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쓰고 싶은데 쓸 게 없는 날

- 단어도 피곤하다고 눕고 싶은 날

by 이한

책상에 앉았다. 커피는 따뜻했고, 노트북은 말 잘 듣게 충전되어 있었고,
나의 마음도… 그럭저럭 쓸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런데, 커서만 깜빡였다.

깜빡, 깜빡.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무 말도 안 떠올랐다.


노트북 화면은 백지였고, 내 머릿속도 백지였다.
단어 하나 꺼내려고 손을 뻗었더니, 단어들이 전부 “오늘 휴무” 팻말을 내걸고 퇴근해 버린 느낌.

그래서 나는 ‘오늘은 그냥 안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이상하다. ‘안 쓰는 것조차 글감이 된다’는 걸 아는 나는, 결국 안 쓰기로 했던 그 마음을 또 써버리고 말았다.


글 중독자의 숙명 같은 거다. 아무것도 안 일어난 날을, 아무것도 일어났던 것처럼 써야 하는.


단어들이 지쳐서 눕고 싶은 날. 나도 그래서 따라 누워봤다. 잠깐 누웠다가,

이불속에서 슬그머니 폰을 꺼냈다.


“오늘 쓸 게 없어서요.”

그걸 또 이렇게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진짜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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