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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다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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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원 Sep 23. 2024

10

8

잠이 오지 않아서 열두 시 삼십 분에 잠들었다. 한 시 삼십 분에는 그녀가 소변 때문에 나를 한 번 깨웠다. 일곱 시 삼십 분은 조식을 먹은 뒤 볼일을 봤다. 휠체어에 태워서 화장실까지 갔다. 최근 베지밀이나 요플레를 많이 먹어서인지 좌약 없이 스스로 볼일을 해결했다. 야구르트 아주머니가 왔다. 아주머니는 저번 주에도 한 번 온 적 있었다. 그녀는 야구르트 아주머니가 다시 오면 꼭 안 단 걸 사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다섯 병에 육천 원 하는 플레인을 한 봉지 건넸다. 수희는 네가 먹을 요구르트도 사라고 했으나 귀찮아서 안 챙겨먹을 것 같다고 했다.

간호사가 와서 수희의 상태를 확인했다. 병실에 방문했던 간호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보였다. 처음 보는 간호사인데 마치 수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상냥하게 물었다.

“수희님, 볼일은 잘 보세요?”

병원에서 통용되는 인사말이었다. 수희는 짧게 대답했다. 간호사는 침대 주변을 쭉 둘러보더니 실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호자님, 거기에 뭐 올려두시면 안 되는데.”

간호사가 가리킨 곳은 벽에 붙은 온풍기였다. 크로스백과 로션, 샴푸, 화장지, 물티슈, 베지밀, 빈 플라스틱 물병을 올려두었다. 나는 겸연쩍었다. 속옷과 옷을 정리한 서랍에 짐들을 임시적으로 구겨 넣었다. 간호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집에서 했던 대로 차곡차곡 개어서 정리했는데 뒤죽박죽되었다. 서랍이 아니라 냉장고가 되었다. 간호사는 내가 정리하는 걸 보다가 자리를 떴다. 수희는 돌아누운 채 정리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봐도 지저분해보이더라. 그런 건 다른 데다 정리했어야지.”

그녀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가로로 세워서 영화를 보았다. 나는 혼자였다. 심심해서 나도 휴대전화를 들었다. 이젠 책도 빌리지 않고 그녀와 대화하기로 했는데 그녀 혼자 영화를 보았다. 휴대전화로 할 건 없었다. 잠금 화면을 계속 껐다 키면서 그녀를 보았다.

“우리 잠깐 밖에 나가자.”

“이것만 보고. 너도 같이 봐.”

“나중에 볼 수 있잖아. 지금은 나랑 이야기해.”

“죽는 사람한테 ‘나중에’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줄 알아?”

그녀는 아직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마지막 여유 자체를 스스로 감당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죽을 때 조금은 후회하기를 바랐다. 이 날 내 얼굴을 기꺼이 못 본 것을. 나와 이야기를 힘껏 나누지 않은 것을. 당신의 시간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은 것을. 그녀는 나를 힐긋 보더니 휴대전화를 껐다. 

“나가자.”

나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머리를 빗어주고 링거팩을 휠체어에 옮겼다. 휴게실로 가서 창밖을 보았다. 새털구름이 날개처럼 흩어졌고 태양은 양팔로 빛을 쏟아내며 그늘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빛은 의미 없이 떠돌았다.

“밖에 나가도 돼?”

“힘들어. 들어가자.”

바깥공기도 쐬지 못하고 8층 복도만 돌아다녔다. 

이제 그녀가 아니라 내가 아팠다. 배 정중앙이 더부룩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녀는 내가 체한 것 같다며 소화제를 사오라고 했다. 약을 먹어도 속은 쉽게 내려가지 않았다. 그 사이, 그녀의 볼일 때문에 화장실로 데려갔다. 정작 볼일을 보지 못했다. 나보고 미안하다며 이따가 다시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예민했다. 그녀는 내가 한숨 쉬는 걸 보았다. 두더지 할머니와 제자. 수희는 제자한테 이모, 라고 불렀다.

“얘가 속이 안 좋아서, 혹시 소화제 있으세요?”

필사적으로 부탁했다. 그녀는 온전히 나를 걱정했다기보다 보호자가 빨리 몸이 나아서 환자를 돌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이모는 내 등을 두드려주고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를 한 병 건네주었다. 도리어 더 거북해졌다. 이모는 내과를 가보는 게 어떻겠냐며 손을 문질렀다. 수희가 작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동안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그녀 옆으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여전히 괜찮지 않은 몸으로. 수희는 나를 보았다.

“내가 미안해.”

“금방 나아.”

“잠깐 내 옆에 누워있어. 너 잘 못 자서 그래.”

그녀는 자기 몸을 안쪽으로 조금씩 붙여서 내가 누울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망설였다. 커튼을 쳤다. 꿈. 노인이 된 그녀와 나. 주름진 목과 곰보가 핀 가슴팍. 컨버스 스니커즈를 벗고 침대에 올라왔다. 그 좁은 침대에 둘이 나란히 누웠다. 해마처럼. 얼굴을 마주보았고 그녀는 내가 안쓰럽다는 듯이 물었다.

“너는 이 고생을 하는데도 내가 계속 살아있으면 좋겠어?”

그녀는 홀로 공명했다. 나는 느지막하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미소가 속삭였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어.”

수희는 빙긋 웃더니 어색함을 차단하려 먼저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훑었다.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호기심 있게 뜯어보는 아기처럼. 그녀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더듬었다. 그녀의 숨결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살갗이 부딪히지 않아도 나는 그녀의 부드러움을 전부 생생하게 알았다. 앞머리, 눈썹, 속눈썹, 눈자위, 코, 뺨, 턱, 귓바퀴, 귓불, 입술, 입술, 입술. 시간은 정교하게 흘렀다. 모든 침묵을 손끝으로 흡수했다. 손가락은 그녀의 얼굴 위를 시침처럼 읊조렸다. 그녀는 깨어있고 나는 떠다녔다. 이건 우리만의 포근한 키스였다.

20분의 낮잠.

나는 석식을 먹지 못했다. 수희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했다. 내가 씻은 무화과도 그녀 혼자 다 먹었다. 그녀가 일곱 시까지 아프면 내과에 가라고 했지만 싫었다. 식판을 갖다놓고 와서 그녀 침대에 책상처럼 엎드려 잤다.

9

새벽 한 시에 일어나고 다섯 시에 일어났다. 그녀가 갑자기 소변을 자주 보았다. 링거팩이 저번보다 더 큰 걸로 바뀌었다. 그녀는 커튼 안에서 링거액 조절기를 돌리는 간호사한테 조용히 부탁했다.

“조금씩 넣어주실 수 있나요? 보호자가 아파서요.”

그녀는 오늘 병원 앞에 시장이 서는 날이라 쌀강정을 사오라고 시켰다. 오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중앙신시장이 있었다. 나는 서울에 오고 나서 한 번도 시장에 간 적이 없었다. 백화점과 비교했을 때 다채로운 색감보다는 칙칙한 노점들이 있었다. 이것저것 가격을 비교해가며 사고 싶었지만 그녀를 빨리 돌보러 가야 했기 때문에 물건을 신속히 찾았다. 쌀강정과 보리강정. 상인과 직접 대화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여기서 약간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강정은 여기 밖에 안 파는지 물었다. 시장이 커서 다 돌아다닐 수 없었다. 상인은 음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희는 꼭 흥정을 하라고 했으나 나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양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병원에 왔다. 내가 다 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칭찬을 들어야겠다.

두더지 할머니의 남편이 와있었다. 병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낮잠을 자고 있었다. 커튼을 치고 둘이서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는 걸 들었다.

“나 간병해줄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좀 도와줘요.”

“그럼 집에 갈래?”

남편의 목소리는 핼쑥했다. 두더지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이 싫증냈다.

“가면 뭐해요. 당신이 보는 내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될 수가 있다니까?”

“너를 자꾸 환자라고 생각하지 마. 뭘 먹어야 기운이 나고 살도 붙고 그러는데 뭘 못 먹으니까 이러지.”

두더지 할머니는 지금 먹을 힘 자체가 없는데 남편은 그녀한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계속 통증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안 들어. 당신은 내가 어디 아픈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이제 나 죽는대.”

남편은 죽는다는 말에 끄덕도 하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두더지 할머니는 꿋꿋하게 말했다.

“나는 오늘 당신이 여기까지 오는지 얼마나 힘든지 느껴보고 당신 걱정하는데 당신은 괜찮냐고 물어본 적도 없지요?”

“그래서 뭐 어떻게 해달라고.”

남편은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질린다는 투로 쏘아붙였다.

“당신 왜 그래요? 그런 식으로 귀찮은 듯이 할 거면 하지 마요. 듣는 사람 맥 빠져. 당신 조심 좀 해줬으면 좋겠어. 물론 당신도 힘들겠지만 나는 아프니까.”

두더지 할머니는 축 처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남편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죽는다는 게 상상이 안 가. 예전에는 분명 직장동료들이 우리 부러워했단 말이야. 둘이 화목해 보인다고.”

“당신은 그럼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거야? 이건 고민할 문제가 아니야. 뭐가 우선순위인지 잘 생각해요.”

남편은 그제야 커튼 뒤의 인기척을 눈치 챘는지 커튼을 조금 열어 나를 보고 눈인사했다. 남편은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마 아내의 고통을 더디게 보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나는 수희한테 갔다. 그녀도 나처럼 부부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아까 그 남편은 너무해. 그래도 할머니 혼자 일주일 내내 혼자 고생하셨는데…….”

무심결에 그녀의 볼을 만졌다. 연필을 깎은 것처럼 부스러기가 느껴지는 피부. 미지근하게 흐르는 눈물. 내 손 안에 그녀의 작은 얼굴이 머물렀다. 내 마음은 부풀어 오르고 그녀의 표정은 쪼그라들었다. 그녀와 이곳에 붙잡혀 있고 싶었다. 그때, 방송에 ‘코드블루’라는 말이 나왔다. SF영화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기계음이 나오는 듯이. 사람들은 왜 저렇게 분주하냐고 의문을 품었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간호사 수기에서 코드블루는 심정지상태라고 했다.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뛰어갔다. 곧이어 의사가 복도를 뛰어갔다. 비상구 계단으로 올라오는 의사도 있었다.

“아, 빨리 올라고. 빨리!”

생사의 현장은 이렇게 순간적이었다. 나는 방금 전 남편이 들어간 화장실 문을 보았다. 그는 무기력했다. 자신의 무능함에 의존하고 삶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절망을 책임지지 못했다.

“다다, 너 사우나 한 번 갔다 와야겠다.”

나는 옷소매를 코 밑에 가져다댔다.

“냄새 나?”

“아니, 너무 지쳐 보여.”

“멀쩡해.”

“병실에 오래 있으면 안 좋아.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우리집 정원에 물도 주고 와. 다 죽겠다.”

서울에 있는 태평양 사우나. 목욕탕이 온탕, 냉탕뿐인 작은 사우나였다. 왠지 청소한 적도 없을 것 같아서 나는 한 구석에서 샤워만 했다.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축 처진 살들과 기미, 여러 상처들. 팔을 들어 그들의 가죽과 비교했다. 나의 새파란 젊음이 실감났다. 초목의 뼈와 살. 발레리나의 튀튀처럼 반짝이는 윤기. 정교하게 이어진 숙연한 감각. 그럼에도 모두 죽게 될 하얀탑. 정원은 모두 죽었다. 수건은 물을 끌어오지 못했고 꽃은 이미 말라버렸다. 나는 호스로 물을 뿌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유적지에 물을 뿌렸다. 다 사라지고 남은 게 없다. 비어버린 영혼에 냉수를 주었다. 물을 세게 틀었다. 물이 옆으로 튀어 손이 흠뻑 젖었다. 두더지 할머니는 퇴원했다. 중년의 제자가 그녀를 데려갔다. 두더지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잘 챙기라며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주었다. 두더지 할머니의 빈 침대와 빈 서랍. 우리 쪽을 늘 바라보면서 고독을 달래던 사람.

10

이 주간의 방학은 끝이 났다. 더 이상 간병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더러 학교에 가라고 했고 나는 챙겨온 교복을 입었다. 그녀를 간병인이 있는 3인실로 보냈다. 죽음의 화초들 속에 아직 생생한 꽃 한 송이를 던져둔 기분이었다. 줄기가 끊어져서 곧 말라죽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빛깔을 내는 꽃. 그녀가 그곳에 있으면 금방 죽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보고 싶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그곳에 있어야 했다. 죽음은 멀리서 기다리지 않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지하철역에 갔지만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수희는 가판대 위의 생선처럼 누워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간병인은 오십 대 중반의 여성이었는데 표정에 싫증이 가득했다. 환자복 바지를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빨리 올렸다. 수희는 신음을 뱉으며 살살 올려달라고 했다. 이제 한 가지만 보았다. 눈앞에서 쓸려갈 전부를.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신경질을 냈다.

“네가 여길 왜 와.”

“너랑 더 있으려고.”

나는 간병인을 쳐다보았고 간병인은 자신의 업무에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태연했다. 수희가 말했다.

“학교 가.”

“가면 뭐해. 친구도 없어.”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크로스백을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오는 바람에 우리는 8인실로 강등되었다. 6인실은 자리가 다 찼다고 했다. 6인실이 제일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줄 알았는데 더 많은 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점심을 먹은 후, 그녀와 갈등이 생겼다. 그녀가 나보고 떡볶이를 사오라고 해서 나는 편의점 컵떡볶이를 사왔다. 그녀는 시장에 있는 떡볶이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장이 문을 닫았다. 나는 내일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이처럼 고집을 부렸다. 내일 사면 안 먹을 거라고. 지금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금 답답해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녀는 따끔하게 소리쳤다.

“빨리 사와!”

건강이 악화되면서 그녀는 본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왜 너까지 나를 미워해!”

그녀는 나의 이름을 앞서 부르지 않았다. 앞으로 몇 번 부를지 모를 이름을. 나는 재차 두려움을 누르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사올게. 지금은 시장이 안 열었어.”

그녀가 궁시렁 거렸다.

“이것 봐. 아프면 다 무시하지. 너도 똑같아.”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어폰을 꽂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소리를 크게 틀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이게 어디서 나오는 소리냐고 웅성거렸다. 그녀한테 이어폰을 꽂아주려고 했다. 그녀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이어폰을 뺐다.

“내가 하기 싫다고.”

“사람들한테 민폐잖아.”

“너는 나를 보고도 그래? 쟤네들이 눈치 줘도 소용없어.”

우리는 처음으로 하루 종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더디게 오는 죽음보다 불행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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