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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40대 가장의 작가라는 꿈

아직 더 이루고 싶어서

by 박희종

“어때?”

“우와. 재미있어. 소설 같은데?”


10년 만이었다. 희곡작가를 꿈꾸며 온통 연극무대만 바라보던 20대를 보내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내가 다시 이야기를 만든 것이.

20살에 처음 희곡을 쓰고, 운이 좋게 그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경험은, 그리고 내 이야기로 누군가가 웃고 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은 나를 꿈꾸게 만들었다.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로 무대를 만들고, 또 영상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꿈을 이어가기에는 내 재능은 부족했고, 내 용기는 모자랐다. 딱 서른까지만 해보자던 내 다짐은 1년을 남겨 놓은 순간 깨달았다. 1년을 더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것은 포기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언저리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뮤지컬컴퍼니나 연예기획사에서 일을 해보았지만, 결국 미련이라는 것을 알고 그마저도 멀어졌다.

예전의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았다. 누구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부러 더 꿈을 피해 도망 다녔다. 공연은 기회가 닿아도 잘 보지 않았고, 업무와 연관 없는 글은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꿈이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첫딸이 태어났고,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생겼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벅차고 행복이 차올랐다.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글이 되고 있었다. 아내에게 보내는 톡으로, 메신저의 상태 메시지로.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의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짧은 글들과 함께. 그런데 그 글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진심이 닿은 걸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재미에, 그렇게 조금씩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라고 알아?”


아내가 구독을 하고 있던 브런치에 들어가 보았다. 매일 아침 추천글이 오기도 했고, 아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들이 새로운 글을 올리면 알림이 오기도 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문득 나도 작가 신청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딸아이에 대한 글들을 모아 작가신청을 했고 다행히 작가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육아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딸바보 아빠가 아이를 만나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그 글들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자주 다음 메인페이지에 소개되었고, 그 덕에 내 글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도 2000명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때였다. 다시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 것이. 육아 에세이를 쓰는 것도 너무 즐겁지만, 나는 원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마침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본 타운하우스 광고현수막이 나에게 아이디어를 줬다. 나는 그날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앉아 아내와 맥주를 한잔 마시며, 조용히 카카오톡에 소설의 프롤로그를 썼다. 그리고 아내에게 보냈다. 아무 말도 없이.


“어때?”

“우와. 재미있어. 소설 같은데?”


아내의 그 한마디는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그렇게 나 혼자 마음대로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브런치의 글들은 거의 대부분 에세이였고, 소설을 연재하는 분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내 소설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독자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계속 소설을 연재했고, 결국 완결을 지었다. 내가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다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글을 어딘가에 연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첫 소설책이 되었다. 꿈만 같았다. 그런데 그다음 이야기도 브런치를 통해 또 계약을 하게 되었고, 연달아 2번째 책도 출간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글들이 만 5년이 된 지금 7편의 장편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소설은 오디오북이 되었는데, 그건 그 첫 작품이 오디오북 담당자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이 작품 알아요. 예전에 브런치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작가의 꿈.

나는 온전히 브런치 덕에 작가가 된 사람이다. 누구보다 평범하던 사람이 겁 없이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20대의 나처럼, 내 글이 무대가 되고,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길 바라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는 진짜 작가가 되었다.


얼마 전 특강의 기회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라는 이름은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어 주는 것이라고. 책을 내야, 데뷔를 해야, 상을 받아야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순간, 그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순간. 스스로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꿈꾸는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브런치가 작가를 꿈꾸는 모두가 꿈을 이루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수많은 작가를 탄생시킨 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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