 우리 아가를 만나러 오는데..”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눈이 왠지 모르게 너무 슬퍼 보였다. 엄마는 나의 말을 모두 듣고는 깊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힘겨운 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뭐가?”


“엄마가 너한테 일찍 떠나온 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한 거 기억나?”


“어.”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어.”


“엄마도 너를 낳고, 너랑 똑같은 방황을 했어. 네가 나를 묶어 놓고 있다고 생각했고, 너와 단둘이 있는 공간이 감옥 같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엄마도 꿈에서 네 할머니를 만난 거야. 네 할머니는 엄마가 너한테 해준 것처럼 똑같은 말을 했어. 자기가 너를 봐줄 테니, 아이가 없는 삶을 살다오라고. 미안하지만,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삶을 살았단다. 그것도 아주 오래.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야 깨달았지. 지금의 네가 깨달은 것을 말이야.”


나는 지금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을 하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그저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 일을 엄마도 이미 경험하고 있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고, 뭔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늦게 돌아왔을 때, 네 할머니가 말을 해줬어.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해야 하는 이 말을.”


“그게 뭔데?”


“딸. 네가 지금 보내고 온 너만의 시간은, 앞으로 네가 아이가 함께 보낼 시간들을 미리 당겨 쓴 거야. 그러니까 네가 아이가 없는 삶을 살았던 시간만큼 아이의 삶에서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말이지.”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의미 없이 보내고 온 그 오랜 시간이, 앞으로 내가 우리 아이와 보내야 할 시간들에서 차감된 시간들이라는 말에 나는 내 온몸에 있는 신경이 모두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건 규칙이었어. 그래서 네 탓이 아니라고  한 거야. 엄마는 네 할머니가 엄마에게 기회를 줬을 때,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그래서 알고 있었지. 우리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지만, 되도록이면 더 멀리하려고 했던 거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데… 그런데…. 내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까.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왔잖아. 아침에 눈만 뜨면 우리 집으로 와서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 내가 힘들까 봐 그런 거야? 나 때문에? 그래서 그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수명을 쓴 거야?”


나는 거의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말을 했다.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평온한 표정으로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건. 너 때문이 아니야. 내가 그 아이를 보고 싶었어. 너무 예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눈에 담아 가고 싶었던 거지.”


“이런 게 어딨어. 이런 게! 말을 해주지! 그냥 차라리 다 말을 해주지!”


“이제 그만 울어. 어차피 모두 지난 일이야. 그리고 그냥 우연이었고, 어쩔 수 없는 규칙이었어. 그래도 너는 엄마보다는 빨리 깨닫고, 늦지 않게 왔잖아. 너한테 아직 정말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까. 아끼지 말고 살아. 오래오래.”


“엄마….”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엄마와도 그만 해어질 시간이라는 것을,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아이도 너무 보고 싶었지만, 엄마도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와의 시간도 이제 다 써버린 것이다.


“아빠는 이런 거 없으니까. 많이 부려먹어도 돼. 아빠도 아마 너보다 아이가 더 보고 싶어서 다 관둔 걸 거야. 실은 네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관두겠다고 난리였어. 너 크는 거 보지 못한 게 평생에 가장 큰 한이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이렇게 아빠 순서가 있었잖아. 그래서 엄마가 먼저 옆에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우리 딸. 너무 울지 말고, 잘 살아. 엄마가 가끔 이렇게 찾아올게.”


“엄마…..”


나는 울면서 잠에서 깼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내 팔을 꼭 안고 자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또다시 울음이 터져 버렸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았다.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톱까지 아이의 모든 것을 다시 눈에 담았다. 냄새를 맡았고, 모든 살결을 느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왜 내가 결혼을 하겠다는 말에 “왜?”라는 질문을 했는지. 아마도 엄마는 겁이 났을 것이다. 자신을 꼭 닮은 내가 엄마와 같은 실수를 할까 봐.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나는 엄마와 다른 선택을 했다고. 그리고 이 아이도 나와는 또 다른 삶을 선택하리라고. 그 어떤 후회를 하더라도 되돌리고 싶지 않은 선택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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