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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Jul 16. 2021

공부는 아이 때나 하는 거라는 너에게

고통 녹이기


아이가 여섯 살이 되고 유치원에 입학하였을 때였다. 문득, 책만 읽고 뭔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결코 삶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 전에 편입해놓고 제적당했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재편입하였다. 야심 차게 들어간 방송대에서는 첫 학기부터 출석수업을 해야 했는데,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그러나, 나이 서른여섯, 결혼 6년 차가 될 때까지도 부모와의 애증으로 원망만 하며, 무지한 삶을 살았던 나는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어느 날, 뭐가 그리 바쁘냐는 엄마에게 방송대학교 갈려고 운전면허증을 딴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박 서방 운전면허 있는데, 네가 그걸 뭐하러 따." 했다.


"엄마, 나 지금 여기 가는 거뿐만 아니라, 박 서방이 나이 들어 아프거나 하면 내가 병원도 데려가고, 만약 박 서방이 먼저 가도 운전면허는 있어야 어디를 가지." 그랬더니만,


"박 서방이 죽긴 왜 죽어." 했다.         


이상하게 절대 '만일'이란 없다는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스물한 살 대학 가겠다는 내게도


"공부 따윈 뭐 하려 해, 그냥 편하게 시집이나 가서 남편 밥이나 해주고 살지, 엄마 말 안 듣고 네 맘대로 할 거면 집을 나가"라며 내쫓았다.


배움에 있어서 평생을 그런 식이었던, 엄마가 옵션처럼 장착돼있었지만, 나는 늘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언가를 배우고자 노력했다. 한때는 우리 엄마가 새엄마가 아닐까도 고민해 보았더랬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의 성품이나 성격이, 그것도 엄마와 딸이 이렇게 물과 불처럼 다를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평생을 글 한 자를 읽지 않고, 문맹으로 살며, 소파에 누워 늘 티브이만 보던 엄마와 평생 배움과 책을 달고 사는 딸이라니, 이보다 더 불행한 조합이 있을 수가 없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녀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학교에서 다달이 보는 시험에서 상위권이면, 매달 상장을 주었는데, 그 상장이 모여     

서랍 한가득하였어도, 엄마는 그런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되려 우리 집에 놀러 온 분들이 우연히 상장 서랍을 보고, 뭔 상장을 이리 많이 탔냐고 기특하다고 용돈을 주고 가곤 했다. 상장이란, 엄마에게는 그냥 종이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으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엄마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내게 관심과 칭찬을 주었다. 그 부작용이었는지, 나이가 마흔다섯인 지금도, 무언갈 배우면, 그 무언갈 꼭 누구에게 칭찬받고 싶다. 그래서 늘 나는 염불처럼 왼다. "괜찮아, 인정받지 않아도, 칭찬받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암튼,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위한 공부라는 것을 해보았다. 사실 난독증이 있어서 어렵거나 긴 책을 못 읽던 나는 두려움이 크게 앞섰지만, ‘운전면허가 없으면 방송대도 다닐 수가 없다!’ 싶어서, 학원에 무작정 등록을 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학원에서 “내일 시험 보러 갑니다.” 하자마자 운전면허 책을 미친 듯이 쭉쭉 읽어나갔다. 문제랑 답만 외우면 된다길래 그냥 외워지든 말든 쭉쭉 서너 번 읽고 나니 시험날이 되었다. 컴퓨터 시험을 보고 점수도 금방 나오길래 바로 합격을 확인했다. 90 몇 점 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그렇게 나 자신이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다음은 문제의 실기시험이었는데, 앞 기수분들이 시험만 보면, 줄줄이 탈락하기에 나는 홀로 전략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실기 연습 때 주어지는 코스를 나만의 도면으로 그려서 다 외우는 거였다. 첫 번째 골목 돌면 신호등, 신호등에서는 정지, 신호 어기면 벌점 이런 식으로 달달 외우면서 실기시험장에 들어갔더니, 한 시험관이 이 생활 십수 년 만에 운전면허 시험 보러 와서 실기 코스 외우는 분은 정말 처음이라면서 굉장히 놀라워했다. 어쨌거나 그 덕에 당당하게 우리 기수 중에 나만! 딱 한 번에 붙었다. 운전면허학원 등록 일주일 만에 그 플라스틱 꿈의 카드,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운전면허증, 그 영롱하고 아름다운 플라스틱 카드! 처음 그것을 손에 쥔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시험이란 것을 보고 무엇인가 자랑스러운 결과물을 쥔 것이 말이다. 그 희열은 내 뇌에 고스란히 각인되었다. 누군가 칭찬해 주지 않아도 무척 기쁘고 행복했다. 그 후 위험천만한 초보 운전자가 되어, 죽는지 사는지도 모르고 신나서 첫 수업에 갔다.


이렇게 나는 한국방송통신대 영문과 3학년 편입을 계기로 결혼 6년 만에 배움을 위한 첫 사회적 관계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너무 무섭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설레기도 했다. 첫 수업에서 출강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시다 내 학번을 보시더니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다시 보시고, 또 나를 불러 다시 보셨다. 그 당시가 2012년이었는데, 2005로 시작하는 나의 학번을 보시고 내가 계속 학교에 다니면서 계속 졸업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무척 훌륭하다고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이 자리에 있으니 훌륭하시다고 칭찬해 주셨다. 어찌 된 칭찬이든 간에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칭찬다운 칭찬을 그다지 받아보지 못한 나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래서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다.   

       

나이 서른여섯, 만학의 공부를 시작하며, 내 성격 탓인지 학과 내에서 크게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학사학위라는 목표 말고는 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고, 치열하게 수강계획을 짰다. 첫 학기에는 여섯 과목을 들었고, 그다음 학기부터는 일곱 과목씩 들으며, 졸업률 0.6%라는 악명 높은 영문학과를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매일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면, 16평 작은 아파트, 작은 방, 작은 내 책상에 앉아서 나는 여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때까지 방송대 강의를 듣고 교재를 읽고 워크북을 풀었다.


그동안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편히 살다가 공부를 시작한 첫 학기에는 그냥 책상에 긴 시간 앉아있는 자체도 힘든데 욕심껏 뭘 막 쑤셔 넣으려니, 그저 힘들고 팔다리도 아프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때려치울 수는 없었다. 이번에 그만두면 영원히 대졸자 엄마는 못 된다 싶어서, 참고, 한번 울고, 공부하고 그랬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여섯 과목의 전체 강의 듣기와 교재 및 워크북을 한번 끝내고 나면, 다음부터는 교재와 워크북을 달력에 몇 번 통독했는지 표시해 가면서 다독을 목표로 했다. 방송대는 한 학기에 주어진 과목당 강의가 총 15회였는데, 이건 전체 두 번씩 듣고, 교재는 한 과목당 총 6~7번은 완독을 했다. 그랬더니, 외지 않았는데 그냥 시험 보러 가니까 답이 다 훤히 보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나의 학창 시절의 공부방식은 오로지 외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는 더는 외지지가 않아서, 그냥 읽고 또 읽기만 했는데, 그냥 답이 다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외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전체의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통ㆍ완독하면서, 전체 교과서마다 흐름과 맥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외는 공부에서 읽고 이해하며 맥을 찾아내는 공부로 바꾸니, 그동안 그토록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어려운 여러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4년제 학사학위가, 엄마 아빠가 보내주지 않아 제때 쥐어보지 못한 학사학위가 너무 가지고 싶어서 느지막이 시작한 공부는 내가 평생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던 난독증도 치료해 주었으며, 내 삶의 고통도 가져갔다. 사실, 서른여섯, 방송대 재입학한 순간부터, 공부하기도 너무 바빠서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릴 시간도 없었다.       


방송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엔, 난 ‘앞으로 뭘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고민했었다. 그토록 원하는 학사를 얻었지만, 딱히 그걸로 뭘 할 수 없는 나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삼십 대 중반에 시작한 배움의 과정 내내 난, 벅차도록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노력의 과정이 내게 준 건 무엇인가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정말, 주변 사람들의 말대로 내가 지금껏 한 건 다 시간 낭비였을까?'       

    

그래서 늘 그랬듯 다시, 수많은 책을 읽으며, 이 혼란한 내 마음의 답을 구하고자 했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었는데, 바로, 이채원 작가의 <우리는 공부하는 가족입니다>(다산에듀, 2014)였다. 원래 저자는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청와대에 근무하는 남편을 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 때문에 이들 가족은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는다. 결혼 전부터 남편이 짊어진, 시댁, 시동생, 시누이의 사업 빚과 보증으로 이들 가족의 보금자리인 아파트까지 쏟아붓고도 25억 빚의 굴레에 억압받고 고통받는 상황에 놓인다. 심지어 딸아이가 아르바이트해서 산 노트북에도 압류 딱지가 붙는 실정이었다. 그런데도 저자는 정말 열심히, 성실히 산다. 결코, 삶을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 저자도 생활전선으로 뛰어든다. 그녀는 낮에는 영어학습지 교사로 일하고 밤에는 또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글을 썼다. 저자는 이렇게 십 년 이상 엄청난 빚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견뎌냈다. 그녀를 살아나가게 한 힘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저자 스스로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고통 속에서도 늘 글을 쓰고 배우고자 했으며, 하루하루 작가로서 조금씩 발전해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큰 기쁨과 위안을 얻었다.   

   

요즘 매일 필사하는 레프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1 진리>(동서문화사, 2020)에서 보니, 2천400여 년 전 소크라테스도, 나날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그것만큼 좋은 삶이 없으며, 자기가 나날이 더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느끼는 것만큼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저자의 삶도, 나의 삶도, 모두 인생의 고통과 시련을 성인이 되어 찾고 실천한 꿈과 배움을 통해 극복한 셈이다. 성인이 되어 시작한 공부로 권력이나 재물을 손에 쥘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 스스로 배움을 지속하고 꿈을 찾아 이루어 나갈 이유이다. 

     

소크라테스가 무려 기원전 400년대의 고대 철학자인 걸 생각해보면, 현재의 우리는, 소크라테스보다 2000년 하고도 400년이나 후의 최첨단 미래에 살면서도 이러한 진리를 보지 않으려 한다. 배움과 마음의 성장이 없는 삶은, 인간의 내면을 아주 오랜 과거의 무지로 후퇴하게 한다. 우리가 21세기를 살든, 210세기를 살든, 배우고 매일 자신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몇천 년 전 사람들보다 하나도 더 나은 바가 없다.


공부와 배움은,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여자, 엄마, 며느리, 딸, 아내라는 주요한 역할을 맡은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우리가 맡은 역할이 중요하고 다양한 만큼 우리의 인생은 늘 흔들리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배움은 이러한 삶에서 한줄기 기쁨과 희열을 주고 우리를 견뎌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엄마가 되어, 부모가 되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일은, 바로 나 자신이 어제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어른의 이 고단한 삶을 견디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더 나은 내가 되는 길, 그게 바로 성인, 엄마의 배움이다. 

    

아이들이 다 커서 떠나고 난 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바로 내면의 자기 자신뿐이며, 그 내면을 위해 우리는 늘 공부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이 나이에 뭘 배워 어디다 쓰나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뭘 배워 어디다 쓸 필요가 없다. 이때의 배움은 게임으로 치자면, 자동으로 발동하는 패시브 스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 하는 공부와 배움은, 그것이 예술이든, 문학이든, 기술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하루 더 나은 인간으로서 발전시키고, 점점 더 눈부시게 성숙시킨다.     



공부는 아이 때나 하는 거라는 너에게.  


여자로서, 엄마로서, 한 성인으로서,

우리의 삶에는 수도 없는 시련과 고통이 있을 거야.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바로 그럴수록 더 공부해야 해.


성인이 되어 너 자신을 위해 하는 배움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너에게 삶의 고통을 이겨낼 힘과

희망을 줄 거야.     

꿈도 없고, 뭘 배울지도 모르겠다면,

우선, 추천도서를 읽고, 

마음을 쓰는 글쓰기부터 시작하면 돼.          

매일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줄거리도 쓰고,

거기에 계속 떠오르는 너의 마음을 써보며

너의 마음과 대화를 해나가는 게 바로 마음을 쓰는 글쓰기야. 


꾸준히 지속하는 게 중요해. 

그러다 보면, 너는, 언젠가 분명히

네가 무얼 탐구하고 싶은지 알게 될 테고,

또 그걸 배우며, 미치게 행복한 너를 만날 수 있게 될 거야.     

배움은 아이만 하는 게 아니야.

배움은 분명 너의 길이며,

인간 모두가 마음이 큰 사람이 되는 길이니까.


네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아지고자 하면,

나아질 것이며, 배움의 과정은 기필코 그걸 도울 거야.          

삶의 고난 속에서 배움이 주는 기쁨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방패가 될 거야.


어른의 고통을 녹이는 비결, 배움.

그걸 너에게 선물할게.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책으로 변한 내 인생>(이재범, 책수레, 2020)    

: 이 책의 저자는 책 속에서 모든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저자가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계기는 돈을 벌기 위한 투자 공부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때 당시, 대부분 고액이었던 주식투자나 부동산투자 관련 강좌를 들을 수가 없던 저자는, 독서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 후, 저자는 독서를 통해서 금전적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만큼이나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서서히 인문, 사회, 철학과 관련된 인간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분야로 독서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매일 책을 읽고 자기 생각과 인생을 스스로 변화시킨 저자의 인생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책을 읽고 지속해서 정보를 리뉴얼하며 생각의 폭을 넓혀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이야기해주며, 다양한 책 읽기에 대한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이 책에서는 독후 활동을 특히 강조하는데, 독서 후 글쓰기는 독자가 책의 내용을 되새기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새로운 창작의 과정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가 책을 읽고 타인의 지식을 얻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를 토대로 나의 마음의 세계를 넓혀가기 위한 글을 쓰고 돌아볼 때, 진정으로 독서로 삶이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삶을 바꾸는 배움을 시작하고 싶지만,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김슬기, 웨일북, 2018)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여자가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을 놓아버리고 잃어간다면, 얼마나 끔찍한 삶이 기다리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온화한 어머니와 다정한 아버지 아래서 행복하게 잘 컸다고 한다. 그렇게 다정한 가정 속에서 자란 저자도, 엄마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은, 어릴 적 학대와 방임을 당했던 내가 엄마가 되어 겪은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자와 내가 자라온 과정은 전혀 다르지만, 역시나 여자라는 한 개체에서 '엄마, 며느리, 아내, 딸, 나' 등의 종합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걸 이 책을 읽고 다시 실감했다. 저자는 자기 일을 접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13평 작은 공간 안에서 아이와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며 저자는 '그저 난 젖소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그 슬픔과 고뇌가 저자의 숨통을 조여올 때 만난 것이 바로 책이며, 서재라고 했다. 그녀는 아이가 잠들면 자신만의 작은 공간, 책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적용할만한, 자기 삶의 힘듦을 읽어주는 구절들을 만나면 삶을 바꾸기 위해 적용하고 행동했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책을 읽고 덮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자신의 경험과 마음에 비쳐 삶의 질을 변화시켰다. 이 책의 내용 중에 특히, 엄마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자가 집에서 애만 보면 집에서 놀며 애만 본다고 욕먹고, 나가서 일하면 애 내치고 돈 벌러 간다고 욕먹는다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시각이 많이 개선된 현대에도 여전히 아빠는 돈을 벌며 육아에 조금 소홀해도 눈감아주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엄마는 이래도 저래도 세상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세상이 이토록 부모를 보는 잣대가 다르니 그 잣대 위의 약자인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며, 신체와 정신이 모두 힘들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엄마로서, 여자로서의 삶이 너무나 버겁지만, 그런데도 죄책감을 버리고 엄마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꼭 읽어볼 책으로 추천한다. 이 책 속에서 저자가 읽은 책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름 큰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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