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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다다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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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원 Sep 23. 2024

11

11

새벽 두 시, 세 시, 네 시 삼십 분에 일어났다. 그녀는 날 깨울 때 밤의 무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 시 삼십 분은 복잡한 일이 있었다. 소변기를 엉덩이 밑으로 잘 받쳤다고 생각했는데 비몽사몽한 정신이어서 그런지 침대시트에 오줌이 묻었다. 새벽에 간호사 호출기를 눌렀다. 간호사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요?”

십 분이 지나도 간호사는 오지 않았다. 수희도 눈을 뜬 채 간호사를 기다렸다. 내가 직접 나가야 했다. 간호사실에는 간호사가 딱 한 명 있었는데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깨우기 미안해서 다른 간호사를 찾으러 병실 복도를 걸었다. 스산했지만 신비로웠다. 비밀리에 만들어진 연구실을 활보하는 기분이었다. 방금 막 병실에서 나오는 간호사를 만나 침대시트를 갈아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환자 이름을 듣고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간호사가 오기 전까지 침대에 있던 침구류를 모두 보호자 침대에 올려두었다. 간호사가 침대시트를 들고 왔고 나는 수희를 휠체어에 태웠다. 침대시트를 벗기는 건 쉬웠으나 모서리에 끼우기 일이 힘들었다. 한쪽 모서리에 시트를 끼우면 반대쪽 시트가 벗겨졌다. 간호사를 도와 침대시트를 씌웠다. 수희는 목을 구부리면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졸지도 못하고 우리를 보았다. 

그녀는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불만을 몸으로 표출했다. 내가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오는 동안 그녀가 호출기를 써서 간호사한테 소변튜브를 달아달라고 말한 것이다. 간호사는 도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녀가 처음으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간호사한테 하소연했다. 

“보호자가 이제 간병하는 걸 귀찮아해요.”

간호사는 커튼 뒤에 있는 나한테 나이를 물어보았다. 열여덟이라고 했다. 열여덟이라고 하면 이해받고 용서받을 것 같았다. 간호사는 아무 말 안 했다. 그게 더 불쾌했다. 넌 그 나이가 돼서 그것도 못하냐, 라고 들렸다. 수희가 소변튜브를 장착한 모습을 보니 멸종위기인 반달곰 쓸개즙을 빼는 것 같았다. 그녀 주변에는 링거튜브와 소변튜브가 있다. 사람 신체구조를 덕지덕지 이어 붙여 인조인간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소변튜브를 달았다고 편히 잔 건 아니었다. 몇 번 깼다. 앉을 때 아프다고 했다.

“내가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녀는 도리어 나한테 잘못을 깨달으라고 하는 말투로 말했다.

“너 더 자라고.”

내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눈치를 주었다. 그녀한테서 풍기는 악취나 느린 움직임. 겨우 깜빡이는 눈이 그녀의 마지막을 알렸다. 그녀는 대뜸 1인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겁이 났다. 그녀의 부탁을 따라 1인실로 옮겼다. 간호사가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는 짐을 정리한 뒤에 따라갔다. 그녀는 간호사한테 몸이 자꾸 부어서 링거튜브를 빼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주치의한테 물어보겠다며 방을 나갔다. 간호사가 나가자 수희는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물어볼 필요가 뭐 있어. 그냥 빼주면 되지. 지들도 내가 죽는 거 알 텐데.”

그녀의 정신은 석회벽 복도처럼 까칠하고 돌계단처럼 딱딱해졌다. 나는 짐을 새로 정리했다. 초인종과 문패가 없는 집. 귀가하지 않는 집. 커튼을 치지 않아도 되는 집. 그녀는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죽을 것 같다는 말뿐이었다. 간호사가 A4용지에 적힌 영수증을 두고 갔다. 170만원이 넘어간 가격. 그녀는 하루 종일 돌아누웠다. 나는 그녀가 자는 줄 알고 떡볶이를 사러 자리를 잠시 뜨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쳤다.

“가는 거 아니라고! 나 자는 거 아니야. 나도 다 느낄 수 있어!”

나는 그녀의 고집을 이길 만큼 목소리 내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옆에만 있었다. 다리 마사지를 해주었다. 통증 때문에 돌아누운 위치를 수시로 바꾸어주어야 했다. 이제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힘은 아예 없었다. 여러 번 몸을 뒤척였다. 나는 소변주머니가 어디까지 찼는지 확인하고 소변기에 받아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개고기 장사꾼이 된 기분이었다. 

12

오후 네 시. 수희는 낮잠을 잤다. 에꼴 강의가 모두 마칠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학교 내 징계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 징계위원회에서 온 연락을 받지 않을수록 처벌은 더 커졌다. 나는 비상구 계단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학우에게 혐오표현으로 수치심을 준 죄. 금요일 오전 열 시까지 학교에 방문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참석 여부 의사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이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상현의 집은 그대로였다. 갤러리처럼 하얀 외벽에 평기와 적층형 지붕. 녹색 대문이 열리자 하얀 비숑이 달려 나왔다. 멀리서보면 솜뭉치 핫도그 같았다.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꼬리를 흔들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서 자기를 안아달라는 듯이. 안아주진 못하고 가볍게 머리를 쓸어주었다. 돌계단을 지나 내부로 진입하면 마놀로 블라닉 펌프스힐과 지미 추 하이힐이 색깔별로 유리장에 진열되었다. 벽에는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모노톤 작품만 있는 우리집과 다르게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이 돋보이는 화려한 추상화와 표현주의의 특징이 드러나는 앵포르멜 작품이 많았다. 하프시코드가 창가에 있었다. 가정부가 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이사장의 사무실은 수장고를 지나 맨 끝에 위치했다. 가정부가 검은색 문을 노크하고 나는 들어갔다. 폴딩 형식의 창과 난로가 놓인 테라스가 환히 보이고 책꽂이에 꽂히지 못한 아트북이 세로로 쌓였다. 월넛 테이블과 버섯모양의 조명. 그녀는 테이블 너머에 앉아있었고 나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자연스럽게 서있었다. 그녀는 넘겨보던 프로그램 브로셔를 닫고 다정하게 말했다.

“나도 널 징계위원회까지 회부할 계획은 없었는데, 상현이의 말을 들어보니까 조금 무례한 말을 한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이라도 상현이한테 사과하면 선처해줄 수 있어.”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아드님이 혐오해선 안 되는 무결한 존재는 아니에요.”

“상현이한테 그런 죄의식 심어 주지마.”

“아들을 너무 사랑하시면 아들을 잃으실 거예요.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이를 버린다는 속담처럼요.”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한 사람은 내 아들의 친구가 될 수 없어.”

그녀의 사무실에는 오히려 미술작품보다 상현이의 유년시절 사진이 많았다. 사진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별장 앞에 있는 고무풀장에 들어가서 노는 우리. 그땐 수영장에 발이 닿지 않아 고무풀장을 따로 만들어줬다. 그녀가 내 시선을 읽으며 말했다.

“너 학교는 왜 안 나오니? 이제 간병인 써. 안 그러면 퇴학이야.”

“상현이 어디 있어요?”

“또 어떤 수치심을 주려고?”

“사과할게요.”

지하수장고는 이탈리아의 와이너리 지하처럼 서늘한 동굴 같았다. 이사장이 등록된 지문을 누르자 회색 석문이 열렸다. 히든 조명이 길을 밝히는 아치형 통로가 나왔다. 미술관처럼 창고형 크기의 공간은 아니었다. 일반방 크기에 철골구조물이 조립되었다. 그림이 책꽂이처럼 꽂혔다. 그날은 여름 바캉스였다. 열다섯에 요트자격증을 따고 상현이를 처음 태웠다. 프랑스 남부 바다를 누빌 때, 주변에 배가 보이지 않도록 멀리 나갈 때, 그가 울면서 말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 말을 듣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고 그는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날 좋아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요트가 멈췄다.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연료가 남아있지 않았다. 망망대해에 서있었던 요트. 그리고 우리가 현재 있는 위치를 경찰에 신고했다. 상현이가 뒷짐 진 채 벽에 기대 서있었다. 히든 조명 아래 얼굴이 옅게 비추었다. 그가 나를 보았다. 석문이 닫히고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미 울고 있었던 것처럼 눈이 충혈 되어 있었다. 절대 입을 떼지 않겠다는 듯 고개 숙인 그에게 내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상현이가 아랫입술을 앞니로 깨물다가 이내 말했다.

“나는 네가 어머니랑 정말 잤는지 궁금해. 대체 어떤 정신으로 어머니가 연인일 수 있는지, 아니면 내가 예상하는 정도는 아닌 건지, 나는 네가 그런 짓까지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네가 그 병원에 있는 동안 자꾸 내 오해가 커졌어. 너희 어머니랑 같이 놔두면 안 될 것 같았어. 그건 성적학대니까.”

공기청정기가 낮은 음으로 윙윙 돌아갔다. 우리의 말을 잘게 분해하려는 것처럼.

“상현아, 네가 받고 싶은 만큼 벌금 물려도 되고 사회봉사 시켜도 돼. 그것도 네 마음에 차지 않으면 죽여도 돼.”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신 그 사람 간병은 끝까지 하게 해줘. 어차피 곧 죽을 것 같아.”

“싫어. 그런 여자가 무슨 어머니라는 자격이 있어? 그건 비정상적인 거야. 너는 너무 어려서 몰랐던 거고. 그 여자는 널 사랑한 게 아니라 자기 욕구 채우려고 너를 조종한 거야.”

“그럼 너도 걔 만나지마.”

상현이가 멈칫했다.

“네가 지금 걔를 버리지 않으면 너도 우리 아버지처럼 버림 받을 거야. 망가진 몸으로.”

“나 같은 사람들이 꼭 너희 아버지처럼 죽진 않아.”

상현이가 반격했다. 나는 일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버지보다 더 고통스럽게 죽겠지.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열아홉부터 기저귀를 차진 않았어.”

그는 내 뺨을 때렸다. 얼얼하게 울리는 파열음. 습도조절 가동이 멈추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는 그렇게 내가 아플 걸 알면 나를 먼저 사랑하지 그랬어? 그럼 내가 걔를 만나서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야. 죽음보다 먼저 그 사람한테 가까이 있고 싶었어. 그래야 그 사람이 조금 덜 아프니까.”

“민준이가 그러던데. 어머니가 아들한테 그만큼 사랑 받는 존재인지는 몰랐다고.”

그가 얄궂은 말투로 말했다. 나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없어.”

“아까는 혐오스럽다고 했잖아.”

“그 둘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같이 자라.”

그는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붙어서 자라더니 기형이 되었어. 심장은 하나인데 몸이 두 개면 오래 못 산다고 하기에 둘 중 하나를 죽였지. 나는 혐오를 낳으려고.”

혐오는 사랑과 핏줄을 나눴던 하나의 생명이었다. 상현이가 마른 코웃음을 쳤다.

“넌 나보다 미친놈이야.”

“…….”

“그 여자는 범죄자야. 너를 아프게 한 사람이야. 그래서 네가 어머니를 사랑해도 나는 용서할 수 없어. 너 없이 그 여자 혼자 죽게 내버려둘 거야.”

“우린 간병인도 안 구했어. 빨리 가봐야 해.”

그는 오히려 그런 말에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잘 됐네. 범죄자가 무슨 도움이 필요해.”

“징계위원회 열릴 때 올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현아.”

“어머니랑 얼마나 잤어? 정말 어머니 앞에서 좆이 섰어?”

그의 입에서 천박한 말들이 나왔다. 

“몇 살 때부터 그 여자랑 잤는지 궁금해.”

“아홉 살 때부터.”

“그때도 좆이 섰어?”

“그땐 가슴만 만져달라고 했어.”

“언제부터 좆이 섰어?”

“열세 살.”

“키스도 해?”

“응.”

“더러운 새끼.”

그는 분노로 불거진 얼굴이었다. 오른손으로 내 팔을 세게 꼬집었다. 거의 죽으라는 듯 살기 있게 꼬집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상현이의 팔목을 잡고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손을 올려 꼬집었다. 내가 아프길 간절하게 비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상현이의 손을 세게 잡았다. 그러자 상현이가 우는 얼굴로 뒤꿈치를 들어 입술을 겹쳤다. 뒤통수가 차가운 벽에 닿았다. 나는 입술을 열지 않았다. 눈을 뜨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도 나를 보았다. 공간이 좁아서 간간이 숨 차는 소리가 울렸다. 서로의 둥그스름한 남근이 부딪혔다. 물질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가. 극이 닿는다. 그가 수희의 모든 흔적을 긁어내겠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내 입술에서 피가 났다. 쓰고 떫은 맛. 눈물처럼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바지에 젖기 시작했다. 그가 그제서야 입술을 뗐다. 그는 눈물로 범벅되어 불안한 얼굴이었다. 밑을 내려 보니 그의 오줌이 내 허벅지에 무심코 베었다. 냄새가 미세하게 풍겼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왜 기저귀 안 찼어?”

상현이는 놀랐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말했다.

“나는 그 여자처럼 환자가 아니니까.”

내가 점잖게 말했다.

“새 옷 가져올게.”

밖으로 나와 입술에 묻은 침을 닦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화이트톤의 내부에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가로로 긴 창가에는 테이블 원목이젤이 놓였다. 왼쪽 입면에는 컨투어 데스크와 세스카 체어, 트웸코 시계, 황동 기둥에 호박색 등을 가진 조명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아트북이 벽면을 가득 채웠고 소더비 경매회사에서 제공하는 카탈로그도 많았다. 화이트톤 첫 번째 옷장에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꺼냈다. 침대 옆에 놓인 3단 협탁 서랍을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열었다. 속옷이 있는 칸에 기저귀가 쌓여있었다. 화이트 침대 위에 그림이 한 점 걸렸다. 그가 차에서 말한 경매작품이 있었다. A4크기의 회화. 자주색 벨벳으로 둘러있는 액자. 검은색으로 칠한 바탕에 얇은 칼로 벗겨낸 부분이 빛이 났다. 형이상학적인 노인이 신문지처럼 길가에 처박혀서 자고 있는 피사체. 실금이 난 얼굴. 해초처럼 둘러싸인 배경. 기저귀를 꺼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화이트 이불 속에 담요처럼 보이는 익숙한 천이 있었다. 이불을 들췄다. 내가 수영수업 때 빌려주었던 수건들이 전부 이곳에 있었다. 전부 다 꿰매서 속이불로 쓰고 있었다. 전부 단색으로 되어있는 수건이라 모아두니 공예작품 같았다. 나는 이불을 덮었다. 화장실에서 하얀 수건을 꺼냈다. 나는 옷과 기저귀, 수건을 종이가방에 담아 보일러실로 내려갔다. 상현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있었다. 종이가방을 건네고 나가려는데 그가 물었다.

“너 어디가게?”

“걸레 찾으러.”

사실 종이가방을 챙길 때 걸레까지 문 앞에 가져왔다. 그가 옷을 편히 갈아입으라고 나는 밖에 나와서 기다렸다. 그가 옷을 갈아입은 후에 문을 열었다. 나는 마른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오줌이 몇 방울 떨어진 시큼한 자리. 상현이는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 대신 이 말을 했다.

“민준이한테 네가 그 여자랑 있었던 일 다 말할 거야. 네가 쪽팔려서 죽고 싶을 만큼. 나를 빈틈없이 혐오스러워하게.”

수희는 낮잠에서 깬 뒤로 하염없이 침대에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커튼을 열자 눈을 깜빡이며 싫증이 섞인 말투로 읊조렸다.

“너는 계속 날 챙기고 있어야지. 나 알아서 하라고?”

“미안해. 급한 일이 있었어. 불편한 거 있어?”

“내가 죽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뭐가 있어? 간호사한테 도움 요청하는 게 얼마나 무례한 일인 줄 알아?”

죽음을 앞두면 모난 감정이 배설물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대답 없이 그녀의 종아리를 마사지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리를 느릿하게 피했다. 그녀는 점심과 저녁을 먹지 않았다. 내가 밥을 챙겨줘도 그녀는 돌아누웠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도 먹긴 먹어야 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물이라도 마셔.”

나는 습자지처럼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물병에 빨대를 꽂아 그녀의 볼에 갖다 대었으나 그녀는 치우라는 듯 손바닥을 휘저었다. 함께한 사랑에 홀로 변호해야 할 때도 있었다.

13

그녀가 이상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새벽에 수시로 나를 깨웠는데 오늘은 새벽에 잠깐 날 깨운 것 말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그녀는 어제 점심부터 오늘 점심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무화과를 씻었다. 하얀 접시에 담아 무화과를 침대에 놓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는 돌아누운 채 눈을 뜨고 소변을 보았다. 바지는 물론 이불까지 흠뻑 젖었다. 마침 간호사가 들어와 혈압을 체크하려고 했다. 내가 소변튜브가 빠진 것 같다고 하니 간호사는 허리를 기울여 수희의 상태를 확인했다.

“혹시 숨쉬기 많이 힘들어하시나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녀를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지만 숨 쉬는 게 쉬운지 어려운지 내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함부로 단정 짓다간 실수할 것 같았다. 머뭇거리자 간호사는 그녀한테 직접 물어보았다. 그녀는 간신히 붙어있는 숨으로 겨우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급히 방을 나갔다. 조금 있다가 간호사 세 명이 보조 침대를 끌고 왔다. 두 명의 남자 간호사는 수희를 잠시 보조침대로 옮기고 한 명의 여자 간호사는 침대시트를 갈았다. 남자 간호사는 바이탈 모니터를 가져왔다. 산소포화도와 심박수가 떴다. 초조해졌다. 소변튜브과 링거튜브에 이어서 그녀한테 튜브들이 더 추가되었다. 심장, 폐에도 튜브가 달렸다. 손가락에 끼우는 기계로 맥박을 확인했다. 코에 끼울 수 있는 산소호흡기까지 달아주었다. 생체징후가 화면에 떴다. 그녀의 심장박동수는 109-120 사이를 오갔다. 그녀는 손가락에 끼우는 기계와 코에 끼우는 산소호흡기가 불편했는지 자꾸 떼었다. 죽음이 그녀를 치고 지나갈 것 같았다. 간호사들이 한 시간 간격으로 들어와서 다시 끼워줘도 빼냈다. 그녀는 마치 죽음을 재촉하는 사람처럼 거부했다. 나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너 더 자라고. 불만 가득한 말투로 나를 속상하게 하던 그 모습. 제발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게 그녀를 놀라게 할까봐, 그녀를 속상하게 할까봐 산소호흡기를 그녀의 코에 끼워주면서 그저 울기만 했다. 그리고 해골 같은 얼굴로 또 빼는 그녀. 그녀가 자고 있는 건지 아파서 졸린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바이탈 체크에 알람이 울릴 때도 있었다. ‘코드 블루’방송처럼 요란하지 않고 한 번 울리고 금방 꺼졌다. 새벽에도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기계에서 나오는 빛만 활기찼다. 사이드바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고 의식하지 못했다. 정원에서 이런 식물을 본 적 있다. 진딧물이 생긴 잎에 개미떼가 넘나들었다. 저항 없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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