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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Jul 31. 2021

아기 부처님이 잠을 잡니다.

어미를 기르는 너

그림일기] 아기 부처님이 잠을 잡니다. by 내일을 꿈꾸는 꿈쟁이


“아기 부처님,

이렇게 어미가 될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 주셔서 참말로 고맙습니다.”







2021년 7월 29일 목요일. 날씨는 맑았지만, 숨이 막히도록 무더웠다.

 

아가, 어제 네 아빠랑 2020 도쿄 올림픽 축구 중계방송을 보았지? 어미는 보는 경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터라, 너와 아빠가 알콩달콩 축구 중계를 보던 어제도, 안방에서 책을 읽으며, “골인~!”할 때만 나가서 하이라이트를 보려고 했지. 그런데, 어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어찌나 골을 잘 넣던지, 침대에서 책을 한쪽 읽으면 네가 금방 또 부르러 오더구나.   

 

      

어제 본 온두라스와 한국의 경기에서, 전반전부터 이어지는 상대편의 끊임없는 반칙에도, 한국은 6대 0으로 압승을 거두었어. 그때 너와 네 아빠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참 많이 하더라.

    

“아빠 우리나라 축구 정말 잘한다. 원래부터 저렇게 잘했어?”

     

“아니 이전에는 온두라스에 1대 0으로 졌을걸.”      


경기가 끝난 후에도, 한국의 승리에 흥분한 탓인지,

너와 네 아빠는 둘 다 얼굴이 발그레해서 무척 신나 있더라.


저녁 9시 반쯤이 되었을 때 네가,     

“엄마, 이제 같이 책 읽으러 가자.”라고 하기에

네 방으로 가서 우리는 각자의 책을 읽기도 했고, 요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지.  

  

“엄마, 우리나라는 어떻게 그렇게 축구를 잘하게 된 걸까? 우리나라 선수들이 지난번에 진 나라에도 이기고 정말 대단하지?”

     

“아마도, 올림픽이 4년에 한 번이니까, 우리나라 축구팀이 이날만을 위해서 매일매일 열심히 고되고 힘든 훈련을 견뎌내며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래? 그럼, 엄마가 박사 논문 쓸 때, 조금씩 매일매일 열심히 쓴 거처럼, 우리나라 선수들도 또 질 수도 있지만, 매일매일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해서 그런 거구나?”

      

어미는 너의 그 결론을 듣고선, 속으로 무척이나 탄복했다.   

  

'어미가 논문을 쓰며, 매일 매일 견뎌내고 있을 때, 너, 고 조그만 눈으로 어미를 죄다 스캔하고 있었구나. 아, 너무 예쁘고 기특해, 엄마의 후지고 미흡한 모습도 참 많았는데, 이렇게 바람직한 순간들만 잘 포착해서 기억하다니. 넌 대체 어디서 온 아이니? 역시 넌 내 딸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한테서 이런 훌륭한 딸이 나올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나중에 아이가 바뀌었다고 다시 달랄까 봐 어미는 자꾸만 겁이 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너의 옆모습을 어미는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런데 네가 갑자기 날 돌아보며,


“엄마 무슨 생각 하면서, 또 날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거야? 엄마 책을 읽어야지. 딴생각하면서 방글거리지 말고.”라고 했지 뭐야.


아가, 넌 늘 이렇게 매 순간 너무나 사랑스럽다. 요즘의 너는 어미가 네 어릴 적 사진만 그리고 어릴 적 모습만 귀여워한다고, 네 어린 날을 질투하지만, 어미는 사실, 네 어릴 적보다 지금의 네가 훨씬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가만히 생각해봐. 엄마 뱃속에서 콩알만 하게 생겨났던 너와 대화를 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신기하니. 네가 태어나고 ‘음 맘마, 우 부부 부…’처럼 외계 말인지, 어디 오지 부족 말인지를 내뱉을 때부터, 네가 대체 언제 커서 어미 말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을까 하고 어미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아가, 어느새 네가 이렇게 잘 자라서 어미와 대화도 하고, 제 할 일을 척척 알아서 잘한다. 때론, 네가 어미에게 하는 요런조런 귀여운 훈계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너를 꽤 잘 길러냈나 싶어 퍽 자랑스러웠다.

     




아기 부처님을 그립니다.



그런데 아가, 오늘도 어미는 너의 어릴 적 사진을 그리느라,

사진을 보고 또 봤는데, 어쩌면 그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만 간신히 들던 너를, 허리도 못 가누던 너를 카시트에 앉혔네.

카시트에 억지로 묶여서 계속 목을 앞으로 떨구고 자꾸만 옆으로 쓰러지다 지쳐 잠든 너를 보며, 나는 그저 아가가 카시트에서 울지도 않고 잘도 잔다며 기뻐만 했었다.

 

사진 한 컷에도 이렇게 큰 과실이 있는데,

그동안 너를 키우면서 저지른 실수가 어디 이뿐이겠니.

     

그런데도, 늘 아기 부처님 같았던 너는,

매 순간 한심했던 미물이, 어미가 되도록 참 오래도록 기다려줬어.   

   

나는 내가 너를 키운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네가 날 어미로 길러내었다. 

    

나의 작은 아기 부처님,

아가,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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