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동해 여행 06 -끝-|작가 코스프레하는 여행지에서의 아침
언제인지 모르게 잠에 들어, 조금은 피곤하게 일곱 시 반쯤 눈을 떴다. 침대에서 조금 뭉그적거리다 <여행의 이유>를 마저 다 읽어 내렸다. 참 좋은 책이야. 탁- 하고 다 읽은 책을 접어 머리맡에 두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잠시 누워있던 때였다. 문득, '나도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무슨 바람인지 벌떡 일어나 가져온 노트북 화면을 열고, 1층 침대를 책상 삼아 그 앞에 앉았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휘적휘적 써 내려가는 느낌. 굉장히 낯설면서 또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잘 써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두 문장 이상을 잘 쓰지 못하는 나인데, 막 읽은 책의 여운 덕분인지. 못 쓰면 뭐 어떤가- 하며 마구 써 내려갔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다 이 날의 충동 덕분이다.
글쓰기에 꽤나 열중하던 중 아침 9시 즈음이었나? '똑똑-' 하고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하고 열어보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손수 쟁반에 조식을 가져다주셨다. 안내사항에 아침에 게스트하우스 아래 카페로 오면 조식을 주신다는 메모를 보긴 했었다. 귀찮아서 생략하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손수 가져다 주실 줄은!
조식은 아주 맛있었다. 아기자기 정성이 가득했다. 무려 아이스크림까지 올라간 와플도 있었고, 직접 만드신 듯한 빵 위에 베이컨, 달걀까지. 지금까지 먹어본 조식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말이다. 도미토리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점이 테이블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긴 했지만, 이번엔 1층 침대를 테이블 삼아 조심조심히 먹었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타닥타닥 타자를 치고 있는 나의 모습이란. 마치 내가 작가가 된 것 같이 느껴져서 참 재밌다고 생각하며, 아침을 마무리 짓는다.
다행히 둘째 날 아침은 유리창 너머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화창한 동해바다도 보고 갈 수 있겠구나! 싶어 기뻤다. 이틀 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가도, 생각해보니 하루는 흐린 바다 그리고 또 하루는 화창한 바다를 모두 보고 갈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어 더 좋았다.
느긋히 준비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는, 고민하다가 어제 갔던 그 카페 쪽에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어제는 할리스에 갔으니 오늘은 그 옆의 파스쿠찌를 가려고 했는데, 택시를 할리스 앞에서 내리게 된 거지.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또 할리스에 갔다ㅋㅋ. 뭐... 하나만 파는 것도 내 스타일인걸.
카페 2층 한 켠에 자리를 잡아두고,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시켜 밖으로 나왔다. 크으- 날씨가 진짜 좋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오늘은 좀 더 여유 있게 바다 구경을 했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니 귀찮은 것도 없다. 아직은 이른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고, 유유자적. 좋다.
어제 기찻길을 쫄보처럼 지나가면서, '아 이 기찻길에 진짜 기차가 지나가는걸 한 번 보고 싶다. 근데 못 보겠지?' 했었는데 말이다. 정말 딱 그때, 화물 열차가 하나 지나갔다. 놓칠세라 카메라로 찰칵찰칵, 마치 행운의 징표인 것처럼. 내가 바랬던 게 이루어질 거라는 그 어떤 시그널처럼 느껴져서 행복해졌다 (의외로 단순하다). 이 기차가 딱 이 순간 지나간 것처럼, 올해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왔던 것들도 눈앞에 딱 일어났으면 좋겠다!
사람이 아직 많이 없는 카페 안. 노래 듣고 책 읽다가, 노트북 하다가.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정말 훅- 갔다. 이 할리스커피는 나중에 운전 잘하게 되면, 꼭 한번 더 내가 운전해서 한적한 날 놀러 와야지. 주말에도 오전엔 굉장히 한적했지만, 평일에 오면 더 조용히 쉬기 좋을 것 같은 그런 카페였다. 눈이 맑아지는 것 같은 오션뷰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서울로 가는 열차는 두시. 솔직히 여행이라 하기엔 반절은 카페와 숙소에서 있었다만. 이런 여행도 여행이니까. 푹 쉬고, 열심히 생각하고, 그러다 멍도 때리고. 하룻밤 잘 있다 갑니다!
서울로 가는 KTX를 기다리는 대합실. 문득 쳐다본 계기판에 공항이 생각나서,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공항이 추억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이 애틋한 감정이 신기하다. 나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그 느낌을 내심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열차 대합실의 출발 알림판만 봐도 이렇게 아련하고 설레는데, 다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그땐 정말 나 같은 집순이도 말 못하게 설렐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는 <나의 첫 사이드프로젝트> 라는 책을 가볍게 훌훌 읽었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눈에 확 들어와 그 자리에서 결제하고 읽어 내린 책이었다. 오버를 조금 보태면 그때 그때 운명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도 그랬다. 책을 읽고는 나도 당장 무언가 시작하고 싶다!라는 강렬한 마음에 뭘 해보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럼 아예 이런 여행을 매월 가고, 글로 남겨보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졌다.
'글쓰기', 그리고 '여행 다녀와서'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조합의 발견이,
아마 나의 이번 <여행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며.
나의 다음 여행은 또 어떤 이유를 선물해줄지 기대가 된다.
동해/묵호 1박2일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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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21.03.21
3월의 먼슬리여행노트
동해/묵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