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집에서 십 여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다녀왔다. 날이 아직 무척 차가웠지만,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산 둘레길을 걸었다. 그 후 무척 출출해서, 우리는 김이 폴폴 나는 뜨거운 호떡을 샀다. 그리고 바로 옆 카페에서는 입가심할 하얀 눈 같은 요플레 스무디와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샀다.
코로나 19가 걱정되어 우리는 야외로 나갔는데, 많은 사람이 와글와글 호떡을 먹고 있었다. 야외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먹어도 되는 걸까 싶어서 우리는 거기서 더 한 참 떨어진 외진 곳으로 갔다. 역시나, 사람이 없는 곳은 무척 그늘지고 추웠다. 우린 서로 시린 손을 연신 비비면서 그래도 역시 호떡은 맛있다며 셋이서 아이처럼 신나게 먹고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주차장에 있던 우리 옆 차에서 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타셨다. 그분들은 바로 가지 않고 손에 들고 온, 천 원짜리 호떡 두 개를 호호 불며 맛있게 드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두 분이 연신 눈가에 가득히 주름이 지도록 웃으며, 서로를 다정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는데,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가만히 보면, 얼굴에 주름이 하회탈처럼 가득할 만큼 노쇠하였으며, 차도 녹물이 줄줄 흐르는 폐차 직전의 오래된 차였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중풍 후유증인지, 지팡이로 지탱하며 걸음도 겨우 걷는 상태였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행복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이 노부부가 무척 행복해 보여서 놀라웠고, 이상하게도 그들을 보는 타인인 나에게까지 행복이 전해져서 너무나 신기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어떤 인생을 살아오면, 저 상황 속에서도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앞으로도 저 두 분 모두 오래도록 저렇게 행복하게 함께하셨으면 좋겠다고 나 혼자 차창으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빌고 왔다.
나도 내게 주어진 지금의 행복을 잘 키워나가야겠다. 그래서 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노부부처럼 행복하게 늙어가며, 보는 이 누구에게나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나가고 싶다. 그런데 과연 나는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뿜어내고 있을까, 아니면 불행을 전달하며 나이 들어가는 중일까?
이 일기를 쓰고 얼마 후에, 사춘기인 따님이 요즘은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아이의 마음을 달랠 때처럼,
"아이스크림을 사줄까, 피자를 사줄까, 아님. 너 좋아하는 스무디를 사줄까?"
하면서 수작을 부리고 있었는데, 따님이 하는 말이 기가 막혔다.
“엄마, 이제는 맛있는 거를 먹거나 물건을 사준다고 해서 내 행복이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열다섯에 깨달은 것을 서른여섯에 깨달았는데, 넌 정말 너무 훌륭하다.'
는 말이 목까지 가득 차올랐으나, 아둔한 엄마인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그냥 다시 삼켰다.
사실, 아이가 문득 마음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호소했던 건, 나 때문이었다. 그동안 엄마가 박사 한다, 연구한다, 책을 쓴다 하면서, 아이가 바라는 부모로서의 애정을 충분히 주지 못했고, 결국, 아이의 마음에 공허함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박사학위 취득 전에는 몇 년이나 아이에게 엄마가 학위만 취득하면, 너랑 아주 많이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었다. 그러나,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아이와의 약속을 잊고 실적을 위한 연구를 위해서, 그리고 뜬금없이 작가가 되겠다며, 내 연구실에서 얼마나 처박혀 있었는지가 생각났다.
아이가 외로운 게 당연했다. 심지어, 아이가 외롭고 불행하다고 신호를 보내도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관심을 줄 생각을 못 하고 아이스크림, 피자 따위나 읊어대고 있었으니, 아이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나는 이렇게, 때때로 아이에게 불행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고 배우고 배웠음에도 나의 행복은, 아주 가끔은 나로 인해 이렇게 위태위태했다.
난 그날 뭘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도, 남편도, 더 나아가 삶 전체가 행복할 리가 없는데, 정말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뭘 하고 싶냐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의외로 그냥 엄마랑 아빠랑 같이 걷고 싶다고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뜨거운 한여름 낮에, 아이랑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아이가 방그레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난 속으로 '이거 다, 다행이다' 싶어서, 한동안 아프던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덧나서 피가 날 때까지, 우리 아파트 둘레를 돌고 또 돌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몇 시간 후, 아이가 이제는 괜찮다며, 활짝 웃는데, 마치 방전되었다가 지금 막 가득 충전된 휴대전화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언제 그랬냐 싶게 여느 때처럼 제 할 일을 하는데, 역시 아이에게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으로만 채울 수 있는 비밀 배터리가 있는가보다 싶었다. 아무튼, 감쪽같이 발랄해진 따님을 보며, 남편과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고, 큰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아직도 가끔은 이렇게 몹쓸 어미이며, 아이에게, 때론 남편에게 불행을 내뿜으며 살고 있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걸 잊곤 했었다. 다행히도 잘 자란 내 아이는 이럴 때 늘 내게 신호를 보냈다. 아이는 엄마가 진짜 행복에서 멀어지려고 하면, 이렇게 외롭다고 슬프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자신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에서 탈선하지 않고 정주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가 정말 해맑게 웃으며, 행복해할 때는 내가 모두가 행복한 길로 잘 달려가고 있다는 의미이며, 내가 나로서, 어미로서, 이 순간의 행복을 돌보며, 잘살고 있다는 의미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의 행복은 스스로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성장시켜나가며, 나와 내 주변의 그물망 같은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잘 가꿔나갈 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공원 주차장에서 만났던 노부부와 내 아이를 통해서 행복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질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나와 우리 가족의 통합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나 하나만 성숙해서도 아니 되었고, 그 정신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내 마음을 깨닫고 더 나아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돌볼 때, 오늘의 작은 행복이 유지되었다. 종합해 보면,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 속에 있었으며, 이 관계의 질에 따라 결국 노년의 삶의 행복이 달라질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뒷받침할 연구들을 찾아보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이와 관련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책을 읽었었다.
바로 조지 베일런트 박사의 <행복의 조건>(프런티어, 2010)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누구나 늘 궁금해하는, 노년의 행복을 위한 비밀의 열쇠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저 새로워하기만 하며, 피상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었다. 그런데, 문득 지난 일기를 뒤적거리다 보니,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그런 쪽의 상황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생활 속 사건들에서 이런저런 노년의 행복과 관련한 사색을 소처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이 책에서 피상적으로 얻은 지식에 나의 경험과 생각을 첨가해가며 몸으로 마음으로 '진정한 노년의 행복'을 새롭게 깨닫고 정의하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지는 이미 오래전이었지만, 그 내용의 시너지 효과는 몇 달, 몇 년간 내 생각의 틀을 흔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과 이를 읽는 독서라는 행위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만한 대단히 큰 파급력이 있는 도구라고 또 한 번 확신했다.
이 책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교에서 1930년대 말,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학년 268명을 시작으로 인간의 삶을 종단적으로 추적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조지 베일런트 박사님은 나중에 이 연구에 합류하였으며, 이후 새로운 두 집단을 추가하여 연구를 더 다채롭게 했다.
베일런트 박사는 기존의 하버드 종단연구에서 다루던 하버드 남학생 집단(1920년대생, 사회적 혜택을 받으며 자라난 엘리트 집단 268명)에 더해 터먼 천재 여성 집단(1910년생, 아이큐 140 이상의 상위 1%의 중산층 여성 천재 집단 90명)과 이너시티 집단(이너시티 소년원 수감자들처럼 똑같이 주거지역으로 부적합한 이너시티에 살며, 성장에 불리한 양육환경을 가졌으나,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이너시티 고등학교 중퇴자 456명)을 추가하였다. 최종적으로 하버드 성인발달 종단연구는 서로 그 특성이나 배경이 완전히 이질적으로 다르지만,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었던 세 집단을 표본으로 하여, 총 800여 명에 달하는 성인 남녀의 삶을 수십 년간 종단적으로 추적 조사하여 연구하였다.
저자이자 평생 인간의 행복을 수십 년간 연구했던 조지 베일런트 박사님에게도 큰 아픔이 있었다고 했는데, 바로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베일런트 박사님의 아버지는 하버드 출신의 유능한 학자였으며, 가정도 다복하게 꾸려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하고 만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상실을 딛고 인간의 근원적이고 실증적 행복을 찾는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조지 베일런트 박사는 이 책을 통해 그 72년간의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결과를 집대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행복한 삶과 노년을 위한 지침을 안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모든 것은,
“과연 어떤 사람이 노년까지 지속해서 행복했을까?”
라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정신적 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로 구성된 각 집단의 사람들은 과연 자신에게 주어진, 가정환경이나 유년시절, 아이큐 등의 장점, 단점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극복했을까?, 과연 어떠한 성향의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에 이르렀을까? 집단별로는 행복한 노년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이러한 궁금증을 세 집단의 사람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린 시절의 유복하고 따뜻한 가정환경, 높은 아이큐, 명문 대학의 진학 같은 것들이 우리가 행복에 가까워지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인간의 전 생애를 72년간 추적 조사한 종단연구의 결과에서 보면 그런 환경들이 반드시 노년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 속 사례에서 보면, 하버드 출신 엘리트 집단 군에서도 알코올 중독에 빠져 짧은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었으며, 천재 여성 집단군으로 아이큐가 140 이상의 상위 1%의 천재라도, 사회의 요구에 따라,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한정하고, 고립된 생활을 했던 사람은 노후에 불행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반면 이너시티 집단으로 어린 시절 가난하거나, 아이큐가 평균치 근처이거나, 고등학교 중퇴자로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늘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어떻게든 살아나가고자 애쓰며,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 중에서는 노후에도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노년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집단에 상관없이 교육과 안정된 결혼 생활, 건강관리를 위해 늘 노력했다고 했다. 둘째,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건 바로 인간이 인생의 위기와 고통에서 어떠한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가와 어떠한 인간관계를 맺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즉, 집단과 관계없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와 고통에서 성숙한 방어 기제를 쓰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행복한 노년을 위한 사회적 관계, 인간관계의 질이 높아지고, 그 범위가 확대되어 노년에도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엘리트 집단 출신이더라도, 천재에 가까운 아이큐를 가졌더라도, 이 두 가지가 없더라면, 노년의 행복에 이를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엘리트 집단이나, 천재 아이큐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 자란 이너시티 집단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생의 갖가지 난관에 성숙한 방어 기제를 발휘하고 소중한 관계를 잘 가꿔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노년의 행복에 이를 수 있었다고 했다.
방어 기제란 우리가 삶을 살면서 만나는 위기와 고통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문제 상황을 달리 해석하여 마음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상태나 행동을 말한다. 결국, 방어 기제란 인생의 위기와 고통에 대응하는 개인의 무의식적인 방패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어 기제를 미성숙하게 발휘하느냐 성숙하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노년의 행복이 크게 좌우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성공적 삶의 심리학>(조지 베일런트 지음, 한성열 옮김, 나남, 2017)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쓰는 미성숙한 방어 기제에는 망상적 투사, 부정, 왜곡, 투사, 정신분열증적 환상, 건강염려증, 소극적 혹은 공격적 행동, 행동화 이지화, 억압, 전위, 반동 형성, 해리 등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미성숙한 방어 기제들은, 모두 자신과 주변의 삶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반면, 성숙한 방어 기제로 분류되는 이타주의(고통스러운 마음을 사람에게 봉사하여 녹임), 유머(남과 내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내 생각과 감정을 겉으로 표현해서 조금씩 녹여냄), 억제(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을 성실히 살며 꿋꿋이 희망을 놓지 않는 것), 예상(미래의 심리적 고통을 현실적인 수준에서 예측하는 것), 승화(고통의 감정을 예술, 스포츠, 취미 등의 다양하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표현하고 녹여 냄) 등은 모두 자신과 주변의 의미 있는 관계의 사람들의 인생과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가 삶을 살아나가면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필수 과목이다. 이때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나와 주변에 전가하며 삶을 회피하기보다는 삶이 주는 숙제를 숙연히 받아들이고 견뎌내게 하는 성숙한 방어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도, 노년에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행복한 노년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인 성숙한 방어 기제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적인 성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를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현재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과 신체의 건강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더불어 평생에 이르는 배움의 열의, 독서, 마음을 성장시키는 글쓰기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을 받침 삼아 세상에 용기 있게 뛰어들 때 일어난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많은 엄마, 여성들이 안락한 가정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새로운 배움의 자극이 없는 안락하고 편하기만 한 삶은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을 방해하고, 퇴행하게 하며, 고통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숙한 방어 기제에 다다를 기회를 놓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부터 바로 '나'의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후, 그 이상의 노후를 행복하게 바꾸기 위해 새로운 배움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인간은 아동 및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해서 지적으로 성숙해 나가며, 발달해 나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육체적 성장이 멈춘 우리도 얼마든지 정신적 성장의 가능성이 넘쳐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순간의 즐거움을 택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정신적 성숙, 그것을 막는 것은 바로 순간의 쾌락이며 이는, 고통과 스트레스의 회피처일 뿐이다.
삶이 주는 고통을 마주하고, 아플 만큼 아파야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 주는 고통과 위기를 온전히 겪고 마주할 수 있도록 늘 다양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평생을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로 용감하게 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먼저 엄마인 자기 자신부터 배움으로 뛰어들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인간에게 행복이 필수인 것처럼, 행복을 마련해 주는 정신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노력도 나이와 관계없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현재의 삶과 남은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책을 읽고 나만의 글을 쓰고, 현재 나를 둘러싼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잘 가꿔나가야 한다. 또한, 나이들 수록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탄탄하고 힘 있는 사회적인 관계의 그물도 자꾸만 엮어나가야 한다.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면, 누구나 어떤 처참한 과거가 있어도 결국은 행복의 방향으로 생각을 틀게 된다. 천 원짜리 호떡을 호호 불며, 정말 세상 행복한 얼굴을 짓던 그분들처럼, 어떤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도 작은 거 하나에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간다. 나의 경우처럼 예전에는 추하다고 생각했을,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엄청난 감격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수도 있다. 또, 한여름 36도나 되는 더위에도 아픈 발이 짓물러 터질 때까지 아이와 아파트 단지를 몇 시간이나 돌고 돌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현재의 행복과 노년의 행복은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다. 행복은 우리의 환경이 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준다.
그래서 자신의 노후 행복 수준이나 건강이 궁금하면, 지금의 '나'를 보면 된다. 지금의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들이 노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불행하다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끼면서도, 자신의 주변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고 인터넷 세상의 피상적인 관계에 집착하며, 알코올, 흡연 등 순간의 쾌락을 주는 것들에 의지하면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은, 늘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산다. 그리고 그 모습은 칠십에도 팔십에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너무 끔찍한 일이다.
바로 지금 네 모습이 미래의 네 모습이야.
지금의 너의 행복 수준이 바로 노년의 너의 행복의 수준이고.
그런데 다행히도, 미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항상 오늘부터 할 수 있어.
네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의 열쇠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마음을 읽는 내면 독서와 마음과 만나는 마음 쓰기,
그리고 꾸준한 배움을 통한 네 마음의 성장 안에 있거든.
난 네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성공적 삶의 심리학>(조지 베일런트 지음, 한성열 옮김, 나남, 2017)
<행복의 조건>이 하버드 집단에 터먼 여성 천재 집단과 이너시티 집단을 새롭게 추가해 세 집단의 하버드 종단연구 대상자들의 노년까지를 다룬 버전이라면 이 책은 하버드 집단만을 대상으로 35년간 종단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모아 펴낸 책이다. 이 책에서는 연구 대상자들이 졸업 후 중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인생의 고비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했으며, 그 결과에 따라 그들의 중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 연구 대상자들의 삶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어떤 방어 기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성숙한 방어 기제인지 우리와 주변을 모두 불행하게 하는 미성숙한 방어 기제인지 면밀하게 보여준다. 결국, 환경적, 유전적 배경보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치는 요인은 바로, 우리가 삶의 고통에 대처하는 방어 방법(방어 기제)이라 하였다. 이에 따라 중년의 삶과 행복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는데, 대상자들의 연구결과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책은, 아직은 삶이 주는 고난과 위기의 숙제가 많이 남은, 중년의 우리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
<행복의 조건>(조지 베일런트 지음, 이시형 감수, 이덕남 옮김, 프런티어, 2010)
: 이 책은 72년간 동일 표본을 추적 조사한 ‘하버드 대학교 성인발달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의 조건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세 집단의 장기간 연구결과를 보면, 인간의 행복, 특히 진정한 노년의 행복이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 베일런트 박사가 연구에 참여한 후 하버드 학생 집단 외에, 이후 새롭게 추가된 터먼 여성 천재 집단과 이너시티 집단의 결과에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반전이 있었다. 특히 세 집단 모두 노년기에 이름에 따라 이 책은 대상자들의 전체적인 생애를 추적 연구한 결과를 제시했는데, 베일런트 박사의 통찰 적인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전공자가 아닌 누구라도 아울러 볼 수 있게 잘 구성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