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목포행 기차에 올라탔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로 꽉 찬 기차 객실은 금세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들뜬 목소리로 가득했다. 아마도 통일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둘기호는 지금의 전철과 비슷한 좌석 배치로 의자가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다른 기차에 비해 정차역이 많고 속도까지 매우 느렸다. 대중적으로 많이 이용했던 통일호, 조금 나은 것이 무궁화호, 제일 좋은 것이 새마을호였다. 대부분의 집에 승용차가 없었던지라 어딜 가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던 시절, 우리 같은 서민들은 보통 통일호나 시외버스를 이용했다.
지금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면, 학교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게 일반적인 교통 코스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단체로 시내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제주도행 배를 탈 수 있는 목포로 갔다. 물론 그때만 해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학교 또한 극히 드물었다. 우리 학교가 그래도 앞서 갔던 모양이다.
어쩌다 한번 할까 말까 한 기차여행에 들뜬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허락된 일탈을 즐기고 있었다.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면 그 몇 분 동안 객실엔 수면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게 된다. 짓궂은 아이들은 터널만 나오길 기다렸다가 선생님이나 특정 친구를 끌고 와 엎드려 드려서 등을 두들겨 때리는 일명 ‘인디언 밥’놀이를 했다. 그리곤 기차가 터널 밖으로 빠져나가기 직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야 한다.
지금은 승용차가 한 집에 한두 대씩 있는 세상이다 보니, 예전만큼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어졌다. 나 또한 장거리 여행 시에는 대부분 남편이 운전하는 승용차 조수석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편하게 이동한다.
얼마 전 10여 년 만에 기차를 타게 되었다. 처음엔 KTX나 새마을호를 알아보았는데, 원하는 시간대에 표가 매진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타게 된 무궁화호 열차!!
와우~~!!
예전 그대로의 열차를 보고 마치 레트로 감성여행을 하듯 신이 난 나는 연신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좌석이 좁고 좌석 간 거리도 비좁아서 조금 불편했지만, 추억의 수학여행을 소환할 만큼 마음이 들뜨고 설렜다. 그때처럼 터널을 지나도 전혀 어둡지 않고,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파는 홍익회 카트 대신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지만, 내 눈앞에는 그 시절 기차 안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무궁화호 열차는 수익성이 낮고 속도나 쾌적성에서 떨어지다 보니, 내구연한이 다 되면 새 것으로 교체되지 않고 운행중지될 것이다. 통일호와 마찬가지로 추억의 기차 하나가 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은 듯하여 벌써부터 아쉬움이 남는다. 무궁화호 열차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 낭만 열차를 다시 타보리라 생각한 날이었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나도 이젠 영락없이 나이 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렇게 추억을 하나씩 꺼내면서 그리워하고 설레는 것을 보니...... 작은 추억 하나에 그저 행복하고,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인생이란 나이 들수록 지난날을 추억하며, 그 힘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100세 시대라는데, 더 나이 들어서 꺼내 볼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추억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굳이 여행의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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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 직원들로 구성되었던 재단법인으로, 카트에 음료, 과자, 달걀 등을 싣고 열차 내에서 밀고 다니며 판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