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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글샘 Apr 05. 2024

고통과 무료함 사이 그 어디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지음

"삶은 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우리는 고통과 무료함 사이에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쇼펜하우어


오늘 하루 행복하셨나요? 아니 요즘 행복하신가요?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줄이고 견디는 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고통이 우리 삶에 주는 강도가 더욱 크기에 쾌락을 늘리기 보다는 고통을 줄이는 삶을 유지하고, 견뎌내라고. 그리하여 한 사람의 행복을 측정할 때는 얼마나 돈이 많고, 명예가 높은지 등을 볼 것이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는 지가 한 사람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야 행복할까요? 어떻게든 고통은 고통자체로 불행이지 않을까요?


고통과 무료함을 일으키는 것은 욕망이지요. 욕망이 결핍 되면 고통이 따르고, 욕망이 과잉 충족이 되면 무료함이 따릅니다.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은 같다고 볼 수 있지요. 결국 둘 다 불행입니다.

이런 행복과 불행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닙니다. 욕망에 따른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달려 있지요. 욕망은 탄탈로스의  '채울 수 없는 갈증'같은 것입니다.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이 마르고, 과일을 따 먹으려고 하면 가지가 물러나서 영원한 굶주름과 갈증에 시달리는 탄탈로스 말입니다. 신화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흔히 보는 우화만 들여다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임금님이 궁에서 나와 한 거지와 마주쳤다. 임금이 거지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그러자 거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 바람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화가 난 왕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뭘 원하느냐?”

 그러자 거지가 경고했다.

 “제게 무언가를 약속하시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나는 어떤 바람도 충족시킬 수 있는 아주 힘센 왕이다!”

그러자 거지가 말했다.

 “아주 간단한 바람입니다. 이 동냥 그릇을 채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왕이 대답하고는 자신을 따르던 신하에게 명령했다.

 “ 이 거지의 동냥 그릇을 돈으로 가득 채워라!” 신하가 명령을 따랐다.

 그런데 그릇에 돈을 붓자마자 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붓고 또 부었지만 돈은 붓는 즉시 사라지고 말았다.

  동냥 그릇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왕국 곳곳에 이 기이한 소문이 퍼지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왕의 명예와 권력이 달린 문제였다. 그래서 왕은 신하에게 이렇게 말했따.

 “나의 왕국을 잃게 된다 하더라도 괜찮다. 절대 이 거지에게 질 수 없다.”

그러고는 왕은 계속해서 거지의 동냥 그릇에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 진주, 에메랄드…… 왕의 보물 창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거지의 동냥 그릇은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을 집어 넣든 그 즉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마침내 놀란 군중이 침묵 속에 지켜보는 가운데 왕은 거지의 발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패배를 인정했다. “네가 이겼다. 마지막으로 나의 궁금증만 풀어 다오. 이 동냥 그릇의 비밀이 무엇이냐?”

 그러자 거지가 대답했다. “비밀 같은 건 없습니다. 그릇이 그저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릇에 동전이 들어올 때 잠시 잠깐 욕망이 충족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이렇게 그 순간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지요. 하지만, 순간의 욕망을 충족했다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이 성취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충족된 욕망은 한정돼 있지만,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한 욕망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줄여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의 크기를 줄여야 합니다. 과연 무한한 욕망을 줄일 수 있을까요?


욕망을 줄인다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하신 말씀처럼 '너 자신을 알라'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본능에 의한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건 주인이 개줄을 잡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개 줄에 이끌려 이리저리 다니는 인생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지 않으려면,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이 두 가지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이런 자기 인식이 행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이것은 말처럼 쉽게 저절로 되지는 않습니다.

욕심은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일치시킴으로써 무한한 욕망을 줄이는 것은 자신을 이리 저리 써보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얼마나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지요. 자신을 많이 사용해 봤을 때 성취와 좌절로 인해 그 이후에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그것을 찾게 되면 그 이외의 것은 포기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게 무엇이든 그 목표를 좀 더 수월하게 실현할 수 있지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므로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많은 시도와 도전으로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욕구하는지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욕망의 늪에 허득이지 않고 행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개성에 맞는 일과 생활 방식, 직업을 찾아서 능력을 발휘해야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고통도 고통에 포함되지 않을까요?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쇼펜하우어의는 ‘인생은 고통'이라고 합니다.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지요.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입니다. 무게 중심이 자기 안이 아니라 자기 밖에 있는 것입니다. 좇을수록 의심이 들고 점점 공허해지면 괴로워집니다.

다른 하나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입니다. 진짜 행복은 허상과 같아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의 저자인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2,259명을 대상으로 언제 가장 행복한지 뇌의 상태를 촬영하여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뇌가 집중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 휴식할 때 불행하게 느낀다고 발표했습니다. 열심히 일에 집중할 때, 운동할 때, 마음에 맞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높은 수치의 행복 호르몬이 나왔습니다. 이건 <몰입>에서 황농문 박사님도 말씀하셨지요. 몰입에 들어갈 때는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르지만 몰입 이후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이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킨다고 했습니다. 시골의사 박경철님도 말씀하셨지요. 자신은 약간의 수준이 있어서 읽기에 약간 고통이 따르는 책들로 독서를 한다구요. 그 이후에 역시 오히려 더 성취감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런 고통은 오히려 행복감을 올려 줍니다.


욕망을 많이 줄였지요? 비교와 탐욕으로 인한 고통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는 고통이 남아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세상의 고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건 고통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인 지위와 부의 차이에 따라 차이는 날 수 있지만, 행복한 감정이 일어나는 곳은 내면입니다. 각자 살아가는 세계는 무엇보다 그의 세계관에 의해 좌우되므로 생각의 차이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빈약하면 세계는 진부하거나 하찮은 것이 되기도 하고, 관점이 풍부하면 세계는 재미있거나 의미 심장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행복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소소하고 작은 일에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다양한 관점을 쌓고 내적인 정신력을 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색과 통찰을 바탕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한 나름의 색깔로 해석을 더하는 자신만의 해석집을 마련하면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요. 이젠 고통이 아니라 ‘소풍’처럼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김미경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생 해석집’이 필요한 이유를 쇼펜하우어의 말씀 속에서도 찾았습니다.


지금  저는 황농문의 <몰입>, 김미경의  <마흔 수업>, 시골의사  박경철 강의를 병행하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있습니다. 읽는 동안에 다른 분야, 다른 제목의 다른 책을 읽고 있지만,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글쓰는 동안에 이러한 공통점과 연결점들이 정리되는 듯하여 좋았습니다. 그냥 책 읽기로 끝났다면 도저히 제가 못 이끌어냈을 것들을 책을 읽고 정리하는 동안 3-4개의 책이 저절로 연결되는 듯합니다.


‘너라고 나보다 더 나을 게 없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 즉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할까? 를 줄곧 생각하였고, 한 번으로는 부족하여 3-4번 숙독하며 읽었습니다.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유지하기 위해서는 ‘너라고 나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평온한 관점을 유지한다고 하여도 다른 날 다른 순간 다른 비교와 다른 욕망이 어느 순간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Know yoursel!

자신에 대해 긍정하고 이러한 관점을 업뎃하며 자신의 능력을 알아가는 것은 일정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과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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