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게임 플랫폼이 살아남는 법

‘불필요한 노력 제거’의 힘 – <플랫폼 자본주의> 재해석

by 버터멜론

최근 쿠팡 사태를 바라보며 플랫폼 비즈니스의 태생과 성장에 대한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플랫폼’을 키워드로 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검색 결과로 올라온 수많은 책들 에서도 빨간 색의 유독 강렬한 표지와,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마치 경제 필독서 같은 느낌의 책, '플랫폼 자본주의'. 이 책은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에 생각보다 얇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책 속에 담긴 내용만큼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플랫폼 세상의 모습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플랫폼 자본주의 / 출처: YES24


*참고로 닉 서르닉(Nick Srnicek)의『Platform Capitalism』은 2016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20년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플랫폼 산업을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산업 형태로 바라봅니다. 제조업의 수익률 하락과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데이터’를 원자재로 ‘가치’를 생성하는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였다는 분석입니다. 저자는 플랫폼을 크게 광고 플랫폼(Google, Meta, Naver), 클라우드 플랫폼(AWS, Azure, GCP), 산업 플랫폼(GE, Siemens), 제품 플랫폼(Netflix, Spotify), 린 플랫폼(Uber, Airbnb, 배달의민족)으로 분류하며,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 독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플랫폼 권력은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접근 조건’을 통제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업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시작이 있으면, 이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가가 점차 궁금해 졌지만, 저자는 미래에 대한 조언보다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에 더 집중하였습니다. 특히 린 플랫폼에 소속된 노동자가 ‘독립 계약자’로 분류되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사회에서의 보장이 약화되는 점을 꼬집었고,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단기 일자리 경제)가 불안정한 소득과 초과 착취를 양산한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플랫폼 제공자가 플랫폼 이용자에게 위험과 비용을 전가하면서, 반대로 그들은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며 자본주의의 구조적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통찰도 인상적입니다. 처음 책이 쓰여진 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플랫폼 사용자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을 돌아보면 당시 저자의 문제의식과 미래 예견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Gig Worker / image created with Nano Banana


저자는 플랫폼의 핵심 권력이 ‘접근 조건’을 설계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용하는 대부분의 플랫폼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기능, 더 많은 선택지, 더 많은 비교를 제공하며 주의를 끌어왔지만, 자본주의의 발전 방식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역시도 '노력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즉 기술 혁신을 통해 효율을 증대한다는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해 왔습니다. 아마존의 FBA(Fulfillment by Amazon, 판매자의 상품 포장·배송·반품을 대신 처리해주는 서비스)나 넷플릭스의 콘텐츠 추천 시스템처럼 성공한 플랫폼들은 공통적으로 사용자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나씩 제거해 준 것 처럼요.


Amazon Fulfilment Center / 출처: aboutamazon.com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흐름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플랫폼과 AI가 융합되는 것은 기본이고, 수많은 AI 서비스들 조차도 점차 플랫폼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Google AI Studio, Tencent Byteplus). 다양한 AI 서비스들은 역시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사소한 판단과 반복적인 노력을 ‘대체하거나 제거’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죠. 구글의 NotebookLM은 수십, 수백 쪽에 달하는 논문을 일일이 번역하며 읽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었고, 검색창에 키워드를 하나하나 입력해 자료를 찾고 정리하던 과정 역시 Deep Research 버튼 딸깍 한 번으로 자연스럽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시간을 줄여주고, 해야 할 일을 생략해주는 AI 서비스의 사례는 이제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Deep Research / OpenAI


게임 UX 관련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인 만큼, 자연스럽게 게임 플랫폼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블록스의 최근 행보가 매우 인상적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로블록스는 2025년 개발자 컨퍼런스(RDC, Roblox Developers Conference 2025)를 통해 AI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AI를 통한 창작의 민주화’를 비전으로 내세우며,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크리에이터의 비용과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여주는 다양한 AI 기능들을 공개했습니다. 게임에 사용할 3D 오브젝트를 빠르게 생성해주는 기능, 몇 시간씩 걸리던 아바타 설정을 자동화하는 기능, Figma와 같은 외부 툴을 MCP로 연결해 UI 디자인을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기능 등이 그 예입니다.


※ RDC 2025 발표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h25HUtBHFk&list=PLuEQ5BB-Z1PJ8Du1rJ_JaMpW1W_G2T_lm&index=8


*RDC 2025에서 발표된 주요 내용은 로블록스 데브 포럼에 한글로도 올라와 있어 비교적 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https://devforum.roblox.com/t/rdc25-what-we-announced/3920245


게임 플랫폼 산업 전반을 바라보면, 게임 유통은 스팀이, 게임 엔진은 언리얼과 유니티가, 커뮤니티는 레딧과 디스코드가, 미디어는 유튜브와 트위치가 각각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과거 게임 산업을 이끌어온 전통적인 강자들(EA, Blizzard, Ubisoft, Microsoft 등)이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반면, 로블록스만이 자신만의 영역을 비교적 단단하게 구축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해면, 전통적인 게임 개발사에게 필요한 플랫폼 전략은 ‘접근 조건’을 설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보입니다. 로블록스가 그러했듯, 범용적인 서비스에서의 경쟁을 최소화 하고 자신들이 전문성을 축적해온 영역, 즉 정보 자산에서 우위를 갖는 분야를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다음 스텝이지 않을까 합니다. 각자의 홈그라운드 안에서 라이브 서비스 운영을 관리하면서, 책에서 언급한 네트워크 효과와 데이터 우위를 가져간다면, 궁극적으로 사용자의 인게이지먼트를 강화하고, 내부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유리한 시스템을 마련해 나간다면 다른 플랫폼이 넘볼 수 없는 해자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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