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조용히 도망친 사람이었다.
고3 딸이 둘이다. 쌍둥이이다. 아니, 고3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버거운데 둘이다.
그 둘은 지금 수능보다 더 예민한 감정의 민감도로 집안을 걷는다.
얘들 엄마는 갱년기다. 그래서 나는 엄마도 아니고, 딸도 아니고,
그 사이에 껴 있는 외로움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 그리고 얘들 엄마가 한번 터지면
나는 자동으로 “가장 나쁜 인간” 포지션으로 귀속된다.
“아빠라는 존재는 왜 존재하는 거야?”
“말하지 말고 그냥 나가 있어.”
이 말이 상처가 아니라 일상 대사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집을 나왔다.
행선지는 정해져 있다.
김밥천국.
별 기대는 없다. 이곳은 감정 없는 포만감을 파는 곳이다.
나는 쫄면과 김밥을 시켰다. 뭐 먹을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생존용 메뉴였다.
“어떻게든 씹으면 끝날 것 같아서” 시켰다.
쫄면이 나왔다. 매콤하고 새콤한데 오늘따라 혀보다 마음이 더 따가웠다.
김밥은 말없이 먹힌다. 근데 속이 허전하다. 사실 허전한 건 밥이 아니라 내가 허전한 거였다.
주변 테이블에선 고등학생 둘이 김치볶음밥을 나눠먹으며 웃고 있었다.
나는 고3 딸 둘을 둔 아버지였다. 그 순간 웃음이라는 게 얼마나 먼 세계인지 느껴졌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집에 없다는 사실이 가족 중 누구에게도 큰 상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더 슬펐다.
쫄면은 맵고 김밥은 눅눅했고 나는 오늘도 입보다 마음을 씹으며 밥을 먹었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젓가락 사이로 쫄면 한 가닥이 뚝 떨어졌다.
그게 꼭 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