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벽이 가장 분주했다. 밤 열 시에 잠들었는데 그녀가 열 두 시에 나를 깨웠다. 그녀는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내가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 내려주자 다리를 M자로 벌렸다. 프리다 칼로의 <헨리포드 병원>이 생각났다. 여성의 신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 생물학적인 작품. 온 몸이 긴장되었다. 의사가 된 것처럼 실수해선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다. 검게 드리워진 국부의 골짜기가 간호사실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에 어른거렸다. 뜨거운 칼날이 내 눈을 벤 것처럼 가혹한 고통이 나를 들쑤셨다. 패드를 엉덩이 밑으로 넣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처럼 축 늘어진 허벅지살이 팔뚝에 닿았다. 소변기를 밑으로 집어넣을 땐 그녀가 허리를 더 들어야 했다. 플라스틱 표면에 살집이 조금 밀려올라갔다. 내가 직접 허리를 받쳐주었다. 타원형 구멍 안쪽 선에 엉덩이 윗부분이 닿자 그녀가 소변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서랍장에서 화장지를 꺼냈다. 방 안은 고요했다. 그녀가 다 했다고 웅얼거렸다. 거의 반쯤 잠들어있었다. 곡선을 따라 화장지로 두드렸다. 화장지를 소변기에 버리고 패드와 소변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속옷과 바지를 마저 올렸다. 소변기를 화장실에 들고 가 변기에 버렸다. 세면대에 있던 샤워기로 세척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소변기를 침대 아래에 두고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다음은 새벽 한 시, 그 다음은 새벽 두 시에 깼다. 그녀가 계속 오줌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새벽 네 시에 깼다. 그때는 대변신호였다. 휠체어를 가져오려고 일어났으나 그녀는 자기가 힘을 못 줄 것 같으니 내가 좌약을 넣고 빼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새벽이라 불이 꺼진 으스스한 간호사실. 간호사가 두 명 있었다. 일회용장갑을 달라고 부탁했다. 일회용장갑을 받고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간호사가 더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다.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대변을 어떻게 빼내는지 잘 모른다고, 어떻게 해야 되냐고 하니 간호사가 직접 가주었다. 원래는 병실 안에서 대변을 보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간호사는 소변기를 수희의 엉덩이 밑에 놓고 비닐장갑을 꼈다. 나는 커튼 뒤로 가서 나머지 광경을 보지 않았다. 커튼 안에서 간호사는 그녀의 대변이 너무 딱딱하다고 했다. 간호사가 소변기를 들고 나왔을 때 동그란 대변들이 소변기 안을 굴러다녔다. 뒷정리는 내가 했다. 변기에 버리고 씻고. 여섯 시 사십 분에도 나를 깨웠다. 일곱 시에도. 나는 한 번도 그녀한테 짜증을 낸 적이 없었다. 다만 많이 피곤했다. 침대에 눕지 않았다. 보호자 침대에 앉아 환자 침대 사이드바에 등을 기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졸았다.
4
그녀가 소변을 자주 보게 된 원인을 찾았다. 링거액 때문이었다. 아침에 간호사가 남아있는 링거액을 확인하러 왔을 때 알려주었다. 그러자 수희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호자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밤에 잘 못 잤어요.”
“아, 그럼 소변줄을 달아드릴까요?”
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간호사는 지금은 안 되고 내일 담당주치의한테 여쭈어보겠다고 했다. 여덟 시는 조식이었다. 등받이를 올리고 식탁을 올렸다. 식판을 받아 뚜껑을 하나하나 열었다. 내가 직접 숟가락으로 수희의 입에 밥을 넣어주었다. 작고 부르튼 입술이 열렸다. 숟가락이 끝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두더지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한마디 했다.
“아들, 물을 먼저 먹어야지. 입이 말라가지고 뭐가 들어가겠어?”
두더지 할머니는 우리가 딱하다고 했다. 나는 물컵을 들고 복도로 나가서 정수기가 있는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희의 입에 주름빨대를 댔다.
“너 가고 할머니가 뭐라고 한 줄 알아? 우리 남편보다 낫네.”
빈 식판을 놓는 수레를 보니 백미밥 말고 잡곡밥을 먹는 환자도 있었다. 수희는 밥을 몇 숟가락 먹지 못하니 차라리 잡곡밥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간호사실에 가서 잡곡밥으로 변경하는데 간호사는 자기를 그만 괴롭히라는 듯이 귀찮은 얼굴로 대답했다. 병원 생활은 편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은 백화점 고객센터에 접수하듯이 수월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온통 불편투성이였다. 오후엔 청소부 아주머니가 환자침대 옆에 각각 배치된 휴지통을 수거하러 왔다. 아주머니는 내가 버린 오줌시트패드를 가리키며 이건 여기에 버리지 말고 복도화장실 안에 있는 의료폐기물에 버리라고 당부했다. 불친절하다기보다 일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어쩔 수 없이 친절할 틈이 없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타성으로 응어리질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수희와 함께 다닐 때 한 번도 무성의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발레파킹처럼 우리의 위신을 맡겨 친절함을 돌려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를 통해 안일한 체면을 오랫동안 누리고 있었다. 고작 그것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담당주치의가 왔다. 그는 키가 크고 은테 안경을 쓴 푸근한 인상이었다. 그의 뒤로 레지던트나 간호사가 몇 명 붙었다. 수희는 링거액 때문에 소변이 자주 나와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안 나오는 것보단 나아요.”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고 수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돌아서며 나보고 수고한다고 넌지시 말했다. <연인>을 반납하기 위해 5층으로 내려갔다. 그새 보초 서는 사람이 바뀌었다. 이번엔 여학생이었다. 도서 반납함이라고 적힌 직육면체 원목상자가 있었다. 책을 구멍에 밀어 넣고 다른 책을 골랐다. 여학생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경직된 자세로 서있었다.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이미 읽었던 책이거나 수준 낮은 번역이 많았다. 계속 서있게 하기 미안해서 책을 고르지 않았다. 더 이상 책을 빌리러 가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을 동안 그녀는 혼자였다. 대신 창밖을 많이 보았다. 그녀는 나를 보았다.
“다다, 나 좀 봐 줘.”
그녀는 오른쪽 볼을 침대에 대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나를 보챌 때마다 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자기 전마다 책을 읽어주는 어린 아버지. 그녀는 작고 어렸다. 나는 늙고 자랐다. 덩치나, 키나, 남아있는 삶의 시간이나, 나는 그녀를 안을 수 있었고 그녀를 돌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좋은 것을 주지 못해 아쉬워할 수 있었고 그녀가 아플 때 책임감 있게 간호할 수 있었다. 내가 물었다.
“뭐하고 싶어?”
“그냥 네가 나를 보는 걸 잊을까봐 한 번 봐달라고 한 거야.”
나는 웃으며 가까이 다가가 그녀에게 입 맞췄다. 고리처럼 둥글고 미지근하게 남은 온기. 작은 성취감으로 충만해졌다. 파고들고 살그머니 자리를 잡는 그녀.
저녁 여섯 시. 석식시간. 나는 도서관에 들렸다가 간호사실 앞 게시판을 지나치면서 식단표를 발견했다. 휴대전화로 찍어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오늘은 제육볶음이야.”
“왜, 네가 좋아하는 거야?”
“응.”
나는 수줍게 웃었고 그녀는 내가 엉뚱하다는 듯이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간호사가 약이 담긴 수레를 끌고 다녔다.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재차 확인을 하며 약을 한 봉지씩 주었다. 그녀와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두더지 할머니가 일회용 용기에 밥을 덜어주고 갔다. 간호사실에 보호자 밥을 따로 신청하는 법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수희가 먹다 남긴 걸 먹어도 배가 그럭저럭 찼다. 두더지 할머니 눈에는 그 모습이 돈 한 푼 아끼려는 것 같았나보다. 그 다음 약을 입에 넣어주고 양치를 도왔다. 그녀의 혀에 설태가 앉았다. 입을 헹구기 위해 주름빨대를 꽂아서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댔다. 입술은 체온이 식어가는 혈색이었다. 나는 여섯 시 삼십 분에 샤워를 했다. 탕비실 옆에 샤워실이 있는데 병실만한 공간에 비닐커튼으로 구역을 나누었다. 사람이 많을까봐 걱정했는데 두 사람뿐이었다. 중년의 여성 보호자가 백발의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혀 세면대 앞에서 머리를 감겼다.
저녁 여덟 시 십오 분. 소변기가 필요했다. 이제 나는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마치 간호사의 근무시간처럼. 이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그녀는 건조한 손으로 내 팔을 힘없이 쓰다듬었다.
“다다, 고마워. 너 없었으면 내가…….”
수희의 메마른 눈동자가 숙연함으로 촉촉해졌다. 내 팔뚝을 더듬는 그녀의 손을 그러쥐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머리칼처럼 엉켰다. 간절함은 망설임을 쓰러뜨렸다. 우리는 서로를 허약하게 헤집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하루에 오 만원씩 줄게. 어때? 간병인도 돈 받고 하잖아.”
그녀가 내 손을 곧 놓을 줄 알았는데 아예 힘을 뺀 채 자신의 체온을 맡겼다. 나는 그녀의 손을 열쇠처럼 문질렀다. 내가 언젠가 돌아갈 곳.
“싫어.”
“내가 미안해서 그래.”
“싫어.”
그녀를 돕는 게 정말 직업이 되어버린다면 이렇게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바랄 수 없지 않을까. 나의 모든 수고를 돈으로 환산 받는 순간 사랑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녀의 빈 손. 그 손이 나의 유일한 위로이자 나의 왜소한 결핍을 가득 채우는 사랑이었다. 그녀가 돈으로 갚을 수 없기를 바랐다. 간병은 제정신으로 할 수 없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5
두 번 정도 깼다. 새벽 두 시 사십 분과 아침 여섯 시에. 내가 각오한 것에 비해 그녀가 나를 별로 찾지 않았다. 이제 나 혼자 잘 수 없었다. 그녀가 깰 때 나도 깨야 했고 그녀가 잘 때 나도 자야 했다. 물론 둘 다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그녀한테는 통증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나는 두 손을 깍지 껴서 뒤통수에 대고 눈을 살포시 감았다. 수희가 사이드바 사이로 머리를 살짝 대고 내가 잠든 모습을 참새처럼 지켜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앞머리를 잘라줄 때의 긴장감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그녀가 가까이 있었다.
“다다, 너 참 어리구나. 나는 늙어서 이렇게 병들었는데. 너는 아직도 어리구나.”
그녀는 웅얼거렸다. 보통 조식이 나오기 전에 일어나는데 조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 자는 척했다. 그녀의 시선이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뒤통수에 눌린 두 손은 쥐가 났고 팔도 저렸다. 눈 마주치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계속 자는 척하는 내가 우스웠다. 하마터먼 웃음이 삐져나올 뻔했다. 그때,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만졌다. 머리카락을 솜털처럼 훑었다. 까마득히 너울대는 마음. 허기진 영혼은 더 가볍게 떠오른다.
조식을 먹은 후 그녀의 다리에 손을 얹어 마사지 해주었다. 이건 책에서 배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녀가 하루 종일 누워있다 보니 혈액순환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종아리를 주물러줬다. 살이 탄력 있게 튀어 오르지 않고 물컹하게 잡혔다. 근육이 없었다. 그녀의 발뒤꿈치는 실금이 생겼다. 종아리는 살이 터서 바스러지는 시멘트벽이었다. 서랍 위에 올려두었던 로션을 짜서 발뒤꿈치와 종아리를 문질렀다. 뒤꿈치는 돌 같았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두어 나를 보았다. 발을 살짝 피했다.
“야, 그렇게 안 해줘도 돼. 어차피 죽는 거.”
“따갑잖아.”
양쪽 다리를 모두 눌러준 뒤 주변을 청소했다. 베개에 붙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테이프클리너로 떼거나 침대 틀에 쌓인 먼지를 물티슈로 닦았다. 창가에 올려두었던 물건들을 조금 다르게 배치했다. 로션과 샴푸, 물티슈와 화장지, 페트병과 수건의 위치를 바꿀 뿐이었지만 인테리어 하는 기분이었다.
두더지 할머니의 남편이 병문안 왔다. 작업복을 입었다. 바지는 먼지투성이였고 물집으로 굳은 손가락은 까맣게 탔다. 이미 멀리서부터 울고 온 얼굴. 숱한 기억을 끌어안은 눈꺼풀. 목구멍에 구깃구깃 삼켜서 이곳까지 왔다. 그는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했다. 어린아이가 숨바꼭질을 할 때 자기 눈만 가리면 자기를 못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눈에 훤히 보이는 아내의 죽음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두더지 할머니가 말했다.
“당신, 같이 죽자.”
그녀는 술주정하는 사람 같았다. 술병 깨면서 욕하는 사람들. 그녀가 두더지 할머니로 보이지 않고 죽음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해서 무서웠다.
“나는 돈 벌러 가야지.”
그녀는 웃었다.
“뭐?”
“그럼 돈 벌지 마? 당신 계속 여기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힘이 고갈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 하지마요.”
“내가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항상 당신은 성격이 무심하다는 핑계로 챙겨주지도 않잖아요. 안 해 본 게 아니라 안 하려고 하잖아요.”
“네 말대로 내가 그런 남편 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해?”
“차라리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그래, 쉬고 싶으면 혼자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