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없고요. 절은 좋아합니다.

4월 가평 템플스테이 01|나의 첫 템플스테이의 기억

by abcd



먼슬리 여행노트, 4월호의 테마는


이름은 참 중요하다. 무엇이든 이름 붙여주면 더욱 애착이 가고 특별해진다. 나의 귀여운 첫 사이드프로젝트에 <먼슬리 여행노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4월엔 어디로 떠나볼까 3월부터 설레었다.


그러다 문득 템플스테이가 떠올랐다. 딱 한 번 가봤지만 아직도 가끔씩 꺼내보는 특별한 기억 중 하나. 저번 달에 바다를 실컷 보고 왔으니 이번엔 바다보다는 산과 가까운 건 어떨까 싶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절은 아름다운 산을 끼고 있을 테니, 어딜 선택하든 그곳이 산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정했다.

4월 여행의 테마는 #나홀로 #템플스테이





이상하게 절을 좀 좋아하는 무교걸


나는 종교가 없다. 부모님도 무교이시고,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무교다. 다만 종교에 뚜렷한 색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뿐이지, 종교를 갖는다는 것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은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믿음이 없다 보니 신실한 종교인 분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달까?


그런 와중에 불교는 이상하게 늘 나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절은 무서움 그 자체였는데 말이다. 불상도 무섭고, 목탁 소리도 무섭고, 향 냄새마저 무서웠다. 그냥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무서웠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이제는 절에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보통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인 절이 많으니 자연의 힘일 수도 있겠다.


tmi를 하나 얘기하자면 대학교 때 Introduction to Buddhism을 교양 과목으로 수강한 적도 있었다. 반은 순수한 호기심, 반은 학점 부스터(ㅋ)라는 소문에 친구와 함께 다소 불순한 의도로. 사실 무슨 내용을 배웠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는 불교가 학문적 관점으로도 참 신비롭고 재미있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생각하기도 하고.





스물둘, 나의 첫 템플스테이의 기억


나의 첫 템플스테이는 8년 전, 한 늦여름 어느 날이었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인생의 사춘기를 겪던 그때. 당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내쳐진, 세상 물정 모르는 이십 대 초중반이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까지도 착실하게 정해진 트랙을 따라 모범생처럼 졸업했다. 우리나라 많은 친구들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내' 생각이라는 건 별로 해보지도 못한 채 나이만 성인으로 사회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때는 남들은 다 하고 싶은 직무, 가고 싶은 회사가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백일장의 기억과 같았다. 다들 뭐에 대해 그렇게 쓰는 건지 쉽게도 주제를 잡고 술술 써 내려가는 것 같은데, 그 옆에서 혼자 갈피를 못 잡고 초조해하던 나. 애꿎은 지우개나 손톱만 뜯으며 빈 원고지만 바라보던 그 기억.


처음으로 많이 방황했다. 지금 돌이켜 보자면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고,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참 당연했는데.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땐 주위에서 괜찮다고 말해줘도 진심으로 와닿지가 않았다. 사회에서는 소위 졸업 후 공백기는 취업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동안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잘 해내는, 모범생 딸로 컸기 때문에 '못해도 돼'라는 말보다는 '잘 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믿음 어린 기대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 불안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교양수업의 기억을 더듬어 절에 한 번 가보고 싶었나 보다. 거기 가면 좀 답이 나올까 싶었던 건지. 마음이 불안할 때 처음으로 찾은 절. 그게 나의 첫 템플스테이의 기억이다.





순천 선암사에서 템플복을 입고 하루를 보냈다. 당시 순천 여행을 갔다가 하룻밤 묵는 일정이었는데, 늦여름의 선암사는 녹음에 싸인 고풍스럽고 웅장한 절이었다. 우리나라 사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굉장히 전통 있고 아름다운 절이구나, 하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백팔배나, 연등 만들기와 같은 체험보다는 '사색을 한답시고' 휴식형을 선택해 산행 같은 소소한 일정 마저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도 그저 혼자 자연에서 쉬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튿날 우연히 하게 된 스님과 일대일 차담이다. 그날 나는 처음 보는 스님 앞에서 펑펑 울었다.


스님은 왜 산행도 안 오고 혼자 노냐고 하셨다. '그냥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더니, 그저 따스한 말보다는 다소 예상치 못하게(?) '지나친 생각은 다 독이다'라고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있냐라는 스님의 질문. 무작정 듣기 좋은 위로의 말뿐이 아닌, 당시에는 타이름에 가깝게 들렸던 조언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인지 테이블에 있는 휴지를 건네주시는 스님의 손길이 자연스러웠다. 눈물이 쏟아지는 스스로가 참 당황스러웠다. 나는 당시 힘든 게 아니라 그저 멋지게 처음 혼자 여행을 온 것이라 생각했고, 울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그저 툭하고 한 번 건드신 것뿐인데, 나는 엉엉 눈과 코가 빨개지도록 울어버렸다. 그게 참 시원했다.


선암사에서 떠나 시내로 나가는 버스 맨 뒷자리에서 조금 남은 눈물을 몰래 훔치며,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누었던 정확한 대화는 되살릴 수 없어도, 스님의 뼈때리는 따뜻한 조언이 오랫동안 기억에 머무르고 있다.


8년 후의 나는 여전히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때보다는 분명히 더 강해졌고 안정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때와는 또 다른 고민들로 이리저리 흔들리고는 한다. 언젠가 또 가야지 마음만 먹었던 템플스테이가 하필 이때 생각났던 것을 보면 이유가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절에 가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보다는, 그냥 가서 힐링이나 하고 오자라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에게 절은, 무교인에게도 관대한 쉼과 위로를 주는 곳이다.





그리고 서른, 나의 두 번째 템플스테이


나의 두 번째 템플스테이는, 가평에 있는 백련사로 정했다. 이유는 1)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2) 적당히 크고 조용한 절에 가고 싶어서 정도.


떠나기 전 인터넷에 혼자템플스테이 라고 검색하니 많이 나오는 절 중에 낙산사, 그리고 월정사가 있었다. 낙산사는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으나 산보다는 바다와 가까운 절 같아 보여 패스했다. 월정사는 고민하다가 템플스테이로 꽤 많이 유명한 절 같아 너무 북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번엔 패스했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하게 된 가평의 백련사 (지금 보니 전국에 '백련사'가 엄청 많다).

4월의 가평 백련사



템플스테이는 공식 홈페이지(https://www.templestay.com) 에서 예약하면 되는데, 편리하게 잘 되어있다. 그리고 검색해보다 알게 된 백련사의 또 다른 장점은 다른 템플스테이보다도 더 저렴한 가격이다. 1박에 5만원. 잠도 재워주시고, 맛있는 밥도 저녁, 그 다음날 아침/점심까지 주시는데 가성비 끝판왕 아닐런지. 숙소도 2인 1실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쓰기도 했고, 아주 깔끔했다.


어떤 분의 글에서 나만 알고 싶어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절이라고 쓰신 걸 봤는데 동감한다. 소담하고 조용하게 참 예쁜 절이라서, 숨겨두고 나만 알고 싶은 그런 절이었달까.





청아한 풍경 소리 울리던 이틀


4월의 백련사에는 커다란 벚꽃나무가 1년 중 제일 예쁘게 펴있었고, 이틀 내내 청아한 풍경 소리가 바람에 울렸다. 띵~~ 바람에 한 번씩 울리는 그 소리가 너무 예쁘고 평화롭다. 멍하니 바라보다, 아 왜 저기에 물고기가 달려있는지 어렸을 때 배웠던 것 같은데.. 생각하며 주섬주섬 검색을 해보기도. 또 까먹을까 기록도 해둔다.


나의 ‘내맘대로 기록계정’에도 저장



이왕 가는 거 이박삼일 갈까도 고민했지만, 금-토 이틀간의 쉼으로도 충분히 여유로웠던 나의 4월 여행.

또 소중한 기억이 금세 날아가버리기 전에 기록해보자.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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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5-21.04.16

4월의 먼슬리여행노트

가평 백련사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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