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72
1972년 11월,
스물한살의 부산 아가씨는
외항선을 타는 열살이 많은 양산 남자와 결혼을 했다.
직장 상사의 소개로 만나본 남자는
서툴었지만 친절하고 예의가 발랐고
만날때 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여 주었다.
열세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언니집에 얹혀사는 아가씨에게 결혼은 도피였고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결혼한 그 다음달에 제사가 있었다
일년에 7번의 제사와 명절이 2번, 시어머니의 생신까지
열두달 중에 열한번은 상을 차려내야하는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스물한살이 무엇을 알았을까.
뱃사람 남편은 없는 날이 더 많았고,
생선을 손질해야했고 나물을 무치고 탕국을 끓여야했다.
몇 해 후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윗대의 제사는 아들이 없는 큰댁에 양자로 갔던 시숙이 가져가고
두분 시부모님의 제사는 모시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생 정도부터
제사가 있는 날에는 엄마 옆에서 조금씩 도와드렸던 것 같다.
외항선을 타는 아버지는 안계신 날이 더 많았고,
엄마가 준비해주시면
두부를 굽고 고구마부침개를 했다.
덕분에 스무살쯤 되었을 땐
전 부치는 솜씨는 아주 베테랑이 되었다.
[치자물 반죽으로 샛노란 고구마부침개 - 부산이 고향인 엄마는 항상 고구마 부침개를 하셨다.]
겨우 전이나 부치는 정도라
제사준비가 얼마나 힘이 든지 잘 몰랐다.
엄마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힘들어하셨고
일흔을 넘긴 해에
명절 제사는 준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가을이 완연한 추석명절에
제사준비 안하고 가족들이랑 좋은 곳에 여행가고 싶다는 말씀과 함께.
아버지는 조금 서운해하시는 듯 했지만
수긍하셨고
그해부터 우리는 여행을 갔다.
그리고,
어제
53년간 지내온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제사도 마지막임을 고하고
술을 따라올렸다.
[2025.4.19 - 음력 3.22 - 마지막 제사상 ]
이제,
홍합과 오징어와 소고기 산적을 못 먹을테고
제사라 맛이 더 특별했던 탕국도, 나물도 못 먹을테지만
그동안 항상 정성을 다했던
엄마의 제사상 차리기는 끝을 맺었다.
지난주에 나라를 떠들썩하게 해서 그 존재가 대단해진
헌법재판관의 퇴임식이 화제가 되었다.
여러개의 꽃다발을 들고 영광의 퇴임행사를 치르는 모습을 보며
긴 시간, 제사를 모시고 "퇴임"하는
엄마에게도 꽃다발을 안겨드려야하나 생각했다.
아니, 꽃다발보다
아버지의 옆구리를 찔러서
금일봉을 드리는게 나을 듯 싶다 ^ ^
엄마,
고생하셨어요
존경합니다.
그동안 조상을 잘 모신 엄마의 공덕으로
우리 모두 건강하고 평안합니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