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음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자라주던 큰아들 녀석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큰 아들놈 때문에 시작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마음이 아프다. 처음에는 부글거리다가 간혹 가라앉아 찬 서리가 내린 날의 개울물 같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장정이 주먹으로 쳐도 깨어지지 않을 만큼 꽁꽁 얼어붙어 버릴 때도 있다. 동짓달 시렁에 매달린 시래기 가닥처럼 배배 꼬여있을 때도 있고, 꽈리가 있어 늘 공기로 차 있는 허파처럼 숭숭 뚫린 바람구멍에 바람이 들락날락할 때도 있다. 항아리 속의 단무지 쪽같이 돌덩이에 짓눌릴 때도 있다.
말갛게 가라앉아 있는 마음은 지나가는 행인도, 날아가는 겨울새도, 심지어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서 있는 먼 산까지 말없이 다 투영해내는 개울물이 되지만, 미꾸리 한 마리가 자맥질하면 밤새워 뒤척이다 잠들었던 마음이 다시 거무죽죽한 흙탕이 되어버리고 만다. 얼고 또 얼어 영영 녹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봄바람 한줄기에 가슴까지 풀어헤치고 속내를 다 내보일 때도 있다.
내 마음속에는 어떤 것들이 살고 있을까? 괴로운 마음은 뒤죽박죽이 되었다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은 나를 구름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또 슬픔이 나를 물 밑에 가라앉게 하고, 두려움과 욕심은 나를 지하 동굴 속에 집어넣고, 노엽고, 화가 나는 마음은 나를 용암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놓여나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마음이 놓인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마음이 아프다’하며 가슴을 끌어안는 것을 보면 가슴 속 어딘가에서 사는 모양이다. 마음이란 놈이 뜨뜻한 위장 속에 있기 때문에 음식물들과 같이 뒤죽박죽되고 부글거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붉은 피를 펌프질해대는 심장 속에 있어서 핏줄을 따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르내리느라 마음이란 놈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색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마음이 내 삶의 모두를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남들은 나더러 마음이 바늘구멍만 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좁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큰마음을 가져보라고 한다. 세상사 모두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마음이란 놈이 어디 있는지 몰라 감당을 못하는데 생각하기 나름이라니, 생각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이 많아 머리가 아프다.’ 등과 같은 말이 있는 것으로 보면 생각은 머릿속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돈 계산이 서툰 나는 실제 푼돈의 용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프고, 적은 돈으로 살림을 꿰맞출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아플 때가 많은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전기에 감전된 듯 갑자기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지금부터 너를 미워하겠다.’ 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좋은 생각을 쌓아간 것이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었고, 밉고 싫은 마음 역시 그 생각을 걷어내지 못하여 밉고 싫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생각이 마음을 만들고, 그 마음을 지우는 것도 역시 생각이다. 허우적거리던 마음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생각이 다른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리라. 생각은 이성에 가깝고 마음은 감성에 가깝다.
열정적인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세계를 빛내는 예술품이 탄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를르의 여인’을 경멸하려 해도 사랑하는 마음을 끊을 수 없다면 알퐁스 도데의 ‘장’처럼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코 아름다움으로 승화하지 못할 것이다.
내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해 누군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마음 아픈 이가 찾아와 물 한 모금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문을 닫아걸고 꽁꽁 얼어 있다면 흡족한 마음도, 기쁜 마음도, 그리고 행복한 마음도 내 안에 찾아들지 못할 것이다. 문 안에 갇힌 마음이 울화(鬱火)로 변해버려 나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안에 들어앉은 마음을 향해 귀 기울여 듣고 생각한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내 안의 마음을 살피고 생각한다. 밝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고여 있는 앙금을 닦아낸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쌓아 너덜거리는 마음을 정리하려 노력한다. 그래도 안 되면 그냥 모른 체하자. 마음이 항상 아픈 것은 아니고, 영원하지도 못할 테니까.
내 마음이 이럴 진데 아들 녀석 마음 역시 말이 아닐 것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음일랑 저 혼자 놀라고 놔두자.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 아들 녀석과 마주 앉아 맛있게 먹고,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사랑하자. (2009. 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