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가평 템플스테이 02|백련사에 왔습니다
금요일, 모처럼 연차휴가를 냈다. 오늘의 목적지는 청평역. 더 정확하게는 그 부근 어딘가 백련사. 여행만큼은 계획에서 자유로워지자라는 일념 하에 배낭에 짐도 휙휙- 대충 싼다. 이동수단은 역시나 열차다. 가평은 서울과 매우 가깝지만, 요즘에야 주행 연습을 시작한 7년 차 장롱면허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용산역-청평역 itx에 탑승한다. 그래도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열차 안에는 사람이 꽉꽉 차 있었다. 아마도 대학생들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여도 가평은 역시 대학생들의 성지인가? 이번 달이 몇 월이더라? 4월.. 아 그럼 한창 가평 쪽에 놀러 갈 때인가?' 나는 딱히 MT와 같은 대학생활 기억도 별로 없으면서, 이제는 꽤나 가물가물한 대학 캘린더를 더듬어 생각해본다.
50분쯤 지났을까? 청평역에는 정말 금방 도착했다. itx는 전철과 KTX의 딱 그 중간 정도 느낌이려나. KTX처럼 생각하고 마음 편히 졸다가 까딱하면 역을 지나칠 뻔했다. 전철역처럼 꽤나 자주 멈추니, KTX처럼 두둥- 도착했어요! 하는 느낌으로 역 도착을 알려주지 않더라. 눈 떴더니 청평역 도착이라 1분만 더 늦게 떴으면 어디까지 갔을지.. 아찔하다.
템플스테이 홈페이지에 보면 청평역 도착 시 픽업이 가능하다고도 쓰여있었다만, 보통 주말인 경우인 것 같았다. 내가 간 날은 아쉽게도 일정이 있으셔서 어렵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아무렴 괜찮다. 쫓길 시간도 없겠다 일부러 천~천히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한다. 가다가 아님 택시 부르지 마인드 (좋은 세상).
청평역에서 한 10분 정도 걸으니 금세 버스터미널이 나타났다. 마침 딱 3분 뒤에 빨간 버스가 오길래 호다닥 뛰어서 버스 탑승. #1330-4, #1330-44 두 개의 버스가 백련사 부근에 간다고 했다. 사실 버스에 내려서도 한 30분은 걸어야 된다고 나오기는 했다. 저질체력은 고민했지만, 여유를 즐겨보기로 한다. 버스는 한 15분 정도 달리니 금방 내릴 정거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걸어가는 한적한 시골길은 아주 평화로웠다. 원래 자연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 나도 변한 건지. 예쁘게 핀 꽃에, 아무것도 아닌 개울과 논두렁에 ㅋㅋ 자꾸만 폰을 들이대며 걸어 올라간다. 좋은 공기 깊~이 들이마시며. 조금씩 어깨에 맨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던 그즈음.. '아 역시 운전을 해야 하나 보다' 하고 운전 연습 다짐을 더 굳게 하던 그즈음.. 백련사에 도착했다.
백련사가 잣나무 숲으로 유명하댔는데,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높게 솟은 푸른 잣나무 길이 손님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길을 둘러싼 알록달록 예쁜 연등. 다음 달이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미리 이렇게 걸려있나 보다.
도착한 백련사에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조용한 사찰에 은은하게 울리는 뉴에이지 피아노곡뿐. 내가 간 날이 럭키하게도 유독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예쁜 사찰 전세 낸 기분이란!
조금 기다리니 잠깐 외출 가셨던 담당자분께서 도착하셔서, 뒤편에 템플스테이 전용 숙소에 데려다주셨다. 오늘 템플스테이 하는 사람은 무려 나 한 명이란다. 어머나, 정말로 전세 냈구나. 이틀간 조금은 뻘쭘할까 싶어 걱정이 약간 됨과 동시에 진짜 혼자서 푹- 편히 쉬겠구나 감사함.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도 다른 의미로 좋았을 것 같고, 이렇게 편히 백련사를 즐기다 갈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 좋았다.
숙소도 기대 이상으로 넓고 깨끗했다. 사람이 없으므로 나 혼자 차지. 코로나로 빼앗긴 일상이 많지만, 덕분에 이번 달에도 이렇게 일상 속 소소하게 사치스러운 힐링이 허락된다.
일정은 휴식형이다. 요즘 코로나로 아마도 모든 절이 휴식형 템플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조금 아쉽지만, 찐 휴식도 좋지. 도착한 그다음부터는 정말 자유 자유 자유 시간이었다. 백련사 이곳저곳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며 구경한다.
사실 이 첫날까지만 해도 스님들과도, 템플스테이 담당자분들 하고도 제대로 말씀을 못 나눠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그 유명한 잣나무 숲 평상이라던지) 잘 모르고 보이는 곳만 맴돌았던 것 같다. 그것 만으로도 혼자 놀기의 진수인 나는 시간을 참 잘도 보냈지만! 그다음 날 나눴던 대화가 아니라면 나는 실상 백련사를 반 밖에 못 보고 올뻔했다. 역시 누군가와의 대화와 만남은 참 중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역시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다시 한번 느낀다.
백련사 안, 여유롭게 구경하던 소원지들.
참 다양한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한 소원이 걸려있다. 1번 2번 3번.. 빼곡히 소원을 적어 넣은 소원지부터 'XX 시험 합격!' 하고 강렬한 6글자의 심플한 소원지까지.
그리고 그중에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소원지 하나.
누구의 소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공감이 가는 문구였다. 무얼 하던, 누구를 만나던 나도 그냥 나대로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잠깐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 어느 때에도 금방 다시 행복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근육을 더욱 키우고 싶다.
행복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마음먹는 것이라고 누가 그러더라고. 너무 어려운게 문제지만.
예쁜 우화정도 발견! 안에는 차를 내려 마실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글쎄.. 어떻게 쓰는 건지^^. 곧 죽어도 커피 파인 나는 차와는 멀리 해왔지만, 요즘 들어 나도 기회가 되면 다도 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예쁜 곳에 와서 여유롭게 차도 한잔 내려 마시면 얼마나 멋있겠어, 하고 말이다.
그렇게 백련사를 좀 돌아보고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나 평상 같은 것이 절 곳곳에 있어서 좋다.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와 뉴에이지 피아노곡을 배경음악으로 들으며 하는 독서란 참으로 힐링이다.
짜잔- 돌아와서는 나눠주신 템플복 입고 기념사진 찍기 (보라색 바지 진심 집에 가져오고 싶었다. 진짜편하다.) 옷까지 입으니 진짜 캠프 온 것 같다. 간간히 백련사에 구경 온 사람들도 왔다 가곤 했지만, 나는 여기 잠깐 관광하러 온 것과는 다르다! 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느낌이랄까. 템플스테이 두 번 밖에 안 해보기는 했지만, 가는 절마다 약간씩 다른 색 조합의 템플복 기대하는 재미도 있다.
네.. 그러고는 할 것도 없는데 누워서 저녁 공양시간까지 잠깐 잡니다. 마음 가는 대로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이런 소소함에서 오는 행복이 큰 법이죠.
저녁 공양시간은 6시. 공양은 꼭 늦지 않게, 5분 전 또는 정각까지는 오라고 당부 말씀을 하셔서 시간 잘 보고 일어나기. 사실 오기 전에 좀 걱정했다. 채식이어서라기 보다는 간식 없이 내가 밥만 먹고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그래서 싸갔던 몇 가지 간식. 오밤중 까먹으며 챙겨가길 잘했어 생각했읍니다^^. 아 근데 템플스테이 분들을 위해 친절히 오예스 같은 간식도 마련해두셨더군요. 혹여 정말 배고프신 분들은 그걸 잘 활용하시길...)
밥은 평소 미트러버인 나도 의외로 아주 잘 먹었다. 역시 절에서 주시는 음식은 맛있다. 요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조금씩 채식 위주 습관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는 아니 그래도 채식은 못해..라고 단호하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고기 없는 식사를 해보니 또 그렇게 허전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너무 육식 위주 식습관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조금씩 줄여나가는 노력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무엇보다도 먹고 나서 몸이 훨씬 가벼운 듯한 느낌이 좋았다.
백련사에서는 발우공양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먹고 난 자기 그릇은 직접 설거지는 해야 한다! 식기가 정말 두세 개 밖에 없어서 사실 설거지하는 것도 금방 끝났다. 내가 먹은 그릇은 내가 정리하기. 어찌 보면 참 당연한 것인데, 평소에는 엄마에게 떠넘기는 게 뭐 자랑이라고 당연했던 나를 조금 되돌아보며ㅎㅎ (엄마 사랑해).
그렇게 맛있게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는 저녁 예불 시간을 기다렸다. 7시인가가 저녁 예불 시간이었는데, 사실 나는 예불드리는 걸 보고 싶었으나 그래도 되는 건지 몰라서 말이다. 바깥에서 그냥 예불드리는 소리만 조금 엿듣다가 방에 들어왔다.
6시 55분이 되니 어김없이 천천히 울리기 시작하던 스님의 목탁 소리. 아 매일 저렇게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예불을 드리시는 거겠지. 드리시지 않는 날도 있을까? 아마 아주 예외적인 일이 있지 않고서야 그러지 않으시겠지.
그러면서 무언가를 매일 한다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매일 단 5분이라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나? 따지고보면 겨우 5분이라는 시간을 다른 것들에 밀려 못 낸다는 것은 핑계인데, 꾸준함이라는 것 앞에서는 늘 약한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늘 그 자리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예불드리실 스님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나도 작지만 꾸준한 매일을 쌓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이게 제일 어렵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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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5-21.04.16
4월의 먼슬리여행노트
가평 백련사 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