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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Jul 09. 2021

이번 삶은 포기했다는 너에게

일어서기


[마음 일기]

2020년 9월 13일 오전 8시 32분


어젯밤에 자려고 누워서, 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실컷 했는데, 올해 중학교 1학년을 맞는 따님이,          

“엄마, 중학생은 너무 힘든 것 같아, 지켜야 할 규칙도 너무 많고, 6학년 때가 좋았던 것 같아.”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이에 질세라 어른의 고통에 대해 말해줬다.          

“어른도 너무 힘든 것 같아, 엄마 노릇도 너무 힘들고, 며느리 하는 것도 힘들고, 딸 하는 것도 힘들어. 논문도 내기만 하면, 자꾸 수정하고 또 수정하라고 하고, 기껏 힘들게 마흔 중반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더니만, 경력 없는 주부라고 시간강사 면접 기회도 안 준다…. 엄마가 훨씬 더 힘들어.”


사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른 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인사도 못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고통을 덤덤히 견뎌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사색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님은,


“엄마, 당연하지. 어른인데 더 힘든 게 당연하잖아.” 했다.          

아이도 아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이 글은 작년에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한창 힘들 때, 쓴 일기이다. 오늘의 나는, 어떤 고통이 닥쳐와도, 나를 파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인생이 주는 고통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걸 말이다. 나만 아프지도, 나만 행복하지도 않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며, 때로는 고통받기도 하고, 큰 기쁨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이 주는 고통은 비와 바람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들락날락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일 뿐이다.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고통에 주저앉지 않고, 그 고통을 다시 딛고 일어나는 사람이 되면, 누구나 더 내면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인생의 고통의 결말은, 삶의 포기나 죽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성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떤 고통과 시련이 와도 담담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제 나는 나만 저주받은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저 이렇게 책을 읽고, 마음을 쓰며, 새로운 배움을 지속해 나간다. 

         

지금의 이러한 나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아침 일찍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할애한 것, 그것이 시작이 되었다. 새벽 기상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아이 출산 직후였기에 이 시간에 난 운동을 했다. 이때의 나는, 몸이 너무 불어서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해서, 음식을 조절하고 매일 새벽 시간에 실내자전거를 서너 시간씩 타며, TV 드라마만 무한히 보고 또 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가꿔지는 몸매만큼, 마음은 이상하게도 더 텅 비어 간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난데없이, 구닥다리 중고 노트북을 샀다. 그리고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그 위에 노트북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블로그를 개설하고, 블로그에 식이 일지를 적으며, 나의 마음도 조금씩 적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운동은 주로 실내자전거 타기였기에, 그 시간 만큼 블로그에도 글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참, 이상하게도, 블로그에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느끼는 고통이 점점 줄어들었다. 방문자도 몇 없던 초라한 블로그였지만, 그곳에 글을 쓰는 일은, 평생을 공허했던 나의 마음을 채워 주는 시작이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이 있었는데, 외모가 아무리 훌륭하게 달라져도 내 안에 든 질적인 콘텐츠, 그러니까 나의 지식수준이나, 생각의 틀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내가 사는 세상은, 내 삶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그간 읽던 미용, 건강 서적을 놓고, 새벽 시간에 성공한 사람들이 쓴 자기 계발서와 자서전을 읽기 시작했다. 달라지고 싶었다.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책을 읽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매일 아침,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난날의 고통을 썼다. 나는 다 쓰고 나서도 내 글을 읽고 또 읽었는데, 그동안 나의 잘못이라 여겼던 과거의 모든 잘못들은 사실, 나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때의 환경적인 조건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며, 조금씩 죄책감을 털어나갔다. 책을 읽고, 현재 나의 마음을 썼고,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을 블로그에 썼다. 어쩌면, 내 인생 후반전에 다른 반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인생을 바꿀 도구를 수많은 책에서 알려줬는데, 바로 '공부'였다. 공부만 한다면, 부모님이 보내주지 않은 대학만 졸업한다면, 나도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결국, 벼르고 벼르다 나이 서른여섯,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방송대 영문과에 들어갔다. 그 이후로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시절에는 새벽 시간에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다른 잡념이 사라졌다. 공부에만 파고들면, 세상 그 어떤 시름도 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잊을 수 있었다. 방송대부터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지난 십여 년의 공부는 나의 아픔의 도피처이자 마음의 후시딘이었다. 그 와중에도 책은 늘 끼고 살았다. 심지어 박사학위 논문 심사가 목전일 때도, 나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불안한 나의 마음과 나를 믿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다잡았다.  

   

인생 후반전의 성공을 위한 탐욕의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공부는, 나에게 뼈를 깎는 '인내'란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해주었다. 또한, 나는 인내와 함께하는 배움의 과정이 인간을 내면적으로 크게 성장시키고 변화시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글쓰기와 책 읽기는 나를 공부로 이끌었고, 만학의 공부는 다시 나를 책으로 이끌었다. 나는 이렇게 배움을 통해, 독서를 통해, 글을 통해, 매일 내면의 나와 대화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말이다. 나는 결국, 책이 이끈 배움을 통해 인생이 주는 고통을 삶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처음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모든 것이 다 도미노처럼 차례대로 이루어지고 나아졌다.


마흔다섯에는, 십수 년 만에 박사학위를 쥐었다. 과거의 고통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나의 내면은 나에 대한 확신 그리고 공부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으로 가득히 찼다. 그런데도 세상은 딱히 나를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반기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지식을 채우고 내면을 갈고 닦고 닦았건만, 기회가 오지 않았고 내게 고급인력의 일자리 빈곤이라는 고통을 주었지만, 나는 굳이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삶이 우리에게 주었던 고통 중에서 상처만 주는 고통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겪었던, 유년기의 학대와 방임이 나에게 상처만 줬던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한 수행의 과정으로 안내했던 거처럼 말이다. 어느 날엔가,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한빛비즈, 2016)의 책을 보았는데, 그 책의 저자는 삶이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습관들에 의해 결정되며, 결국, 자신의 습관을 통제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도 통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는 지금 당장 세상으로 나갈 수는 없더라도, 결국 미래의 잠재적 성공자이기에, 역시나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는 거다. 왜냐하면, 이미 그동안의 만학 과정에서 얻은 보물들이 내면에 장착되어있기 때문이다. 바로 삶의 고통에 대처하는 건강한 습관들과 내면의 성숙 말이다. 누구라도 삶의 고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고통은 그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일 뿐이니, 우리는 그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이번 삶은 포기했다는 너에게.


미리부터 겁먹고 도망칠 필요는 없어.

네가 겪는 고통은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성숙으로 너를 이끌 테니까.


고통스러운 과거를, 현재를 인생의 수업이라 생각하면, 아파도 견딜 수 있을 거야.

아픈 과거에서도 우리는 나아갔고, 나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성숙해질 거야.           

엄마다운, 부모다운, 그리고 인간다운 삶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오늘도 착실히 성장해야 해.

삶이 주는 고통의 단계를 이겨내며 성장하는 내면의 '나'가 없다면,

그저 우리는 부모인 척하는 덩치 큰 아이일 뿐이야.

매일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성장하고 또 성장해야 해.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일단 일어서서, 삶을 견뎌내 보는 거야.


아마도, 지금의 그 고통은,

네가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전혀 다른 미래의 너를 만들어 낼 거야.     

미래의 너를 상상하니까,

나는 벌써 설렌다.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미라클 모닝>(할 엘로드, 한빛비즈, 2016)     

:이십 대에 영업으로 큰 출세의 가도를 달리던 저자는, 어느 날 음주운전을 하던 대형트럭과 정면충돌하여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6분 동안이나 사망에 이르렀었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기적같이 회복하고야 만다. 그 후에도 그의 고난은 계속되었는데, 경제적으로 큰 파국을 맞아 수많은 빚에 시달려 우울증을 얻고 죽음까지 생각하는 상황에 던져진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를 이루어낸다. 저자는 놀라운 자신의 의지가 "미라클 모닝" 바로 기적의 아침습관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독자들에게 하루를 조금 더 남보다 일찍 시작하고자 노력하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삶에서 겪은 고통과 시련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으며, 저자 스스로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해 나갔는지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지금 삶을 이미 포기했거나,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회복탄력성>(김주환, 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위기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저자는 그때 다시 일어나는 내면의 힘이 바로 회복 탄력성이라고 한다. 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은 위기 상황에서도 그 위기를 발판삼아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난 원래 재수 없는 인간이라며, 결국 이리될 줄 알았다며, 비판적인 생각을 가득 안고 이러한 위기 속에서 나 자신을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내버릴 것인가? 그게 바로 우리의 마음에 달렸다고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회복 탄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말 중요한 것이 바로 긍정적 뇌라고 한다. 긍정적인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유전적인 요인이 절반이나 되지만, 그렇지 않은 50%의 사람들도 후천적으로 유쾌한 사람의 뇌, 타고난 긍정적인 뇌를 가진 사람들에 가깝게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인생의 고난에 버티기 위한 회복 탄력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일상 속에서 늘 즐거움, 사랑, 행복감 등의 긍정적인 마음을 느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또한, 많이 웃으라고도 한다. 저자는 단순히 그냥 웃기만 해도 뇌는 우리가 기분이 좋은 상태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뇌에 행복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물질을 분비하도록 촉진하며 우릴 진짜로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삶이 우리에게 아무리 큰 시련을 준다 할지라도 그저 우리는 매일 크게 웃고 호탕하게 오늘을 살아나가면 된다. 이 책은, 삶이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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