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금니
오늘 치과에 다녀왔다. 근 보름 가까이 망설였는데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전에 신경치료를 하여 크라운을 씌운 오른쪽 어금니가 오래전부터 흔들렸다. 못 참게 아픈 것은 아니어서 망설였는데, 이 사이에 음식물이 끼더니 급기야 농이 나오고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가면 틀림없이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하라 할 것이다. 아플 것도 염려되지만 목돈 들어갈 일도 걱정된다.
의사는 X선 사진을 보여주며 이를 뽑아야 하는 까닭을 설명하였다. 각오했던 일이라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잇몸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뼛속을 파고드는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잇몸과 볼이 마비되고 얼굴 반쪽이 나무토막처럼 굳어가는 느낌이다. 더구나 입안에 고인 씁쓸한 약물은 불쾌감과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의사는 아프지 않으냐고 확인해가며 덧씌운 금속 조각을 갈아낸 뒤 조각조각 부서진 어금니의 뿌리를 뽑느라 진땀을 흘렸다. 나는 감각을 잃은 잇몸에서 이가 뽑혀 나가는 둔한 아픔에 기분이 착잡했다.
의사는 이 뽑은 자리에 솜을 잔뜩 물려주며 한 시간 동안 말도 하지 말고 침도 뱉지 말란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비가 다 풀리지 않아 입술이 한쪽으로 삐뚤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는 이 빼기가 참 쉬웠다. 앞니 중 하나는 밭마당에서 사방치기를 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빠졌고, 첫 번째 어금니 하나는 밥을 먹다 아작하고 씹히는 것을 뱉어내니 빠진 이였다. 영구치가 옆으로 비집고 나오는데도 엄살을 부리던 나를 붙잡고 아버지는 흔들리는 내 송곳니에 실을 얽어매셨다. 그리고 그 끝을 문고리에 매단 뒤 쾅 하고 문을 한번 여닫았는데 그냥 쑥 빠져버린 것이다. 빠진 이를 지붕에 던지고 까치를 부르며 새 이를 가져다 달라고 소리치곤 했다.
오늘 뽑아낸 어금니가 난 것은 열두어 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젖니조차 나지 않았던 자리라서 틈도 없이 딱딱한 뼈를 헤집고 나오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덩이 같은 제 몸이 삭는 줄도 모르고 오십 년 넘게 나를 위해 일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 뽑을 수밖에. 남은 이들도 과히 성치 못하니 이렇게 하나둘씩 잃어가겠지. 그러면 내 몰골은 어찌 될까?
금방 이를 뽑은 자리로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여의치 않다. 단단한 음식물이 이가 빈자리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머리끝이 서게 아프다. 입안에서 이리저리 옮기며 우물우물하다 그냥 삼켜버린다.
사람의 이는 음식을 저작하여 소화를 돕는 이외에 여러 구실을 한다. 가지런한 앞니를 드러내고 웃는 얼굴은 더 예뻐 보인다. 어금니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거나 크게 웃을 때 외에는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숨어 있는 어금니가 없다면 양쪽 뺨이 푹 꺼져버리고 말 것이다. 어릴 때 쓴 약이라도 먹이려 들면 입술과 혀를 힘껏 오므리는 것만이 아니라 어금니까지 앙다물고 버텼다. 이제 앙다물 어금니마저 자꾸 빠져나갈 테니, 원치 않는 것을 누가 내 입에 넣으려 해도 속수무책으로 삼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안에 든 것이 감당하기 어려우면 침과 섞어가며 어금니로 꼭꼭 씹어서 소화하기 쉽게 만들었는데, 이제 그냥 삼킬 수밖에. 그럴 때는 위장과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음이 모두 힘들겠지. 또 나이가 들어 염치를 차리는 일에 둔해져서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 때 어금니가 있어야 앙다물고 참아낼 수 있을 것인데, 잇몸에 심어진 나사못을 기둥 삼은 임플란트란 놈이 그 일을 감당해 낼지 그것도 큰일이다. (2010. 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