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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긴장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by 뇌전증과삶

다들 학원에 가고 과외를 받을 때 나는 집에서 만화책만 보고 방학을 마무리 지었다. 오히려 다 내려놔서일까 마음이 편하기까지 했다. 부모님은 내가 뇌전증으로 인해 발작하는 것을 극도로 걱정하여 공부를 안 해도 되니까 몸만 생각하라고 했고 나는 실제로 공부를 다 내려놓고 탱자탱자 놀았다.


공부를 내려놓더라도 쓰러지는 빈도는 비슷했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학교에서 비록 혼자지만 집에가면 또 만화책 볼 생각에 항상 들 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중 3이 되었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키가 굉장히 작은 여자선생님이셨다.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키가 150-160사이로 키좀 있는 중학생 남자 애들보다 훨씬 작으셨다.


다른 학생들은 고등학교 선행학습이니 아니면 봉사활동이니 바쁘게 움직였지만 나는 같이 노는 친구도 없었고 공부도 안 했기 때문에 그냥저냥 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내가 공부를 안 하는것에 대해서 부모님 면담을 했고 우리부모님과 내 병에 대해서 얘기를 한 후 나에게 터치를 안 했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내가 계속 신경쓰였는지 하루는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경고를 했다. 그 경고는 교단에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말했지만 마치 나에게 들으라는 느낌이였다.


"이번 시험은 틀린 만큼 때릴거다 총 60문제야"


그 얘기를 들었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 또한 뇌전증이 있으니 난 당연히 제외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험을 봤고 나는 전부 찍어서 12개를 맞았다.


선생님은 남학생 여학생 상관 없이 책상에 무릎꿇리고 발바닥을 때렸다. 대걸래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기도 했다. 보통은 하다가 멈추겠지만 그 작은 키에 어디서 힘이 나는지 선생님은 대걸래를 옆반껄 빌려와서라도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은 나한테 간략하게 '올라가'라고 얘기했고 나는 천천히 올라갔다. 당연하게도 같은 반 학생들은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애 간질이 있어요..'라고 은연중에 말했지만 선생님은 들은채도 안 하고 내 발바닥을 때렸다.


내 생애 그렇게 많이 맞아본적음 처음이였다. 뇌전증이 있어서 항상 나는 특별대우를 받았고 항상 보호받는 입장이였는데 선생님의 매는 나를 보호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10대가 좀 넘어갔을 때 울음을 터트리며 피하려고 하자 선생님은 나한테 버럭 소리쳤다.


"안 올라가! 손 치워 손 부러진다"


내가 울던 말던 선생님은 땀을 흘리며 내가 틀린 만큼 내 발바닥을 대걸래로 때리셨다. 난 당연히 다 맞고 주저앉았고 다른 아이들이 부축해서 겨우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다 때린 후 땀을 닦으시면서 얘기했다. 그 당시 나는 울고불고 난리난 상태라 재정신이 아니였지만 그 말은 똑똑히 기억난다.


"다음에 또 시험볼건데 또 똑같이 틀린만큼 때릴거다! 자신 있으면 공부하지 말고 몸으로 떼워라!"


많이 안 틀린 아이들은 괜찮았겠지만 나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내가 집에 비틀거리면서 갔을 때 우리집은 난리가 났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교권이 하늘위에 있었을때라(학교에서 체벌이 가능했던 때) 부모님도 선생님이 왜 그러시냐 라고 하실 뿐 다른 말은 안 하셨다.


문제는 나였다. 다음에 또 똑같이 맞다간 제대로 못 걸을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을 때 나는 집에 오자마자 읽으려고 했던 만화책를 내팽개치고 가방에서 과학책을 꺼냈다.


내가 뇌전증 얘기를 꺼낼 때 다들 나를 사회적 약자 혹은 건들면 부서질 거 같은 보호대상으로 봤지만 선생님은 아니였다. 난 불이나게 공부를 했다.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가서 노트를 빌리고 어떻게든 모르는 것을 물어봐서 공부를 했다. 뇌전증으로 쓰러지는 건 이제 익숙하지만 매맞는 통증은 익숙해질 거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미친듯이 공부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항상 나를 멀리하던 아이들이 내가 적극적으로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하고 자주 말을 붙이니 자연스럽게 나와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니 내가 가진 뇌전증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했고 그게 별거 아니고 전염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는 다른 친구들사이에서도 별 거 아닌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여겨지며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시험이 다가왔고 나는 정말 목숨걸고 시험을 봤다. 그리고 60개 중 28개가 틀렸다.

죽었다 라고 생각했을 때 선생님은 다들 잘 봤다며 이번에는 때리지 않겠다고 하며 우리를 칭찬해주었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공부를 했지만 그 덕분인지 나는 평균 시험 점수가 18점 정도가 올랐었다. 원래 평균이 32점이여서(뒤에서 20몇 등 했던걸로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올라가는 폭이 훨씬 컸다.


내가 시험을 다 봤을 때 선생님은 나를 따로 교무실로 불러서 나를 칭찬하며 말해주었다.


"어때 공부하니까 되잖아 넌 공부를 못하는 애가 아냐 하면 할 수 있는 아이지 교복을 벗고 사회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해 지금이야 너를 모두가 배려해주지만 그때는 너를 배려해주지 않을거야"


그러면서 선생님은 내 엉덩이를 툭툭 치시며 웃으시면서 마지막 말을 이어가셨다.


"적당한 긴장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단다. 지금 네 모습을 봐 친구도 사귀고 공부도 잘해졌지?긴장을 아예 풀어버리면 그 병이 너를 집어 삼킬거야"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중3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내 걱정과 달리 운동 열심히 하고 잘 자면 쓰러지는 횟수는 공부를 안 할때와 비슷했다.


결국 이건 내 문제였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를 약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을 때 선생님을 또 찾아갔고 선생님은 그때도 나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비록 채벌이라는 수단을 쓰기는 했지만 선생님 덕분에 지금 나는 더욱 성장했고 내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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