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톨로지 관점에서 바라본 게임의 재미

존재 방식으로 풀어보는 게임의 재미

by 버터멜론

어떤 게임이 출시되면, “이 게임은 왜 재미있을까?” 혹은 “이 게임은 왜 망했는가?”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게임의 성공 혹은 실패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콘텐츠, 보상 시스템, 레벨 디자인, 게임사의 운영 등)가 있음을 매우 논리적으로 정리하죠. 사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분석들은 대부분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문득, 나의 게임 경험들, 어떤 게임에는 수백 시간을 쏟아붓고 어떤 게임은 설치 후 30분 만에 조용히 삭제해버린 기억을 떠올리면, 위의 분석들이 100%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옵니다(일반적인 성공 변수와는 다른 이유가 존재함). 즉 모든 성공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게임도, 나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혼자만의 질문 방향을 조금 바꿔보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재미있는 게임(Fun Game)’이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재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열린 상태(Game has fun)로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generated_image_6642454c-0bc9-460b-ab1e-e925080e914c.png Where is fun? / nano banana generated


유독 서두 길었는데.. 최근 온톨로지가 여러 분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만큼, 게임의 재미 역시 존재 방식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습니다.


온톨로지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재미있는 게임’보다는 재미가 ‘있을 수 있는’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재미는 게임 패키지 안에 담긴 관념이라기보다는, 플레이어와 게임 세계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성질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현실과는 다른 ‘존재의 여백’을 잠시 마련해주는 장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거죠.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너무 당연하게 인식하겠지만, 플레이어는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현실에서의 실패는 비용이자 책임으로 남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게임 속에서는 죽음이 리셋되고 실패는 다음 판을 위한 정보가 됩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접속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고, 경쟁에서 뒤처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기만 해도 세계는 유지됩니다. *MMO 장르에서는 강제적 관계 형성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이를 자극하고 있긴 합니다..


《동물의 숲》에서 보여주는, 플레이어의 삶의 리듬을 침범하지 않고, 그저 삶 속에 스며드는,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관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지속적인 플레이와 반대의, 우리가 게임을 떠나는 ‘이탈’의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게임이 재미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게임 속에서의 존재 방식과 내 삶의 균형이 어떤 계기로 어긋났을 때, 그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는 경우가 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실제 게임을 그만두게 된 경우를 조사하면, ‘재미가 없어져서’ 라기 보다는 (실제 응답하기는 다소 어려운 표현이겠지만) ‘게임 내 관계가 약해졌거나’, ‘다른 곳의 관계가 강해져셔’일 경우가 더 많을 듯 합니다. 단적인 예로, MMO 장르에서 일상적인 장시간 파밍과 레이드 부담은 학생 시절에는 감내할 수 있는 요소였지만, 사회인이 된 이후에는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거죠. 게임이 변한 것은 없지만, 내 삶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르게 참고해볼 수 있는 사례로는《No Man’s Sky》라는 게임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게임 출시 초기, 광활하지만 공허한 세계는 게임과 플레이어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만 이후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비워진 세계를 플레이어가 채워나갈 수 있게끔, 더 머무를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데 집중했습니다.결국 게임과 유저 사이에서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해 나간 좋은 사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12-18 094304.png No Man's Sky


결국 재미의 가능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은, 단순히 신규 기능을 무한하게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콘텐츠와 플레이어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더 가까운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온톨로지에서 이야기하는 개념과 존재의 관계처럼, 게임 역시 각 요소가 플레이어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 포인트입니다.


최근 즐겨 플레이하고 있는 《아크레이더스》내 추가 된 ‘콘텐츠’ 에서도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게임 안에는 탐험 가능한 맵이 여럿 존재하는데, 최근 추가된 ‘스텔라몬티스’라는 맵은 다른 맵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실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플레이어 간 교전이 야외맵 대비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큰 맵이 있으니 작은 맵을 추가했다기 보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경험(PvP)을 선호하는 플레이어의 니즈를 파악하고 게임 콘텐츠와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정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유추하게 됩니다.


product_691b3c1a0e8791.69803831.jpg Stella Montis / Arc Raiders


정리해보면, 게임의 재미는 완성된 상태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재미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잠시 존재할 수 있는 세계이며, 그 세계와의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재미는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이 관계가 느슨해질 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게임을 떠나게 됩니다. 이탈은 실패라기보다는 관계의 변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을 적다 보니, 게임 업계에 있으면서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데,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인데, 아마도 아이를 둔 대부분의 부모의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아닐까 합니다.


위 정리한 관점에서 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해 보입니다. 게임을 강제로 제한하기보다는, 게임이 아이에게 제공하고 있던 그 ‘관계’를 현실로 옮겨 보는 것입니다. 아이와 더 자주 놀아주고, 이야기를 듣고, 가능하다면 아이가 하는 게임을 같이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게임을 비난하거나 통제하려 들기보다는, 그 세계에 잠시 함께 들어가 보려는 태도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세상 척척박사인 GPT에 물어봐도 비슷한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온톨로지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게임 시간을 줄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게임 밖의 관계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요? 이번 주말 아이와 함께 좀 더 노력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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