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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리고 지독하게 바뀌는 일상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나 덧없어. 너무도 빨리 가버려[룬의 아이]

by 뇌전증과삶

뇌전증이란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상태가 조절되지 않아 전신 혹은 특정 부위에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뇌파 검사를 한 후 만약 치료할 수 있다면 수술을 통해 치료할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수술 가능성이 유독 낮아 치료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항상 특유의 병원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었다. 그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냄새와 마주할 때마다 부모님이 울던 그 진료실이 생각나 항상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진료받았다. 친구들이 뛰어놀 때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서울대에 가서 신경과 진료를 받았고 남들은 하나도 잘 안 먹는 약을 6~7알씩 12시간마다 먹었다. 뇌전증 환자는 뇌의 흥분상태를 지속해서 낮추기 위해 항히스타민제를 12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먹어야 한다. 만약 이 약을 제때 안 먹으면 발작이 심해져서 일상생활 자체가 안될 수 있다.


어린 나는 왜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고 부모님이 먹으라고 해서 그냥 먹었다. 처음 머리를 다친 후 멀쩡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돌팔이는 아닐지 의심한 적도 있었다.


5학년 2학기 때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서 발작하면서 쓰러졌다. 나는 수업을 하는 도중 그냥 잤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지만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뇌전증 발작은 뇌신경을 엄청나게 흥분시켜 발작을 일으킨 후 발작이 끝나면 온몸에 긴장이 확 풀려서 내 발로 일어나기도 힘든 상황으로 만든다. 지금이야 알지만 그 당시에는 잘 서지도 못했고 발작 직후라 말도 잘 못해 선생님은 급히 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핸드폰이 없던 시절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를 안고 뛰는 것이였다. 선생님의 등에 업힌채 나는 학교 근처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서야 나는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얘기하며 부모님을 부를 테니 기다리라 했고 나는 병원 침대에서 점점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누워있을 즈음에 어머니가 도착하셨다. 어머니는 이미 울고 계셨고 어머니의 눈물을 보자 나도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그 후로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셨다. 내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나를 케어하기 위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일까 천천히 내 일상은 불행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늪지대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뇌전증은 나를 놔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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