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FSD(Full Self Driving)를 사용하고 드는 생각
최근 Tesla Korea의 FSD 국내 시연 영상이 X에 갑작스럽게 올라왔습니다. 이를 본 기존 테슬라 오너들 사이에서는 조만간 한국에서도 FSD 시대가 열리겠다는 기대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영상 공개 후 2주만에) 국내에 배포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HW3 및 중국산 차량은 제외..
저는 2024년 말 미국 여행 중에 FSD를 충분히 경험해보았기에 이번 FSD 업데이트가 한국 지형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자동 운전' 이라는 부분에서는 충격이 조금 덜했던 것 같습니다.(아마도 미국에서의 충격이 너무나도 컸던걸지도). 그래서인지 국내 환경에서 FSD 이용 후기를 주변에 언급할 때 이를 어찌보면 '당연한 과정'이라고 더 많이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먼 미래일것 같은 ‘자율주행’ 기술이 어느 날 불쑥 내 일상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사실은 묘하게 현실감을 자극한것도 없지 않았는데요. 뭔가 미래는 서서히 다가오는 것만 같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난 듯한 느낌일까요?
사람들은 흔히 FSD의 등장을 아이폰의 등장과 비교하곤 합니다. 기술 발달로 인한 세상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사용 경험만을 놓고 보면 둘은 상당히 다른 종류의 충격을 주는듯 합니다. 스마트폰이 손안의 작은 기계를 통해 ‘더 많은, 생산적인 일’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이었다면, FSD는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혁신을 이끌어 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도, 나의 능력을 확장시켜주는 것이 아닌, 단순히 ‘해야 할 것’을 하나 지워주는 것. 나에게서 운전이라는 행위를 떼어내고, 그 시간을 나에게 돌려주는 방식의 변화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FSD는 오히려 로봇청소기나 식기세척기 같은 생활형 기술에 더 가까운 인상도 들었습니다. 차값에 소프트웨어 값을 포함한다면, 두 가전 제품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 그렇지, 개념적으로는 충분히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든, 업데이트 이후로 FSD를 계속 사용하면서, 운전자의 경험을 어떻게 높일 수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UX 디자이너들은 사용 경험을 좋게 하기 위해, 기존의 서비스 과정이나 제품을 기능을 더 직관적으로 정리한다던가, 이용 과정에서 더욱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하곤 합니다다. 혹은 사용하기 복잡한 요소를 단순화 하기도 하고, 입력해야 할 정보를 줄이는 방식 처럼 인지적 부담을 낮추는 노력들을 흔하게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 개선의 대부분은 주로 ‘온라인 영역’에서 익숙하게 이루어지다 보니, 신체적인 경험 부하를 경감시켜줄 수 있는 ‘물리적 영역’에서의 사례는 FSD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신체적 경험 부하를 줄여주는 서비스는 '온라인 장보기'가 대표적인 시작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0년대 소셜커머스가 발전하여 사람들이 직접 장보러 가는 시간을 줄여 주었고, 뒤를 이어 '집안일'을 덜어주는 각전 제품들이 2020년대부터 일상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서 ‘신체적 경험 부하를 덜어주는’ 기술은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운전, 청소, 요리, 운반 등 몇몇 영역을 제외하면, 인간의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의 몫인것 처럼요. 그래서인지 FSD가 보여주는 신체적·정신적 부담의 제거는 단순한 기능 개선이라기보다, 앞으로 도래할 기술 흐름의 전조처럼 느껴진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보면, 언론이나 연구자들이 'AI 혁신 이후에 로봇 혁신이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 전망은 단순한 예측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기술의 변화 속도와 별개로, 노동의 가치를 곁눈으로 배우고 자란 세대이이다 보니, 땀의 귀중함,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고 있는데, 기술 발달로 그 가치가 변할 것이라고 하니 살짝 두렵기도 한게 사실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즈에 올라온 ‘아마존의 50만 명 규모 자동화 계획(Amazon aims to replace over half a million US jobs with robots: report, 2025/10/22)’ 기사와, 해당 내용에 대하여 일론 머스크가 X에 남긴 글 "모든 직업을 AI와 로봇이 대체할 것(AI and robots will replace all jobs. 2025/10/22)”을 보면 세상 변화의 속도를 실감하게 만듭니다. 물론 노동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대는 먼 미래일 것 같지만, 앞으로 인간에게 요구되는 노동의 종류가 완전히 달라지는 시대는 죽기 전에 한 번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가 결국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AI가 창출한 부를 통해 보편적 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을 제공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인간의 창작 동기가 ‘생존’에서 ‘의미’로 이동할 것이라는 주장도 조금씩 현실적 수준에서 나오고 있죠. 앞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욕구, 스스로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 같은 것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데, AI로 생성된 이미지, 동영상들이 '재미'와 '흥미'의 소재로 각광을 받는걸 보면 이또한 다른 세상 이야기 같지만도 않습니다. 어쨌든 기술이 일을 대신해주는 시대가 올수록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들은 점점 더 ‘의미 기반 활동’으로 옮겨간다는 주장에는 개인적으로도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과 나눴던 대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FSD를 사용하여 집까지 오고, 자동으로 주차를 한 뒤 집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에서 “AI가 뭐를 대신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물어 보았는데요. 아들은 주저 없이 “학교 숙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 시간동안 뭐할건데?”라고 되물었더니, “친구랑 게임 해야지”라고 하더군요. 기술이 발달하면 개인의 ‘재미’, '즐거움' 그리고 타인의 ‘인정’이 삶의 가치가 된다고도 하면, 자식의 미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정리하면, FSD는 단순한 자율주행 기능을 넘어, 앞으로의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한 작은 힌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얹어주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꼭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대신 맡아주는 기술. 부담을 덜어주고 시간을 돌려주며, 다른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기술 말이죠. 어쩌면 기술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계속 붙들고 있어야만 했던 일들을 조용히 비워가는 것에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