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이 첫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아주 얇은 책으로 몇몇 철학적 용어를 제외하면 주요 골자는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다. 읽으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끄덕여지는 책이다.
육아서를 보다보면 심심치않게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돌연 모든 것을 놓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교사로서 학급에서, 또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뭐든지 될 수 있다.”
“잘 하고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모두 개인의 노력의 부재로, 노력의 탓으로 돌리 이런 말을 서슴지 않게 했던 내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다.
21세기는 성과 사회이다. 이 사회의 주민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며,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바탕에 깔려 있다. 항상 자기 자신과 전쟁상태에 놓여 있게 되고, 이것은 무한정하게 할 수 있다는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므로,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우울증은 발발한다. 그런 사회는 우울증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기대하는 자신에비하면 현실의 나는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로 보이게 된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 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학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이렇게 소진증후군,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과 같은 질환을 오늘날 성과사회의 근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교육자의 관점에서 읽다가 보니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계속 책을 읽었다. 교실에서는 경쟁이 존재하고 상대적인 비교는 끊임없이 일어나며, 1등이 있다면 2등부터 꼴찌가 존재하는 시스템에서 누군가는 낙오자인 시스템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노력하고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자신을 다그쳐야 하는 구조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색적 삶’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니체
사색적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근대적 활동사회의 히스테리와 신경증을 낮추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사색적 삶은 보는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전제한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하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즉 눈으로 하여금 깊고 사색적인 주의의 능력,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정신성을 갖추기 위한 최초의 예비 교육‘이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실상 활동과잉은 다름 아닌 정신적 탈진의 증상일 뿐이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보통 고차적 활동을 하는 법이 없다.’…돌이 구르듯이 활동적인 사람들도 기계적인 어리석음에 걸맞게 굴러간다.-니체
사색하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현대 질병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는 한병철의 예리한 판단력에 다시 한 번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교육자로서 아이들이 현상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말하고 쓰는 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늘 하는 말 중의 하나인
‘생각만 살짝 바꾸면….“
이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