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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Aug 20. 2021

오늘의 선물을 너에게

행복알아채기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 따님을 학교에 보내고, 혼자 조용히 연구실에서 몇 시간째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너무 욱신욱신했다. 왜 그런가 싶어서 손으로 슬쩍 꾹 눌렀는데, 상처도 없는 멀쩡한 발가락에서 피가 쭉 났다. 너무 깜짝 놀라서, 나는 쓰던 글을 멈추고 남편과 함께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우리가 간 곳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가정의학과였다. 서류 접수를 마쳤더니, 간호사가 혈압을 재주고, 당뇨 검사까지 해줬는데 다행히도 다른 수치들은 다 괜찮았다. 그런데 왜 발가락에서는 이유 없이 피가 나는지 정말 궁금했다. 얼마 후 내 차례가 되어, 의사 선생님에게 발가락이 이유 없이 한두 달 전부터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하도 욱신욱신해서 한번 눌렀더니 이렇게 피가 철철 났다고 소상히 알렸다.        

       

의사 선생님은 유심히 보더니, 수술 때 바르는 그 빨간 소독약을 정말 엄청 치덕치덕 발랐다. 그 후엔 발가락 하나에 마치 작은 눈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커다랗게 붕대를 감아주고 항생제 연고를 처방해 주면서, 한동안 무리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내가 이미 병원에 가자고 할 때부터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던 남편은 큰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남편은 병원에 있을 때부터 오는 내내 계속 잔소리를 했다.    

          

"아니, 아프면 진즉에 병원에 가자고 했어야지, 왜 그렇게 미련하게 계속 참고 있었어"라며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많이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다 말다 욱신거리다 말다가 했어, 그 정도에 누가 병원엘 가!."하고 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아무튼, 남편이랑 그렇게 투덕거리며 집에 도착했는데,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부상이랄 수도 없는 부상 덕인지 왠지 너무 피곤하고 잠이 왔다. 그래서 나는 점심 먹은 후 설거지도 안 한 채, 침대에 따끈히 전기장판을 틀고 누워있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한참 후 일어나 보니, 집에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처럼 모든 것이 다 되어있었다. 점심 먹기 전에 냉장고 청소를 해서 산더미 같이 내놨던, 설거지도 말끔히 돼 있고, 수북하던 빨래도 세탁기에서 건조기를 거쳐 이미 각자의 서랍으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마나님이 글인지 뭔지 쓰느라 힘들어서 발에 병이 난 거라며, 다 집어치우라며 그렇게 잔소리를 하던 남편이 내가 자는 사이 혼자 살금살금 온갖 집안일을 찾아 다 해놓은 것이었다. 자기도 밤새 한숨 못 자고 야간근무를 하고 왔으면서도, 온종일 아픈 부인을 위해 우렁각시처럼 바실바실 하는 낭군님의 자그마한 뒷모습을 보니, 굉장히 미안하고 미안했다.    

           

'아, 정말 미안하다. 근데,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싫은데……. 그런데 정말 미안하다. 저 사람은 어제 야간근무까지 하고 와서, 아침에 나랑 병원 다녀오느라 한잠도 못 잤을 텐데, 아까도 너무 심하게 말한 거 같긴 해. 아, 지금 정말 미안하다.'  

              

하는 마음이 왈칵 들었다.


그런데도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지고 들어가기도 싫은 못된 성질머리 때문에 미안하다고도, 고맙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신경외과 레지던트 의사가 쓴 암투병일기이자 자서전을 한 권 읽게 되었다. 바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흐름출판, 2016)였는데, 이 책을 읽고, 독서 감상 글을 쓰면서, 이런 나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는 영문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의미,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고자 했으며, 그 의미를 진정으로 아는 것은 의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내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지만, 레지던트과정 중에,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만다. 그런데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암과 싸워 이겨나가며, 레지던트 7년 차 마지막 과정도 성실히 수행해나가고 아기를 계획해 딸까지 얻는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병이 재발했다. 마지막을 직감한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서전이자 투병기를 쓴다. 그런데 그는 그 불행하고 아쉬운 마지막 순간까지도 행복하다고 쓰고 있었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가족과 함께 자신이 얼마나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순간 이미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독서 감상 글을 쓰며, 과연, 이 사람처럼 내 가족에게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까,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행복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올해로 내가 남편과 함께한 지 15년이 되었다. 그와 만난 것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이렇게도 빨리 그도 나도, 이제 누가 봐도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된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처음의 설렘과 호기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때론, 사랑은 이렇게 천천히 식어가는 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편은 나를 낳은 부모도 아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일 뿐인데도 늘 나를 자기 자신보다 더 걱정하니 정말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또, 어린아이도 아니고 위급한 상태도 아니었는데, 남편은 밤새워 일하고 와서도, 나와 함께 병원까지 같이 가주고 걱정해주었다.   

             

세상에서 누가 이보다 더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 줄 수 있을까? 유년기에 방임과 학대를 일삼던 부모 밑에서 그리도 그리워하고 절실하게 원하던 그걸 나는 이미 매일 다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유년기에 부모에게 받아내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남편이 주는 오늘의 선물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남편이 내게 하는 배려와 걱정, 그 모든 것들이 다 사랑이고 행복이었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찬찬히 보니, 늘 그는,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중년의 우리 사랑은 내 얕은 생각처럼, 식어가는 중이 아니라, 곰국처럼 깊어지는 중이었다. 사랑은, 세월이라는 옷을 입고 늘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독서 감상 글을 쓰며,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또 소중한 무언갈 잃는지도 모른 채 살아갔을 텐데….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을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이처럼 우리는 책을 읽으며, 세상의 수만 가지 진리를 얻게 되지만, 결코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으로 인해 떠오르는 우리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고 마음으로 통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생각과 책도 우리의 행동과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늘 새로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들을 습관화한다면, 현재 우리가 삶에서 무얼 잃고 있는지, 무얼 얻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실시간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책을 매개로 떠오르는 우리의 생각들을 정리해야 한다. 늘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의 우리 마음이 어제보다 1㎜라도 더 성숙해지도록 평생을 애써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성숙시키는 일은, 삶이 매일 우리에게 배달하는 오늘의 선물,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잘 알아챌 눈을 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와 글쓰기, 끊임없는 배움으로 마음을 성숙시키는 일은, 하찮은 일상 속에서도 삶이 우리에게 준 오늘의 행복을 잘 찾아내고 감사히 받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생의 끝을 모른다. 그런데도 대부분 우리는 매일 소중한 '현재'를 불평하며, 가족들이 주는 배려와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감사할 줄도, 행복할 줄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당연히 오늘의 행복을 알아챌 수 있다. 또, 오늘의 행복을 알아채는 사람만이 내일도, 모레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게 된다.    

            

우리의 오늘의 삶 속에 잔뜩 널려있는 행복 모래 한 알갱이도 놓치지 말자. 고통스러운 암 투병 속에서도 자신의 하루를 성실히 살며, 늘 가족에게 감사함과 고마움을 나타내며, 행복하다고 기록했던 폴 칼라니티처럼, 우리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치열하게 솔직해져야 하고 행복해져야만 한다.



                     

삶이 매일 너에게 주는 선물은 행복이야.  

그건 매일 네 앞으로 배달되고 있어.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시간이 멈춘 방>(고지마 미유, 더숲, 2020)

:이 책의 저자는 유품정리인으로 그동안 돌아가신 분들의 마지막 현장을 정리하며,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고독사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했다. 그래서 그녀는, 실제 그 처참한 고독사의 현장을 미니어처로 제작하고 사진을 찍어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일본의 경우만 연간 3만 명 이상이 마지막까지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 나간다고 했다. 그녀는 그 현장에서 고인들의 처참한 마지막 흔적들을 성심을 다해 처리하고 꽃과 향을 피우며, 그들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눈여겨보았던 부분은 겨울철이 되면 특히 화장실, 욕실, 복도에서 쇼크를 일으켜 고독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하는 대목이었다, 왠지 이 부분에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작년 초에 이와 비슷한 사인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경우에는 직장이었다. 아버지는 발견이 너무 늦어서 이틀 만에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셨는데, 의사는 그 사인이 온도 차에 의한 히트 쇼크일 거라고 했다. 책을 볼 때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읽어나갔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마지막 장면들이 이 저자의 화장실 고독사 미니어처 사진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난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내 마음의 눈은 아버지가 차가운 겨울 화장실에 쓰러져서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돌아가시는 생생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나 가슴이 찢길 것처럼 통증이 느껴져서 가슴에 손을 대고 "마음아 괜찮아, 마음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를 수십 번 외치고 나니까 뜨거워서 데일 것 같았던 가슴 언저리가 나아졌다. 그리고 전혀 다른 책을 읽고 있었는데도, 갑자기 내 눈 속에 아버지의 화장 후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장터에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내민 아버지의 백옥같던 유골을 보던 장면이 재생되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눈이 너무 고통스럽게 쑤시고 빠질 것 같아서 얼른 눈을 두 손으로 누르고 "괜찮아 눈아, 현실이 아니야, 괜찮아 눈아 괜찮아" 하면서 눈에서 손을 떼니 손에 눈물이 가득 묻어났다. 이상하게 나는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지금도 내 마음이 아주 고통스럽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번에 고지마 미유의 "시간이 멈춘 방"을 읽고 나서 나는 그제야 내 마음이 아직도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는 이러한 끔찍한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고서, 사람의 그 마지막은 어쩌면 너무나 고독하고 끝도 없이 처참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난 살아있는 내내 나를 좀 더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이 사랑하며, 이 순간순간을 아주 소중히 살고 싶다. 삶의 지금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나가야겠다.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삶이 너무나 짧다. 이 책은, 삶이, 평범한 오늘의 삶이 지긋지긋 하다는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볼 책으로 추천한다. 평범한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속에 얼마나 행복할 거리가 많은지, 지금 오늘 여기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탈 벤샤하르 강의, 왕엔밍엮음, 느낌있는책, 2014)     

:이 책은 세계 3대 명강의 중 하나라는 탈 벤 샤하르의 행복학 강의를 수강한 왕엔밍이 그 핵심을 묶은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물질의 요구를 만족한 상태에서 풍요로운 금전은 더는 인간의 행복감을 높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기본적인 삶의 요구가 충족될 만큼 물질적 여유가 생긴 다음 인간의 행복은 경제적 능력, 권력 등의 물질적인 조건들보다는 세상과 자신을 보는 마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이 주장의 근간은 1998년 마틴 셀리그먼이 처음 체계화한 "긍정심리학"에 두고 있는데, 긍정심리학이란, 인간 내면의 긍정적 면을 촉진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다. 여기서 주장하는 인간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우리의 장점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삶의 변화를 추구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지속 가능한 행복은 학습과 훈련으로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시각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같은 일상이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와 정신적인 고통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총 3장에 걸쳐 긍정심리학이란 무엇인지, 긍정적인 삶의 관점은 무엇인지, 행복을 기르기 위한, 핵심 지침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복을 얻어야 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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