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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다다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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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원 Sep 23. 2024

12

14

다음 날 아침. 잡곡밥을 미역국에 말았으나 그녀는 더 이상 눈을 뜨지도 않았다. 내가 먹으라고 해도 듣질 않았다. 나는 기계에 뜨는 상태를 보고 그녀를 알아야 했다. 그녀는 숫자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심박수는 한참 떨어졌고 아직 살아있었다. 간호사가 아침부터 이 집에 자주 들렸다. 기계와 그녀를 번갈아보며 이모가 언제쯤 오시냐고 물었다. 그녀가 말한 이모는 이사장이었다. 이사장한테 연락했다. 이사장은 한 번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른쪽 귀에 휴대전화를 대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았다. 하얗게 뜬 입술과 오므라든 미모사처럼 살포시 감은 눈. 귀에서 울리는 신호음은 그녀의 숨처럼 느렸다. 나는 왼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만졌다. 나의 손을 그녀에게 버렸다. 그녀가 가져가길 바랐다. 내 손은 그녀를 눈처럼 소복이 덮을 수 있었다. 그녀를 흠뻑 간질이고 싶었다. 그녀가 허물어지지 않게 꽁꽁 얼리거나 넉넉한 부드러움으로 이불이 되거나. 그녀가 날 가져가기만 한다면.

“집에 가자…… 집에 가자…….”

그녀의 좁은 입술 사이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보았다. 혀가 고정된 채 숨과 섞여 나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휴식을 취했다. 위기가 지나가고 사랑은 이제야 멈추었다. 가여운 사람. 내 안에서 한 번도 사그라진 적 없이 너울대는 그녀. 휴대전화에선 아직도 신호음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한 송이의 자그마한 한숨을 뱉었다.

15

연못처럼 잠잠해진다. 아-아-아-아- 시간이 멎고 최후의 울림. 지연되는 기다림. 마비된 순간이 밀려온다. 이제 나만 숨을 쉰다. 기묘한 일이다. 그녀는 갑자기 옛날이야기처럼, 어제 먼저 잠든 사람처럼 나른해진다. 오래된 치즈가 되어 더 늙는다. 벌어지는 격차를 본다. 그녀는 훌쩍 천 년이 된다.

나는 그 몇 분을 조금 기억한다.

기계음의 외마디와 함께 간호사가 뛰어왔고 심폐소생술을 했고 나는 심폐소생술이 그렇게 거친 행동인 줄 몰랐고 그녀가 아프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못했고 의사가 왔고 그녀의 이름과 사망시각을 말했고 나는 울지 않았고 점심시간이라 밥이 나왔고 식판을 들고 온 아주머니는 침대를 보며 이걸 두고 갈지 가지고 갈지 고민하다가 나를 보더니 두고 갔고 간호사들은 튜브를 정리했고 그녀의 손가락을 보며 손톱을 잘 깎아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16

장례식장 안 사무실에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중년 여성과 중년 남자도 있었다. 죽은 사람이 세 명이나 돼서 안이 분주했다. 장례식장이 아니라 학교 입학추첨 하러온 느낌이었다.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한 사람과 행동들. 우리는 모두 죽은 사람의 사진을 찾았다. 

“사진 해상도 낮아도 상관없어요. 얼굴만 잘 나오면 여기서 다 처리해드립니다.”

배가 나온 중년의 직원은 나를 보며 태평하게 말했다. 나는 갤러리에서 그녀와 놀러간 날의 사진을 찾았다.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직원이 내가 가장 만만한지 은근히 재촉했다. 그녀를 찍은 사진이 꼭 유령을 찍은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없던 사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얼굴. 지금이라도 병원에 돌아가면 그녀가 있을 것 같았다. 직원은 사진을 뽑을 동안 작성하라며 나에게 종이 두 장을 주었다. 장례예산 신청서였는데 기간, 장례형태, 예상조문객수, 장지지역 등 여러 내용이 있었고 다른 종이에는 1층 현관 화면에 띄울 유가족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배우자, 자녀, 손자, 손녀, 며느리, 사위. 나는 자리에 앉아 동사무소의 공무원처럼 유가족 이름을 작성했다. 자녀, 서다다. 그는 이 상황이 닥치리라는 걸 미리 알고 연습한 것 같았다.

이사장이 왔다. 그녀는 약속한대로 이 일은 자기한테 맡기라며 나보고 내일 입관식에 오라고 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듯이. 나는 버스를 탔다. 몇 시간 전에 죽음을 보고 몇 분 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온 사람 같지 않았다. 버스가 빨간불 앞에서 정차했을 때, 갓길에서 무화과를 한 상자에 만 원으로 판다는 파란색 봉고트럭을 발견했다. 나는 무화과가 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틈으로 배어들었다. 연차를 내고 아이들과 놀러가는 부모, 대학생, 달래 한 봉지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큰 소리로 전화하는 할머니. 시간은 멀쩡하게 흘렀다. 오늘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굴러갔다. 크로스백에서 그녀한테 받은 쪽지를 꺼냈다. 왠지 부끄러웠다. 무려 그녀의 유언인데도 낯선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기가 겁났다. 문자 내용을 여러 번 수정했다. 그 중 한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침착한 목소리로 그녀가 왜 죽었는지, 많이 아프게 죽었는지, 그리고 문자 주신 분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아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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