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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같아서

by 뇌전증과삶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고 나는 호르몬 때문인지 부쩍 쓰러지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주1회 정도 쓰러졌다면 주 3~4회 쓰러졌고 나는 약을 바꾸면서 의사선생님과 어떤 약을 썼을 때 덜 쓰러지는지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약을 바꿔갔다.


너무 자주 쓰러지자 학교에 가기 힘들어졌고 자연스럽게 조퇴와 결석이 늘어났다. 고등학교는 일정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었지만 쓰러져서 내 몸도 못 가누는데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은 나이 50에 항상 애들한테 '우리 딸'이라고 얘기하던 선생님이었다. 지금이었으면 큰일 났을 발언이지만 뭔가 문제를 일으키면 '내 딸이 올바른 길로 가야지'하며 매를 들고 체벌하던 넉살 좋은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쓰러져서 학교에 나오는 날이 적어지자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나는 출석일을 못 채우면 자퇴한다고 뭐라고 하실 줄 알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


그러나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나를 앉혀두고 다른 얘기를 했다. 항상 시작은 딸로 시작했다.

'딸아 네가 병 때문에 자주 쓰러져서 학교 다니는 게 힘든 거 다 안다. 그래도 난 내 딸이 출석 일수 채우지 못해서 자퇴 당하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딸 나랑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자 괜찮지? 내가 항상 차로 태워주마'


난 당연히 싫다고 했다. 고등학생 중 선생님과 매번 차 타고 학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듯이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선생님은 혜미랑 같이 하교할 때 빼고는 무조건 자기가 픽업하겠다고 했고 그 후로 선생님은 등교할 때마다 나를 데리러 오셨다.


혜미는 귀족 집 자재냐며 나를 놀려대서 정말 싫었지만 내가 싫든 좋든 선생님은 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시고 하교할 때도 혜미와 같이 가는 날이 아닐 때는 나를 태우고 가셨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쓰러져서 몸이 안 좋아 결석하게 되면 내가 출석한 걸로 바꿔주었다. 그 당시에는(거의 20년이 지났다.) 대부분 아날로그 시대였기에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에게 찾아가 부탁했던 것 같다. 이렇게 짐작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때 양호실과 결석을 거의 밥 먹듯이 했는데 퇴학당하지 않는 것 보면 선생님께서 분명 무언가 조치를 했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3학년까지 선생님은 담임이 아니더라도 나를 챙기셨고 선생님의 노력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선생님께 편지도 써주고 선생님을 꼭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처음에는 너무 싫었지만 결국 그 관심과 배려 덕분에 나는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한한 감사를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왜 그렇게까지 하셨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정말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내 딸이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면 안 되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 선생님을 다시 한번 만난 후 지금까지 만나지는 못했다. 아마 선생님도 교사이자 아빠로서 내가 고등학교까지는 책임진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뇌전증이 있지만 내가 대단해서 내가 자존감이 넘쳐서 극복한 게 아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엄청나게 배려해주고 나를 챙겨줬기 때문에 나는 일어설 수 있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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