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진 알아낼 필요 없어 그냥 받아들여야지(어드벤처타임)
처음 발작이 시작됐을 때부터 내 발작은 점점 횟수와 주가기 짧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약을 제대로 처방받지 못해서인지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발작을 그때는 한 달에 4~5번 정도 기본으로 했고 심하면 더 많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약을 먹어도 발작이 계속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래서 어머니 몰래 약을 안 먹고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보더라도 약을 안 먹으면 훨씬 발작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병원을 정말 많이 다녔다. 병원에 가도 항상 하는 얘기는 약을 먹고 있으니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였지만 내가 쓰러지면 선생님은 항상 병원을 데려가 주셨다.
지금이야 핸드폰이 많이 보급되어서 언제든지 119를 부를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항상 학교 옆의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고 나는 병원에서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병원에 놓여 있던 만화책들(그 당시에는 일본의 '소년 점프'처럼 만화 여러 개를 모아둔 큰 만화책이 많았다)을 읽었고 간호사 선생님도 내가 안타까웠는지 본인들의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병원은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낯선 향기를 뿜어내며 이곳에 오지 말라고 얘기하는 듯 했지만 친숙한 사람에게는 우리 할머니 고향 집처럼 안전하고 포근한 장소였다. 나는 처음에는 병원이 정말 싫었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이게 더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병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다. 그 의사 선생님은 환자분들에게 소리도 치고 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대기실에 앉아있었을 때 큰 소리로 환자에게 뭐라고 해서 깜짝 놀라서 벌벌 떠는 것을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를 안심시켜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환자가 없을 때는 나한테 환자에게 받았는지 각종 과자와 음료수를 주기도 했고 나를 데리고 옥상으로 가서 담배를 피우며 내가 궁금한 것을 다 얘기해주었다.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야 받아들여 그래야 편하니까 그것보다 더럽게 골치 아픈 병도 많아'
의사 선생님은 내 뇌전증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는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린 환자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의사가 환자 앞에서 그것도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던 시절이니 그러려니 해야한다. 그리고 당시 담배를 피우며 내게 얘기하던 의사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상냥한 말이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간혹 나를 데리고 진료실로 가서 다른 사람들의 차트(진료기록)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법적인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이 더 가까이 있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의사 선생님은 주로 나이 든 가장 최악의 환자분들의 차트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밥 먹자'하는 투로 굉장히 담백하게 말했다.
'이 친구는 당뇨랑 고혈압으로 머지않아 갈걸? 네가 가진 뇌전증은 이 친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그러니까 받아들여라'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당뇨니 간다니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느낌으로 알 수는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른 사람에게는 매너 없고 버릇없는 못된 의사지만 나에게는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병원이 점점 내 집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