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를 위한 변명

5. 엄마의 밥그릇

by 문영

딸아이가 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다니러 왔다. 밥상을 차렸는데 제 자식들 챙겨 먹이느라고 통 먹지 못한다. 고깃점을 잘게 찢어 밥숟갈에 얹어주고, 생선 가시를 발라 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딸아이를 보며, 오래된 기억 한 토막이 떠오른다.

내가 여덟 살 무렵이었을 게다. 저녁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온 나는 밥상을 차리는 엄마를 다급하게 불렀다. 엄마는 '웬 호들갑이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건너다보셨다.

"기숙이네 엄마는 자기 혼자 쌀밥 먹어. 기숙이도, 기숙이 오빠랑 동생도 모두 보리밥 주고 자기 혼자 쌀밥 먹어."

금방 보고 온 기숙이네 밥상 차리는 모습이 우리 집과 사뭇 달라 나는 엄마를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마저 밥상을 차리셨다.

우리 집은 아빠의 밥에는 쌀이 많이 들어 있고, 몸 약한 남동생의 밥에는 아빠보다 조금 더 쌀이 많이 섞여 있었다. 내 밥과 동생들 밥에는 보리가 더 많이 섞여 있었고, 어머니의 밥은 아예 꽁보리밥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나는 기숙이네 엄마 밥그릇의 하얀 쌀밥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고, 정말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온 엄마는 나를 옆에 앉히셨다.

"기숙이네는 아빠가 안 계시지?"

"응, 작년에 방앗간에서 일하다 돌아가셨잖아."

“그런데 기숙이 엄마까지 아파서 돌아가시면 기숙이네 형제들은 어떻게 되지?"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기숙이네 엄마까지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멍해졌다. 기숙이 엄마는 누구보다 좋은 것을 먹고 몸도 튼튼해야 오래오래 살며,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자기 아이들보다 더 좋은 것만 먹는 것이 어떻게 옳단 말인가? 그러면 왜 우리 엄마는 맨날 보리밥만 먹을까? 그래서 그랬던지 기숙이 엄마는 오래 사셨다. 우리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그렇게 잘 아는 엄마는 왜 당신의 밥그릇에 소홀했을까. 그리고 우리 엄마도 좋은 것을 먼저 챙겨 먹고 자식들보다 당신의 몸을 먼저 건사하셨더라면 지금까지 살아계실지도 모른다고.

시골에 살기 때문에 아이들을 일찍 외지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서다. 저 잘 되라고 보내 놓고는 자식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다.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기숙사에서 해주는 밥은 또 오죽하겠냐 싶어 아이들이 집에 오면 온갖 좋은 것을 다 해주고 싶었다. 몇 번씩 냉장고에 넣었다 꺼냈다 하던 반찬은 치워버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새로 만드느라 수선을 떨었다.

어머니도, 나도 참 어리석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어머니처럼 그리 어리석게 살 게다. 그러나 딸만은 자기 밥그릇을 먼저 챙기면 좋겠다. 배고프면 아이들도 어련히 알아서 제 밥 찾아 먹을 테니, 저부터 좋은 것 찾아 먹고 그다음 아이들을 건사했으면 좋겠다. 좋은 옷 사 입고, 제가 하고 싶은 일 해가며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저부터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살필 수 있을 테니까. (2011.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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