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이스잖아

짝퉁이 싫어요

by 황금바늘

나이키 신발이 80년대 한국 청소년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시절이 있었다.

이때 청소년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나이키 운동화의 절도 사건이 생겼는데 우리는 중학교 체육시간에 잠시 걸어둔 신발주머니의 운동화가 사라진 사건으로 모두 눈감아 ~가방 검사에 단체 기합이다~ 엄포를 놓는 샘들의 새된 호통을 하루 종일 들어야 했다.

그래도 신발은 나오지 않았다. 세상 무너진 얼굴의 신발 주인은 다음날 새 신발을 다시 사서 신고 왔고 우리는 빈부의 격차와 잘 사는 아이들의 선택지가 얼마나 넓은지에 대한 세상을 알아버렸다.

솔직히는 정말 부러웠다. 나이키를 잃어버렸다고 바로 다시 사주시는 부모님이라니.

궁금한 것은 신발을 훔친 아이는 어디에 감추고 언제 신고 다녔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신고 다니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너무 눈에 뜨이는 일이었고 신발 주인의 열변으로 신발의 옆과 아래의 상처와 흔적들 그리고 그어놓은 펜의 위치까지 모두가 다 알아버린 흰색 나이키 신발이었기 때문이다.

신고 다니지도 못하는 신발을 어떻게 했을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하는 명품은 갖고 있는 것으로 의미가 있었을까.

이쯤 나에게도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빠듯한 살림으로 아등바등하던 엄마와 외출을 하고 들어온 언니가 빨간색 바탕에 검은색 로고 아디다스 티셔츠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들어오는 것 아닌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는 나이스 운동화를 꺼내 주셨다.

고등학생 언니는 큰딸이라는 지위와 한창 시작된 사춘기의 욕망이 승리한 전리품을 얻었지만 나는 정말 우울한 마음으로 나이스 운동화를 신고 다녀야 했다. 아이도스, 나이스, 그중에 정말 웃겼던 런던 스모그 등 돈은 없고 갖고는 싶고 소비자가 원하니 가품 시장은 나날이 번성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적었고 진짜가 아닌 부끄러움 외에는 그저 갖고 싶었던 마음이 전부였던 것인 시절이었다.

깨끗한 나이스 신발은 깨끗해서 싫었고 더러워지고 낡은 나이스는 낡아서 싫었다. 투정은 접수가 되지 않아서 놀러 오신 이모에게 투덜거렸더니 이모는 재래시장에서 캔디가 그려진 털신발을 사주셨다. 캔디가 너무 크게 그려졌고 신발 입구에는 털도 있는 딱 할머니 신발 같았던 캔디 신발. 나는 이모에게까지 버릇없이 굴 수는 없어서 얌전하게 캔디 신발을 신고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캔디 신발은 엄마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반항심에 열심히 신고 다녔다. 그만큼 나이스가 싫었고 으스대는 언니가 미웠다.

요즘 뉴스에서도 공항에서 가품을 모아 기계로 파쇄하거나 가품 제조 업체와 밀수 업체들을 급습해서 불태우는 현장들을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기술은 발전이 되니 제조사도 구분을 못하는 훌륭한(?) 제품들이 많아져서 찢어지는 특 AA급의 잔해에 돈 계산을 하는 속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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