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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Jul 23. 2021

공부는 너의 길이 아니라는 너에게

너를 지우기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될 때까지 나는 내가 난독증인 줄도 몰랐다. 그저, 어려운 책은 내가 끈기가 없고, 배운 게 없어서 못 읽는 줄로만 알았었다. 어른이 읽음 직한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했던 나는, 삼십 대 중반에 방송대를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부를 어찌해야 하는지를, 책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처음으로 배웠다.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시절에는, 전공과목을 6~7과목씩 들었는데, 교재를 한 권당 여섯 번에서 일곱 번 정도씩 통독했으니, 일반 책으로 치면, 한 학기마다 총 36권~42권을 읽어낸 셈이었다. 물론 같은 책을 계속 반복하니, 회를 거듭할수록 이해하는 게 많아졌고, 지식이 늘어나자 책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어떤 때는 마치 공부를 하고 있는데,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부하는데, 마치 술에 취한 듯 좋은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이, 공부에 빠져들었고 공부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고 시계를 보면, 다섯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있었다. 공부하면, 늙어가는 팔다리가 너무 쑤시고 힘든데도 참 즐거웠다. 공부의 과정은 정말 힘들고 고되었지만, 그 힘든 시간조차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그러다, 정말 너무 힘들어 미치겠는데,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더 미치겠는 순간이 왔다. 희망 없던 중년의 배움의 과정은 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정화하고 공부를 통한 기쁨을 선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님이 쓴 <몰입>(한울림, 2004)을 읽었다. 여기서, 몰입은 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완전히 열중하여 그 자체로 희열을 느끼며 그로 인해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이며, 인간의 삶의 행복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내가 방송대 공부를 하며 느낀 감정이 바로 '몰입'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방송대 공부를 통해 학위를 취득하고야 말겠다는, 자발적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통해 심연에 닿는 ‘몰입’을 하였기에, 내 유년기의 아픈 상처까지도 잊었고 더 행복해져 갔던 거였다.


단지, 나는 공부만 했을 뿐인데, 삶의 전반이 행복해지고 만족스러웠으며, 평생의 한이었던 학사 학위는 덤으로 얻게 된 거였다. 그 만학의 과정에서 난독증은 크게 완화되어 있었고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방송대를 졸업하고 난도가 굉장히 높은 고전 및 인문학 계통의 여러 가지 책이 술술 읽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방송대는 고전 한 권을 제대로 읽지 못하던 내게 새 삶을 주었으며, 제대로 된 책을 깊이 있게 읽게 했다. 읽기 쉬운 자기계발서에서 벗어나 다양한 책을 접하고, 기록하자 편협하고 고집불통 같던 내 마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의 기쁨을 맛본 나는 졸업 후에도 공부했다. 그 후 1년간,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독서지도사, 방과 후 지도사, 심리상담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며 쉴 새 없이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배움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배움의 끝이 어디인지 알고 싶었다. 이때는 배움에 끝이 있는 줄 알았기에, 대학원 교육학 석사과정에 입학원서를 넣었다. 놀랍게도 무직에, 무경력인 내가 합격을 했는데, 그날 바로 대학원 행정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 선생님, 이번에 우리 대학원에 진학하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공부가 하고 싶어서요. 혹시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걸까요?”   

  

‘이렇게 계속 살다 간 누군가 진짜 쓰레긴 줄 알고 쓰레기통에 버릴까 봐 겁이 나서요, 저도 유식하고 현명해지고 싶어요. 좋은 엄마, 배운 엄마가 되고 싶어요. ….’      

차마 이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 네 선생님,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교수님께서 학부도 교육학도 아닌, 전업주부이신 분이 대학원 학위과정에 들어오시는 것이 개교이래 처음이라서 많이 걱정하시고 이유를 여쭤보라고 하셨고요. 또 하나, 교수님께서 학위과정은 쉽지 않기에 신중히 고려하시고, 시작하시면 절대로 그만두시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 네 절대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총 여섯 명의 합격생 중에서 이렇게 나만, 아주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입학 당시에는 대학원이 배운 양반들이 가는 특별한 곳이라 다 개인 전화가 오는가 보다 했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이란 곳에 발을 들였다. 첫 수업이 되었고, 다른 동기 선생님들이 자꾸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분들은 다 실제 교직에 계시는 현직 교장, 교감 선생님이시거나 교육기관의 시설장이셨는데, 전ㆍ현직 교사도 뭣도 아닌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것이 너무 불편하였다. 심지어 이분들을 속이고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대학원 과정을 공부할 정도면, 서로서로 존중하여 선생님이든 아니든 간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는 것을 몰랐다. 사실을 밝히기로 한 나는,  

    

“저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가정주부입니다. 경력도 없고 무직입니다”     

라며, 수업 때마다 걸어 다니는 인간 이력서를 자청하고 다녔다.  

    

대학원 두 번째 수업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 당시, 한국방송통신대를 빼고는 수년간 나의 바깥세상 인간관계의 전부였던, 아이 친구의 엄마 모임에서 엄마들끼리 늘 그랬던 것처럼, 대학원 동기 선생님께도 난데없이,   

            

“저보다 나이 많으시니까 언니라고 부를게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때 내 말을 듣고, 순간 인간 얼음이 되어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던 동기 선생님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나 혼자 외계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들은 오지에서 구조된 지식 난민 같았던 나를 보며, 때로는 이유 없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짠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나는 대학원 시절 내내 동기들을 경쟁자로만 보았었다. 그러나, 그 경쟁자들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수업 때마다 내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한결같이 격려했다.  

    

“이렇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서 뭐 하다 이제 왔어. 우리 이쁜이 선생님 공부하게 우리도 수업 때 집중 좀 하자고.”  

    

 물론 그들도, 그렇게 말하고는 가끔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의 그런 따뜻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참 부러웠다. 공부할 나이에 치열히 공부하고, 지위에 오를 나이에 오를 만큼 올라서, 이제는 여유롭게 공부하는 그분들의 세계는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들은, 점심시간엔 늘 돌아가면서 갈비탕에 후식으로 호떡에 커피까지 사줬다. 그때는 그저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호의를 보이는지 의심스럽기만 했었고 이상하고 무서웠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이때도 나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서 말이다. 그때 읽었던 책이 중국 수필 작가 리후이의 <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밝은 세상, 2018)였다. 이 책은 짤막짤막한 실제 에피소드들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주는 메시지는 사실, 이 세상은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 살펴본다면, 세상이, 세상의 누군가는 우리 하나하나를 몰래 사랑하듯 돕고 격려해 주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동기들이 베풀었던 호의가, 바로 내가 자라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배려와 격려'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과정 때 문득문득 내 뒤통수가 따뜻해지도록 나를 짠하게 바라보던 이모뻘 되던 동기들의 다정함, 그리고 수업 때마다 이유 없이 밥을 사 먹이던, 그들의 사심 없는 배려를 의혹의 눈으로만 바라보았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사랑받지 못해 뒤틀린 마음은 뒤틀린 현실을 읽고 있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완전히 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나 자신이 엄청나게 뒤틀린 내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를 때리고 학대하며 방임했던 엄마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내내 내가 나에게 저지른 학대이자 방임의 결과였다. 그렇게 원하던 학사, 석사학위를 얻고도, 늘 불만족스러웠던 이유는, 바로 뒤틀린 나의 마음의 눈이 세상을 미워하고 증오스럽게 보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불행했던 거였다.   

  

방송대에서 공부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배움의 갈증을 느껴, 대학원을 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평상시에는 만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중년의 만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평생 맺지 못했을 인간관계를 경험했다. 결혼 후, 아이 친구 엄마 세상에서만 살던 나는, 조금 더 다양한 곳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 더 넓은 세상으로 인간관계가 확장되었다. 그것은 책을 읽어서만은 얻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배우기 위해 갔던 그곳에서 만난, 색다른 세상을 사는 동기들 그 자체가 '나' 중심 세계관을 가진 나의 내면을 '세상'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성인의 공부는, 엄마로서, 주부로서 맺는 인간관계 이상의 세계를 만날 기회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자극을 받을 때, 우리의 내면의 세계가 깊고 넓어진다. 내면의 눈, 세상을 보는 시각과 넓이를 바꿔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새로운 내면의 눈을 가지는 길, 그건 바로 어른의 공부다.    


       

공부는 너의 길이 아니라는 너에게.  

   

그동안 네가 매일 만나왔던 동네 언니나,

애들을 통해 사귀었던 아이 엄마들도,

혹은 인터넷 속 친구들도,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겠지?

  

시원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하며,

혹은 전화통화를 하며,

시댁, 남편, 애들 얘기를 하는 거도 사실 즐겁지.


또, 인터넷 속 이웃들과 댓글을 달며

소통하는 삶도, 너에게 삶에 활기를 주었을 수도 있겠다.

    

요즘은 어때?

혹시 그런데도, 허탈하진 않니?    

 

만약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 때야.     


매일 같은 사람만 만나, 같은 이야기를 하면,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되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걸 배우면,     

네가 알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거든.  

        

배움은 너에게 그 길을 열어줄 거야.

네 수준보다 조금 더 높은 것을 배우고, 지향할 때

네 생각의 틀이 넓어지며, 내면이 변화될 거야.   

  

너의 생각의 틀이 넓어지고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너 하나의 삶의 고통과 죽음을 넘어,

그 너머의 것을 보게 되니,

어찌 지혜로운 인간,

자애로운 어미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니.

    

뒤틀리고, 아픈 너를 지우는 길,

배움이 바로 그 길이야.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몰입>(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한울림, 2004)

:저자는 한 인간에게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조차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쓰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망치는 나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은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오로지 개인의 인생사에 다가오는 비극적인 사건을 포함하여 모든 이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이 인생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삶에 전력을 다하여 집중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 몰입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몰입은 개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에 온전히 집중하며, 그 과정 자체로 희열과 즐거움을 느끼며 빠져드는 상태라고 한다. 이 책은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찾아 반드시 삶을 행복하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나쁜 와이프가 행복하다>(하은명, 팬더북스, 2014)

:이 책의 저자는 실제 사례를 통해,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결혼생활의 어려움과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삶이 힘들 때마다, 당장 때려치우고 이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접으라고 한다. 배우자의 외도, 폭력, 도박만 아니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이혼한다고 해서 다시 젊은 시절의 그때로 돌아가는 것처럼 새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더 고단한 이혼녀의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이혼녀의 화려한 인생 이야기는 절대로 시작되지 않으며, 그렇게 되려면 이혼녀 자신이 돈을 벌 능력도, 경력도, 학벌도 있어야 한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 주부들에게 말하는 교훈은 여성이자 엄마도 스스로 내면적인 독립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의 위치가 주부라고 남편, 아이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는 거다. 즉,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엄마 품을 떠날 시기가 되면, 엄마도 스스로 자기 공부를 하란다. 엄마로서뿐 아니라, 여자로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위해 집에 있는 시간이 공허할 틈 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공부하라고 한다. 꼭 홀로서기를 하지 않더라도 늘 홀로 설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도록 삶을 살라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로운 사람은 현재 자기를 잃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있어도, 아이가 있어도 늘 외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공부든 하라고 한다. 저자는 끊임없이 독설을 쏟아내며, 특히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침을 가한다. 이 책은, 현재의 삶이 너무 무기력하고 자기 자신이라는 개체 존재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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