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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글 Dec 21. 2021

안녕, 오라버니


초록 검색창에 내 이름을 적어본다.

동명이인인  미스코리아와 골프선수.

나와 관련된 정보는 하나도 안 나온다. 십수 년 전엔 그래도 두어 개는 나왔는데..  



지인들의 이름도 한번 검색해본다.

내가 무명(無名)이니 내 지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날,

문득 생각난 이름을 적어보고 의외의 결과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부고(訃告)였다.

일반인은 좀처럼 실리지 않으나 자녀가 공무원이라 그분의 부고를 접할 수 있었다.

그것도 2년이나 지난 부고를...




1996년.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통신을 이용해야 했고 한참 인기였던 하이텔 대신 이제 시작한 유니텔이 왠지 끌려서 가입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였다.

동호회가 붐이라 몇 군데 가입도 해보고 끄적거린 습작도 게시판에 올려보고, 그렇게 현실  아닌 랜선 친구(그땐 모뎀 친구였네~^^ )들을 알아갔다.


어느 날, 접속을 하고 메일함을 열었더니 낯선 아이디들의 수십 통의 메일이 와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게시판에 올린 글이 으뜸글로 선정되어 밤새 조회수가 폭발하고 글에 감동(?) 받은 이들이 보낸 팬레터가 가득 온 상황인 거였다.


팬(?)들과는 대부분 인사치레 왕복 메일인데 그중 몇 분과는 꽤 오래 메일을  주고받았고 그분도 거기에 있었다.

아이디로 검색을 해보니 여러 번 으뜸글에 선정되었고 글을 읽어보니 내가 쓴 글들은 그분에 비하면 겨우 옹알이 수준으로 느껴졌다.



굴곡 많은 당신의 인생,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

좋은 책과 사람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의 글솜씨를 아까워하시며 국문과 진학을 추천하시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님의 책과 국어사전, 교재까지 보내주시며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 응원해주셨다.


어느 가을

대학로 찻집에서 만나 뵌 그분은

상상만큼 멋진 분이셨다.

멘토가 되어주신, 나를 《아우》라 부르시며

터울 큰 막냇동생 챙기듯 참 많이 아껴주셨던.

몇 해 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 이름이 참 고운 가게를 셨다.

마음이 힘들었던 날, 무작정 버스를 타고 그곳을 간 적이 있었다.

연락이 엇갈려  다시 돌아와야 하는 시간, 터미널에서 잠시 뵌 게 《오라버니》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사이, 나도 서울 회사생활을 접고 인천으로 내려왔고

늦깎이 진학을 하고 (추천하신대로 국문과를 가야 했으나 한자가 너~ 무 싫어서 컴퓨터공학으로) 새 일을 구하고 연애를  결혼을 하고 그분을 잊어갔다.



지난여름

책장 정리를 하다가 신영복 님의 책들을 들추니 첫 장에 적어주신 글이 보인다.


... 그래.

      오라버니가 있었지.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침대 밑 상자에서

보내주신 메일을 출력해 넣어둔 클리어 파일철을 찾았다.

넘겨보다가 어찌 지내실까...

연락처도 없네..

그러다 검색해 본 그분의 이름에 부고가 있었던 거였다.


그저 회사를 다니고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별다른 기술 없는 직장인에서 경단녀로 주부로 살 수 있었던 내 삶을,

다시 공부하고 새 일을 찾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 주신 분.

적고 보니 참 큰  역할을 해주셨는데 십수 년을 잊고 살았었네.. 사람 참....



방학하면 원주에 가보려고 한다.

그분이 잠들어 있는 곳에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그땐 몰랐지만 당신의 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나도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에게  오라버니처럼 좋은 영향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겠다고.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20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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