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완벽히 이해하는 단 한 사람, 종자기를 만났다.
백아가 높은 산을 그리면 종자기는 “우뚝한 태산이 보인다” 했고,
흐르는 강을 그리면 “장강의 물결이 들린다” 했다.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은 증거였다.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 소리를 들어줄 귀가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지음(知音)’은 나를 알아주는 참된 벗을 뜻하게 되었다.
세기를 건너, 화가 반 고흐에게도 그런 ‘지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테오. 동생이었다.
세상은 고흐를 ‘광인’이라 불렀고, 그의 그림은 살아생전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테오는 형의 붓끝에 담긴 빛과 어둠, 그 불안과 열망을 알아보았다.
생활비를 보내고, 그림을 사주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는 끝까지 형을 믿었다.
세상은 고흐를 오해했지만, 테오만큼은 그를 ‘형’이라, ‘화가’라 불렀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에도 ‘지음’의 기운이 흐른다.
복사꽃과 오얏꽃이 흐드러진 뜰에서 벗들과 봄밤 연회를 즐기고,
그 자리에서 지은 시를 모아 한 권으로 엮으며 서문을 썼다.
무릇 하늘과 땅은 만물의 나그네 숙소요,
세월이란 백대의 나그네 손님이라.
부생(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거움이 얼마나 되겠는가?
옛사람이 촛불 들고 밤에 놀았음은, 참으로 이유 있는 일이라.
더구나 따뜻한 봄이 연무(안개)와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자연이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었도다.
복사꽃·오얏꽃 향기 가득한 동산에 모여,
천륜(벗·친구) 간의 즐거운 일을 나누노라.
모인 여러 젊은이들의 재주는 모두 혜련(사마상여의 동생)에 비길 만하고,
우리의 시흥(詩興)은 혹 포조(남북조의 시인)보다 낫기도 하도다.
세속의 일은 한순간 바람먼지처럼 사라지고,
성대한 잔치의 즐거움은 다시 얻기 어려우니,
난정(왕희지가 벗들과 모임을 가진 곳)은 이미 없고,
자택(벗의 거처)도 언젠가는 폐허가 되리라.
떠남을 앞두고 간절히, 거듭 이 말을 남기노라.
정작 그날 지어진 시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백이 벗들을 향해 쓴 서문만은 천년을 넘어 남았다.
그 마음이 기록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서시〉는 또 다른 방식의 ‘서(序)’다.
그는 시집의 문턱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누군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는 자기 길을 걷겠다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미래의 독자에게 선언했다.
그 선언은 시대가 그를 오해하던 순간에도 꺾이지 않았다.
백아와 종자기, 고흐와 테오, 이백의 봄밤, 윤동주의 새벽.
그들 이야기가 서로 다른 듯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믿어준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귀한 축복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말이 서툴러 속마음을 다 풀어놓지 못해도, 그 사람은 눈빛 하나로 내 마음의 결을 읽어냈다.
기쁜 날에는 함께 웃어주고, 무너지는 날에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었다.
세상이 오해해도, "넌 그럴 사람 아니야"라고 단정해 주었다.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빛과 어둠을 함께 감싸줄 귀와 눈을 가진 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미 큰 복을 누린 것이다.
지음(知音)은 많을 수 없다. 그러나 많을 필요도 없다.
단 한 사람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