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가 마치면 나는 집에 가지 않고 곧장 병원으로 갔다. 그녀의 몸은 나날이 더 악화되었다. 살이 10kg이나 빠졌다. 살이 쉽게 터서 바짝 말린 가죽을 뼈대에 씌운 것 같았다. 그녀를 만지면 낙엽 소리가 났다. 아래로 쏟아지는 몸을 받쳐주지 않으면 쉽게 무너졌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처럼. 이제 오직 죽음만이 그녀를 수습할 수 있었다. 어제만 해도 내가 화장실 앞까지 부축해주면 그 다음엔 그녀 혼자 들어가서 볼 일을 봤는데 이젠 그녀한텐 그럴 기력이 남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휠체어에 앉혔다. 그녀가 말했다.
“머리 좀 묶어줘. 파자마 주머니에 머리끈 있어.”
긴 머리를 하나로 모았다. 기름지고 비듬 묻은 머리카락이 맨손에 엉켰다. 사실 나는 조금 신이 났다. 내가 머리카락을 허물없이 만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맡겼다는 것에 대해. 그것이 신뢰이든, 친밀감이든, 머리카락이든, 그녀는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휠체어를 아예 화장실 앞까지 가져다 놓았다. 휠체어만 챙기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는 ‘말초정맥용’이라 적힌 흰색 링거액도 꽂혀 있어서 이것도 함께 챙겼다. 링거 호스가 휠체어 바퀴에 걸리지 않게 바닥과 정면을 동시에 살폈다. 나를 보던 한 할머니가 기특하다고 했다. 그 할머니는 아직 칠순은 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몸집이 매우 작고 얼굴이 작아서 꼭 두더지 같았다. 화장실 문을 닫았다. 바지는 쉽게 떨어졌지만 그녀가 입고 있던 건 면속옷이 아닌 팬티형 생리대였다. 그걸 보자 상현이가 생각났다.
“추워. 빨리 나가고 싶어.”
허리와 속옷 사이에 검지를 넣어 마른 뼈에 쓸리지 않게 밑으로 내렸다. 그녀를 번쩍 들어 변기에 천천히 앉혀주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잡았다. 허리를 펼 수 없어서 배가 아픈 사람처럼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발치에 떨어진 바지를 무릎까지 올려주었다. 그녀는 그걸 담요처럼 꽉 쥐었다. 대변을 누었다.
“냄새나니까 잠깐 나가있어.”
괜찮다고 하니 그녀는 웃으며 대단하다고 했다. 보통 사람보다 인상을 더 세게 지으며 힘겹게 볼 일을 봤다. 악취가 나자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고개를 반대로 돌려 조금 웃었다. 그녀는 샤워기를 등 뒤에 대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세면대에 걸친 샤워기를 들어서 물 온도를 맞추었다. 밸브로 수압을 낮게 조절하고 물을 뿌렸다.
“온도 괜찮아?”
그녀는 어물쩍 대답하고 입으로 위치를 조절했다. 더 아래로 내려달라고. 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손을 가운데로 넣었다. 그러나 손은 샤워기의 물이 나오는 부근까지 닿지 않았다. 이내 지쳤고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망설였다. 그녀는 그 와중에 농담을 뱉었다.
“네 손에 똥 묻히기 싫어서 그렇지?”
그 말이 나를 더 민망하게 만들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허리를 약간 숙여 손가락을 미끄러트렸다. 검은 모자 속을 더듬는 것 같았다. 연약한 곡선과 부드러움의 은하수. 잎맥의 신비로움. 초라한 현기증이 울렁거렸다. 슬그머니 들어간 항문에 손끝이 스쳤을 때 그녀가 몸을 움찔했다.
“됐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기를 세면대에 올려두고 휴지로 닦았다.
“이거랑 똑같은 생리대 가져와.”
나는 바삐 나갔고 캐리어 안에 그녀가 계속 쓰고 있던 팬티형 생리대 한 묶음이 있었다. 그걸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바지는 내 어깨 위에 올리고 피가 조금 비친 생리대는 접어서 휴지로 한번 감싸 버렸다. 팬티형 생리대를 무릎까지 입히고 그녀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다리는 탄력이 없었다. 너덜너덜한 뼈에 붙은 살. 막 태어난 사슴처럼 다리를 곧게 펴지 못했다. 그녀는 양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작은 몸의 미약한 떨림이 나한테도 느껴졌다. 그녀를 침대에 눕혀두고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바닥에 있는 물기를 벽에 걸린 밀대로 닦았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폴리 원단의 바이올렛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가 나에게 소변기를 가져다주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지고 누워서 사용할 수 있었다. 간호사는 높이가 낮은 부분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넣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침대 밑에 소변기를 두자 수희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작은 성취감이 밀려왔다.
2
프리다 칼로의 작품 <어린 디마스의 주검>을 보고 인상비평의 방식으로 3000자 영문 페이퍼를 쓰시오. 이것이 챕터1테스트였다. 학생들은 모두 탄식했다. 시기와 양식, 사조, 지역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아니라 감성과 문학적 소양을 요하는 문제에 머리를 쥐어짰다. 나는 연필을 쥐고 시계를 보며 열심히 써내려갔다.
사랑은 나의 통치자다. 사랑은 무질서한 인간을 덕 있는 시민으로 세우기 위한 법이다. 국가의 법이 무너지면 인간의 존엄은 유지될 수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사랑’안에서 품위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둘이서만 만드는 게 아니다. 지혜롭고 청렴한 통치자가 나오려면 그 시대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야 한다. 통치자가 제대로 서있지 않은 국가는 쿠데타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매한 연인은 매일 싸운다. 본인의 품위를 과대평가하고 위선적인 시민이 된다. 불의한 통치자는 늘 전쟁을 일으켜 국가를 붕괴시키고 싶어 한다. 때로는 국민적 수준이 통치자에게 미치지 못해 도리어 통치자를 끌어내려는 경우도 있다.
350자밖에 되지 못해 밑 부분은 공란이었다. 시간이 늦어지면 수희를 돌보지 못할 것 같아 이름을 쓰고 그대로 제출했다. 방학식이 따로 없이 테스트가 끝나면 집으로 가도 되었다. 크로스백에 챙겨온 짐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시험은?”
그녀는 나를 보자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희는 내가 한심하다고 했다. 나는 간호사실에서 간이 머리 세발기를 받았다. 그녀는 환자복을 갈아입지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했다. 흰색 사각형 대야 안에 병원 이름이 반쯤 지워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 머리를 대고 타인의 손길을 받았을지, 같은 하얀 천장을 보지만 물과 함께 전해지는 손길의 온기는 다 달랐을 것이다. 신문지를 깐 뒤 세발기를 올려놓고 목이 닿는 부분에 수건을 덧댔다. 그녀는 나보고 머리카락을 잘라달라고 했다.
“내가 일부러 가위 챙겨왔거든? 그걸로 잘라봐.”
수희의 머리카락은 허리에 닿았다. 틀어 올렸으나 세발기에 머리를 넣으면 물이 넘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머리를 자르고 싶지 않았다.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한 이후에 그린 작품 <짧은 머리의 자화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깔끔한 머리, 정장과 다르게 바닥엔 애인을 향한 그리움과 증오가 머리카락 뭉치들로 널브러졌다. 그녀는 사랑을 숭배한 여자였는데 사랑을 잃자 엄습하는 끔찍한 죽음에 저항했다. 수희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생명과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수고롭게 기른 하나의 생명. 나는 싫다고 했다.
“이대로 감으면 감기도 힘들고 말리기도 힘들어. 너 편하라고 하는 거야. 빨리 잘라.”
“싫어.”
수희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나를 보았다.
“너 후회한다.”
그녀는 세발기 쪽으로 천천히 누웠다. 세발기에 물을 담은 것이 아니라 페트병에 물을 담아서 머리에 살살 부었다. 샴푸를 묻혔다. 샴푸는 우리가 원래 쓰던 한란향 500ml이었다. 반투명한 갈색 용기의 샴푸. 이 하얀 방에서 우리끼리 같은 향내가 섞이고 같은 체취로 사는 것. 그럼 정말 우리만 가족이 된 것 같았다.
“나 요즘엔 귀도 먹먹해.”
수희는 눈을 감았다. 통증에 이맛살을 찔끔거렸다. 그녀의 이마는 칙칙하고 밋밋했다. 세발기는 거품으로 둥둥 떴다. 머리를 한 번 헹구고 짧은 배수관을 연결해 소변기에 사용한 물을 담았다. 새로운 물을 페트병에 담아서 다시 머리 위에 흘렸다. 긴 머리카락에 거품이 계속 남아있어서 물을 여러 번 갈았다. 그녀는 커튼을 여러 번 열었다가 닫는 나를 보면서 작게 웃었다.
“내가 말했지. 너 귀찮아진다고.”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베개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고마워. 고생했어.”
그녀는 물기에 젖은 얼굴로 나를 보았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보람에 찬 미소 지었다. 환자복을 갈아입히기 위해 간호사가 잠시 링거를 빼주었다. 수희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침대헤드에 등을 댔다. 나는 베개를 대주었다. 간호사가 그녀의 몸에 맞는 환자복을 발치에 두고 갔다. 곤란했다. 그녀가 스스로 탈의하기엔 힘이 없었다. 수희는 떨리는 팔을 등 뒤로 짚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여벌옷을 침대에 내려놓고 커튼을 쳤다. 그녀한테 가까이 다가갔다. 상의 단추를 하나하나 끌어내렸다. 속옷을 입지 않은 앞섬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어깨뼈가 도드라졌다. 손을 빼는 그녀의 행동이 느려서 그 사이 고통의 몸을 보고 말았다. 쥐포처럼 갈라진 맨살. 흘러나온 암덩어리는 태아의 탯줄이 말라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회화가 아닌 실재의 감각이었다. 그녀는 찢어지고 있었다. 웃옷을 입혔다. 그녀는 그제야 나의 부축을 받고 베개에 누울 수 있었다. 하의를 내릴 땐 가죽을 뚫을 듯이 튀어나온 골반 뼈를 보았다. 프리다 칼로의 <거기 내 옷이 걸려있다> 속 벗어놓은 두 옷 사이를 잇는 각목 같았다. 프리다의 심장을 뚫고나간 절망. 격렬하게 통증을 외쳤지만 커튼으로 둘러싼 이곳은 고요했다.
그녀가 낮잠을 잘 동안 나는 집을 꾸몄다. 수희의 캐리어는 침대 아래에 두고 짐을 작은 서랍에 모두 옮겼다. 샴푸를 올려놓고 텀블러를 세우고. 사적인 물건들을 그녀와 한 공간에서 공유했다. 병원 5층에 내려갔다. ‘사랑문고’라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이름만 도서관이지 네 개의 붙박이장에 오래된 책이 많이 꽂혀있는 정도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미리 봐둔 도서관이었다. 얼굴이 앳되고 몸집 큰 남학생이 그 앞에 앉아 보초를 섰다. 남학생은 휴대전화를 가로로 돌려 유튜브 영상을 시청했다. 내가 도서관에 들어오자 남학생은 이쪽으로 다가왔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진 문학이고 저기서부터 저기까진 나머지 것들이에요.”
남학생은 곧 자리로 돌아갔다. 미닫이 유리창 안에 불규칙하게 진열된 책들. 햇볕을 많이 받았는지 책등이 파랗게 변색되거나 제목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꺼냈다. 아무도 안 올 것 같은데 나름 사람들이 책을 빌려봤는지 양쪽으로 쉽게 펼쳐져서 붉은 속지가 떨어지고 군데군데 책 끝이 접혔다. 책을 들고 남학생 앞으로 갔다. 남학생은 ‘도서대출기록’이라고 적힌 황파일을 꺼냈다. 표지를 넘기니 날짜와 대출한 사람 이름, 환자이름, 병실호수, 책제목, 휴대전화 번호를 적는 칸이 있었다. 이미 꽤 대출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남학생은 나에게 모나미 볼펜을 건네줬다.
10.4│서다다│이수희│841호│연인
나는 단어의 배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식물로 가득찬 시. 습기가 필요한 단어들. 죽을 때까지 자라나는 갈증. 목마름으로 채워지는 간절함. 남학생이 나를 보지 않을 때 그걸 휴대전화로 찍었다.
저녁 여섯 시. 보호자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 석식이 나왔다. 보호자가 식판을 받는 경우도 있고 보호자 없는 환자는 아주머니가 직접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녀의 발치에 있는 식탁을 올리고 등받이도 올렸다. 메추라기, 시금치, 갈치조림, 황태국. 그녀는 자기가 밥을 다 못 먹을 것 같으니 같이 먹자고 했다. 숟가락은 그녀가 사용하고 젓가락은 내가 썼다. 그녀랑 마주보고 앉아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었다. 그녀는 왼손을 등 뒤로 짚고 오른손으로 먹었다. 목은 굽히기 힘들었다. 두더지 할머니는 보호자가 없었다. 다른 환자들은 보호자가 있었는데 두더지 할머니는 혼자 먹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뚜껑도 열지 않은 반찬을 들고 왔다.
“아들, 입 안 댔으니까 아들 먹어.”
나를 아들로 부르는 두더지 할머니. 우리가 두 명인데 식판 하나로 나눠먹으니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녀의 호의에 일어나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들, 필요하면 냉장고에 있는 반찬 가져가.”
나는 지금도 많다며 친절하게 거절했지만 두더지 할머니는 직접 냉장고 앞으로 가 김치를 우리 식탁에 올려주었다. 수희는 웃었다.
“너는 병원에서 예쁨 받네.”
다 먹은 식판은 병실 복도에 있는 식판운반 카트에 넣었다. 양치를 하고나서 편의점에 가려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수희가 화장실에 힘들게 가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양치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해냈다. 편의점은 1층에 있었다. 주름빨대와 300ml 물병 두 개, 수저세트를 골랐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서 비상구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갔다. 꼭 집으로 가듯이. 그럼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칫솔에 치약을 짜주면 그녀가 알아서 양치를 했다. 약간 세운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그 다음 300ml 페트병 두 개 중 하나에 주름빨대를 꽂아 물을 들이켜고 헹궜다. 다른 300ml 페트병은 물을 다 마셔서 빈 통으로 만들고 주름빨대를 통해 물을 뱉었다. 그녀는 내가 똑똑하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편한 옷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녔으나 나는 이곳을 병원으로 의식하고 싶지 않았다. 검은색 맨투맨에 흰색 레이어드 티를 받쳐 입고 검은 양말에 컨버스 스니커즈를 꿋꿋이 신었다. 보호자 침대를 꺼내서 <연인>을 마저 읽었다. 누런 책에서 가습기 냄새가 났다. 수희는 돌아누워서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사건을 듣는 것 같더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책을 닫았다.
“오 층에 도서관 있어. 보고 싶은 책 있어?”
“아니, 머리 아파. 재밌는 이야기 좀 해 봐.”
나는 그녀의 지루함을 달랠만한 유쾌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책의 표지를 덮었다가 열며 초조하게 눈을 굴렸다.
“내 이야기는 재미없어.”
그녀는 한 손을 머리에 베고 말했다.
“우리 그럼 연극할래?”
“어떻게?”
“창작연극인데,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이고 각자 역할을 만들어서 대화하는 거야. 서로 만든 역할을 천천히 알아가는 거지.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이름도 가치관도 성격도.”
“관객이 없잖아.”
“페터 한드케의 관객모독 같은 거야.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해봐.”
그녀는 장난기 없이 진중한 얼굴과 말투로 물었다.
“몇 살이에요?”
“저요? 저는 쉰다섯이요.”
나의 장난에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저는 열아홉이에요.”
“저보다 어리네요.”
“어리죠. 아는 게 없어요.”
나는 고개를 숙여서 웃었다.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저는 간호사예요.”
“왜 간호사를 선택했어요?”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요.”
공용 텔레비전 안에서 중학교 학교폭력 사건이 흘러나왔다. 귀로 사건의 경위를 들었다. 내가 말했다.
“학생은 저런 불량한 학생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저도 쟤네들보다 나은 거 없어요.”
“학생은 싸움 못할 것 같은데요.”
“잘해요. 맞아본 적 있거든요.”
“그게 잘하는 거예요?”
“맞아봐야 때릴 줄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