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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Jul 30. 2021

공부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너에게

너를 찾기


나는 석사과정 졸업과 함께 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이때 원생들은, 수업을 받기 위해 전공과목별 교수님이 계신 분교로 가야 했는데, 거의 매주 충남을 시작으로 대전, 서울, 경기도까지 가야 했다. 통학 코스도 자가용-기차-전철-버스를 모두 이용해 총 오고 가는 시간만 8시간 이상 걸렸고, 통학 그 자체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사실, 외부의 이러한 모든 고통보다 더한 복병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미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내면의 적'이 속삭이고 있었다. '내면의 적'은 자꾸 안전한 너의 집으로, 너의 마음으로 꼭꼭 숨으라고 부추겼다. 설상가상으로 박사과정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자꾸만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안전하지만, 캄캄한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버텼다. 늘 갈등하고 또 버텨나갔다.


박사과정에서는 과정생 하나하나가 수업마다 돌아가며, 일일 책임 교수가 되는 형태로, 그날의 발표자는 다른 원생들에게 그 장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했다. 그때까지 남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주도적으로 발표하고 주목받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 방식이 그렇게도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실, 어쩌면 이 압박감과 발표 공포 때문에 학위를 따도 강단에 못 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공부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많은 인내력과 실력을 길러내야만, 나는 그곳에 남을 수 있었다.  

   

늘 발표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시야가 아득해져서, 혹시나 쇼크로 쓰러져 죽을까 봐, 나는 집에서 계속 발표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장, 15분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10시간 이상을 공부하고, 10시간을 자료 준비하고, 또 10시간을 ppt를 작성하고, 그 후엔 한 오십 번은 타이머까지 돌려가며 연습했다. 자료에는 이 시점에서 ‘미소’라고 메모를 쓰고 실제 발표에서도 여유로워 보이고자 딱 그 부분에서 ‘미소’를 지었으나, 벌벌 떨면서 억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얼마나 불편해 보였을까 싶다.


아무튼, 버티다 보니 마지막 학기엔, 한 서너 시간이면, 자료를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었으며, 발표도 열 번 정도만 입에 붙이고 가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과제 발표는 항상 떨리고 불안했지만 결국 버티니 이 또한 할만할 지경은 되었으며, 어쩌면, 나도 학위만 취득하면, 내가 그토록 동경하는 교수님처럼, 강단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생겼다. 한고비를 견뎌낸 내 마음이, 단련된 내 마음이 자꾸만 내게 희망을 얘기했다.

         

‘이 순간들을 이겨내면, 이 논문만 통과하면 나도 정말 강단에 선다. 너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딸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해가 되자, 내 배움의 결실이 드디어 내게 왔다. 박사학위와 표창장이 든 택배를 손에 들었는데, 나는 마음이 미친 듯이 나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보고 또 보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마치, 이 종이들이 이제 너의 배움이 완성되었다고 인정해 주는 거 같았다. 석사 졸업 때, 박사모의 황금 술을 찰랑거리던, 선배님들을 지켜보면서 ‘몇 년 후엔, 저자리 저 옷, 저 모자가 나의 것이 될 거야. 꼭 해낼 거야.’ 하고 말했었는데, 정말 그날이 왔다.   

 

사실, 택배를 받은 날은 박사학위 수여식이 예정된 날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위수여식이 취소됐으며, 결혼생활을 통째로 삼켜버린, 내 15년의 결실을 택배로 받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박사가 되기만 하면, 최고로 좋은 학위복을 맞춰 입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학위복을 내 수의로 꼭 입혀달라고 가족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고, 이게 뭐람, 안 그래도 내가 지금 박사인지, 아닌지 느껴지지도 않는데…. 박사모도 못 쓰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기념으로 사진이라도 한 장 박자며, 학위복을 대여했다. 그런데, 막상 학위복을 보니 지난날, 방송대 시험장에서 너무 무섭고 긴장돼서 덜덜덜 떨면서 시험 보던 일들이 생각났다. 또, 석사과정에 어찌어찌 입학하여, 교장, 교감, 현직 선생님들로 가득한 초호화 경력의 석사 동기생들 사이에서 나 혼자 ‘징비록’의 내용이 뭔지도 몰라, 정말 낯 뜨거웠던 일들도 말이다. 박사과정 때는 지도 교수님이 학위논문 연구계획서를 쓰라는데, 연구가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난,     


 '실험실도, 장비도 없고 심지어 연구복도 없는데 나는 어떻게 연구라는 걸 하지?, 이걸 다 사려면 대체 돈은 얼마나 들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었다. 사실 난 인문사회계열이라서 물리적인 실험실이나 기구가 필요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늘 한결같이 며느리의 박사 취득을 염원하고 지지해 주시던 어머님 생각까지 나자 결국 이내 참았던 마음이 울컥했다. 나를 낳아주신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한결같이 응원하시던 우리 어머니, 난 그분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의 따뜻한 미소와 주름진 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딸도, 아들도 아닌, 며느리가 박사가 되었다고 곧 돌아가실 줄도 모르시고, 쇠약한 몸으로 동네방네 자랑을 다니시던 우리 어머님, 내 졸업식 때 이쁘게 머리하고 오시겠다고 그토록 기다리셨는데…. 졸업식이 있던 그달, 흙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박사학위만 취득하고 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님이 보시기에 장한 며느리로 프로페셔널하게 살아갈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동안 심심찮게 인터넷 뉴스에서 보이던 지방 대학의 통폐합 기사나, 수도권 전문대학의 존폐 위기 관련 기사를 보더라도 나의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초보 박사 입장이 되고 보니, 얼마나 어려운 형국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박사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이제는, 시간강사법이 시행되고 있어서 모교에서 교수님 추천으로 강의를 맡게 된다든가 하는 배려는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한 학기 한 과목을 맡더라도 계속 이력서를 들고 이 학교, 저 학교로 면접 여행을 거치게 되었다. 만약 세 과목이면 한 학기에 각기 다른 세 학교 면접을 볼 수도 있으며, 다음 학기에는 또 똑같이 반복되는 거였다. 나도 우선 강사 경력을 쌓기 위해 시간강사 자리에 서류를 넣었다. 그런데, 학부가 방송대이면서 무직의 가정주부 박사는 강의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서류에서부터 탈락시키고 면접에는 부르지도 않았다.

      

'아니 뭐 경력을 쌓을 기회를 줘야 쌓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박사 취득을 했건만, 정말 갈 곳이 없었다. 교수님은, 박사이긴 하나 경력이 없으니, 석사 연구원들이 가는 자리에 가서 일단 경력을 쌓으라고 했지만, 거기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거절했다. 다음 대안으로는 눈을 더 낮춰서, 원격교육원이나, 평생교육원 강사 자리에 지원해 보는 거였다. 그런데, 여기도 어찌나 뛰어난 박사님들이 많이 지원했는지, 방송대 출신의 무직의 가정주부가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경쟁도 안 되었다. 초보라는 이유로, 강의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면접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초보는, 영원히 초보에 무경력일 수밖에 없는데, 세상은 왜 기회를 주지 않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까지 취득했건만,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함과 이상함이 가득했다.    

  

15년간의 독서와 일기 쓰기, 만학의 과정 후에도, 여전히 나는 아무런, 권위도, 명예도 없이 그저 박사학위만 소유한 무경력의 주부일 뿐이다. 그렇다면, 1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걸까? 정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걸까?


오늘의 나는 더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30대 중반까지도 내가 누군가에게 마구 구겨져 버려질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었던 ‘나’에서, 이제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내가 어딘가에, 언젠가는 의미 있게 쓰이리라 믿고 견디어 내는 '나'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변화했다. 단련된 나의 내면은, 인생에서 작고 큰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던 나를 스스로 견뎌낼 수 있게 했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넘어뜨려도, 나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여기,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기필코 도래할 '나의 때'를 끈기 있게 기다린다.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비즈니스북스, 2016)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한 인생의 후반부는 우리를 점점 더 성장하게 한다고 했다. 즉, 나이가 많고 재능이 적은 사람이라도,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지속해서 해나가는 용기와 끈기가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랬다. 공부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는 거였다. 우리의 인생 후반기인, 중년이나 노년에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힘, 열정, 투지, 끈기가 있다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기회와 성취를 이룰 수 있으며,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릿(열정, 투지, 끈기)을 어찌 기를까? 우리가 중년에 어렵사리 찾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에 0.1 mm라도 전진해 나가며 버텨내는 그 과정에서 길러진다. 결국, 느리고 성실한 거북이 같은 우리의 매일의 배움의 과정들이 끈기, 열정, 투지가 되어 우리 내면을 강화하고, 우리 자신을 이기게 하며 어떤 꿈이든지 이루게 하는 거다.   

  

책을 읽고, 일기를 끄적거리던, 나 역시, 어느 날 세상으로 나갔다. 항상 ‘나’라는 깊고 깊은 우물 속에만 살면서 '과거의 나' 혹은 '현재의 나'와만 대화했던 나는, 어느 날 배움의 세상, ‘나’ 밖의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제까지 만나온 편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과 접하는 매주, 매회의 수업이 모두 고통이었으며, 수련이었다. 배움의 열정이 일자, 나는 스스로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버텨냈으며, 그 과정에서 더 큰 고통을 견디는 인내를 배워나갔다. 그 경험들은, 적은 시련에 늘 주저앉는 내면의 나를 강하게 훈련시켰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버텨내도록 키워냈다.


       


공부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너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어.

당장, 뭐든 시작해보는 거야.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말이야.     


지금 네 삶이 아무리 비루하고 누추하더라도,

책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글로 쓰고,

목표를 정해 보자.

    

그리고,

너의 나이가 몇 살이든, 이제, 너만의 공부를 시작해보는 거야.     

남은 삶을 더 재밌고 보람 있게 할 공부를 시작해.      

학위를 통한 공부든,

독서를 통한 성찰의 공부든

너는 오늘 당장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어.

너의 나이가 아무리 많고,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이 없더라도 말이야.     


한번 시작하면, 매일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해.

배움의 과정을 통해 너 자신을 이겨내 보는 거야.

인생의 고통에 주저앉지 않는,

마음이 단단한 네가 되도록 말이야.  

   

너는 경험해보지 않은 또 다른 네가 궁금하지 않니?

배움 뒤에 지금의 너 말고, 분명 놀라운 네가 또 있어.

새로운 너를 찾아보자.


용기를 내.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강수진, 인플루엔셜, 2013)

:내가 늘 삶의 무게에 허덕일 때나 아닐 때나 꾸준히 놓지 않고 해오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독서다. 처음 나의 관심 분야는 건강 관련 서적이었다. 도서관에서 그 분야 책을 죄다 독파하고, 그다음 흥미였던, 재테크 책장도 다 독파하고 읽을 책이 없을 때였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바로 발레리나 강수진의 자서전이었다. 나는 사실, 이 발레리나를 어느 날 갑자기 뜬 인터넷 속 그녀의 '발 사진'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몸짓과 화려한 수상경력과 달리 처참히 불거지고 망가진 발가락 관절들이 있는 흉측한 발이 그 속에 있었고 과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발레리나 강수진이라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녀는 최고의 자리는 그저 '열심인 매일의 날들' 이 준 선물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자신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행복한 일을 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삶을 살며, 과연 발레리나 강수진보다 100분의 1의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해본 적이 있던가? 안일한 삶을 반성하게 하는 강수진의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음을 정비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릿>(앤절라 더크워스, 비지니스북스, 2016)  

:이 연구자가 주장하는 그릿은 인간이 무엇을 끝까지 해내고자 할 때 발휘되는 투지, 용기, 끈기를 모두 합친 용어다. 저자는 재능이 없더라도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은 어떠한 성취든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재능은 우리 생각보다 뛰어나지 않으며, 재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릿이 있으면 더더욱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정한 꿈의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지속해서 해나가는 용기와 끈기의 그릿이 있다면 충분히 재능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그릿이 나이도 유전도 능가한다고 하는데, 나이나 유전적 자질보다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그릿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많은 연구에서 더 많은 성취와 그 성취로 인한 보람을 더 크게 느낀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다양한 근거를 토대로 "포기하지 않는 나"를 기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무언갈 시작하고 싶지만, 끈기가 부족해 두렵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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