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치료
"얘들아! 오늘 색연필 가져왔니?"
"아니오!."
"그럼, 색연필 없는 사람 손들어 볼까? 없는 사람은 선생님한테 받아갑니다."
"있는데요."
"그래?"
"아니, 없는데요."
수업하다보면 이렇게 내용에는 상관없이 툭툭 던지듯이 나오는 대답들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얘들아, 양치기 소년 이야기 알어?"
"아니오."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한 이야기인데도, 아이들은 모른다. 예전에 우리는 거의 다 알았던 것 같은데, 교과서에 나왔던 것일까?
"선생님이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지. 양치기 소년은 양을 치는 소년을 말하는 거야.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하고 외쳤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겠니?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늑대를 무찌를 것들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왔겠지?
근데, 가보니 늑대가 있어요?
글쵸, 없어요.
양치기 소년은 너무 재미가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똑같은 장난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로 늑대로 나타난 거에요.
양치기 소년은 다급한 나머지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
:
:
어떻게 되었을까요? (발표를 들어 봐요.)
그래요. 또 장난이겠거니 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던 거에요.
양치기 소년의 양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실이나 집에서
"거짓말 하지 마라."
"말을 바르게 하라."
라고 몇 번을 얘기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너무나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다.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크게 효과가 없게 들린다.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다시 듣고 쉽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읽었던 그림책을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읽어도 다시 읽어달라고 아이들은 가져온다. 좋아하는 그림책만 수십번 읽은 아이들도 있다.
내 딸과 아들을 키울 때도 그랬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컸으면 싶은 바램이었다. 어릴적부터 다양한 책을 갖다 놓으며, 그 중에 하나라도 좋아하는 책이 생기기를 바램으로 여러 책들을 여기저기 손닿는 곳에 준비해두었다. 밤마다 책을 읽어주며 재우다보면 오히려 이야기를 듣다 말고 더 눈이 말똥해지기도 했다. 그 다음이 궁금하다고 읽어달라고 하면, 난 읽어주다 읽어주다 잠이 오면 잠결에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기도 했다.
딸은 유독 공주 이야기 중에 스스로 일을 해결해내는 씩씩한 공주 이야기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달라 했다. 아들은 을지문덕 장군 그림책을 어찌나 읽어달라했던지,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매던 승리를 맛 볼 타이밍에 나오는 그 준비된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칼을 딱 차고 읽어달라 할 때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이야기는 이전 세대의 철학을 아이들에게 가장 쉽고 재미있으며 비억압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이다. 이야기 속의 적당한 은유가 마음을 치유하는 힘도 있다. 이야기를 읽는 아동이 등장인물을 통해 더욱 바람직한 가치를 형성하고 성장하게 된다. 이야기에는 길이 있다. 굳이 주인공이 왜 그랬을까? 뭣 때문일까? 묻지고 않고, 이야기를 들려준 후 지긋이 바라볼 뿐이다.
그 수업 시간 동안 재미삼아 하던 그 아이의 대답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