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들고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어느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에 녹아들었다. 의외로 사회는 내 뇌전증에 관심이 없었고 공공기관에서 일해서인지 뇌전증으로 몸이 너무 안 좋으면 언제든지 병가를 내고 조퇴할 수 있어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이 안됐을 때 혜미는 이제 정착하고 싶다며 결혼을 했다. 혜미의 결혼식에 갔을 때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마치 사연있는 여자처럼 울었던 것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당에서 고등학교때 알던 친구들과 밥을 먹고 집에가는 길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부럽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계속 결혼하지 않았으면 했다.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항상 나와 함께있던 친구가 가버리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제 누구랑 친하게 지내지? 뇌전증을 이해해주고 사람대 사람으로 대해주는 누군가를 찾는 것 그게 가능할까? 막연한 두려움에 갖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가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혜미한테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이제 누구랑 노냐며 투정을 부렸고 혜미는 특유의 '기지배'로 시작하며 얘기했다.
'기지배 걱정 마 너도 곧 갈테니까'
혜미의 말에 나는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좋은 남자 나타났을 때 결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it기업에서 일하는 친구였는데 항상 나를 잘 챙겨주었다. 나에게 모든것을 해줄 수 있을것만 같은 친구였다. 나는 6개월 후 조심스럽게 결혼에 대해 얘기를 꺼냈고 남자친구는 너무 좋다고 했다.
남자친구의 반응이 너무 좋아 나는 날아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 그것은 정말 어려운 것인데 그런 남자를 찾은 거 같았다.
결혼의 기대에 부풀며 황금빛 미래를 꿈꿀 때 나는 곧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