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이들어 좋은 것들

1. 새끼쥐는 어디로 갔을까

by 문영

한국 전후문학의 대표작가인 이범선 님의 수필 ‘도마뱀의 사랑’을 읽은 일이 있다.

집을 수리하려고 벽을 뜯었는데,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채 꼼작 못하는데도 10년 동안이나 살아있었다는 이야기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모인지 아니면 짝인지 알 수 없으나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가져다주더라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말한 일본식 가옥의 벽 ‘오가베’는 우리 집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살던 집을 그대로 창고로 쓰고 있다. 오랜 세월을 겪으며 여기저기 흙이 떨어져 갈대로 엮어 만든 ‘오가베’가 드러나 보인다. 우리 집 창고에는 쥐가 많으니 벽에 못을 치면 쥐꼬리가 못에 박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시멘트 벽돌로 지은 살림집과 창고가 이어 있어서 쥐들은 우리의 영역까지 자주 습격해 왔다.

3년 전 S읍에 있는 집을 정리하지 못하고 C시로 이사했다. 큰아들네 내외가 직장에 다니는데, 첫째 손녀가 그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간은 사부인이 돌보아 주셨다. 건강이 나빠져서 더는 못 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들네 옆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 곳에서 70년 가까이 대를 이어 도소매업을 운영하며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내에서 가장 번창한 마을이었다는데 지금은 쇠락해버렸다.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고, 장사도 안됐는데 남편은 쉽게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가게에는 팔다 남은 물건이 잔뜩 남아 있었지만 그걸 모두 정리하고 떠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이사를 감행했다. 남편의 건강은 자꾸 나빠지고, 나도 이 권태로운 삶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사한 뒤에는 2주일에 한 번 내려와 2, 3일을 묶다 가곤 했다. 집이 팔리지 않아 비워뒀는데, 사람이 안 살면 금방 주저앉는다고 들은 데다 남편을 위한 배려였다. 남편은 주류 도매업으로 군내를 주름잡던 시절의 추억을 되풀이하며, 살던 자리에 남은 기억의 실타래를 아직 거둬들이지 못한 듯하다.

시골집 문을 열면 쥐들과의 교대근무가 시작된다. 녀석들은 급히 자리를 비워주느라 벽장으로, 2층 계단으로 우당탕거리며 자신들의 영역으로 숨어버린다. 청소할 줄 모르는 놈들이 살았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지저분하고 냄새도 고약하다. 앞에 말한 일본식 벽 구조 ‘오가베’도 쥐들의 번식과 생활을 돕는데 한몫을 했으리라.

쥐를 잡아보려고 쥐약도 놓고 쥐 끈끈이도 놓아보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녀석들은 우리가 기거하는 3일 동안을 까치발로 걸으며 몸을 사리는 모양이다. 첫 대면처럼 요란하지 않은 걸 보면.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먹잇감이 될만한 것을 찾아서 영락없이 구멍을 뚫어놓으니, 때려잡아도 시원치 않을 거 같다. 그러나 잡혀야 말이지!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심산으로 쥐들이 잘 다니는 길을 찾아 끈끈이 여러 장을 펼쳐놓았다. 쥐가 잘 먹는다는 약도 새로 사다 놓았다.

쥐 끈끈이는 8절 크기의 두꺼운 종이 가운데 그 절반 크기 만큼에 접착력이 아주 강한 접착제를 발라놓고 중앙에 사료 두어 알을 붙여놓았다. 사료는 쥐를 꼬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워낙 접착력이 강해 떨어지지 않을 것을 고려하여 붙여놓은 듯하다. 쥐 끈끈이를 놓을 때는 바닥에 그냥 펼쳐놓으면 안 된다. 만약 쥐가 달라붙으면 끈끈이를 몸에 붙인 채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두꺼운 판지나 널빤지에 압정 같은 것으로 고정해 놓아야 한다.

불을 끄고 막 잠들려고 하는데 찍찍거리는 소리가 났다. 끈끈이에 쥐가 붙은 모양이다. 요놈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뒤이어 우당탕거리는 소리도 났다. 큰 놈이 잡힌 모양이다. 불을 켜고 쥐 끈끈이 놓은 곳에 가 봤다. 큰 놈이려니 했는데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생쥐 두 마리가 끈끈이에 붙어서 발버둥 치며 찍찍거리고 있었다. 실망스러웠다. 아직 어린놈들이라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제 어미 말을 안 듣는 개구쟁이 놈들이었나 보다. 끈끈이에 쥐가 붙으면 바로 처리해야 하는데 새끼 쥐니까 무슨 힘이 있겠냐 싶어서 그냥 두고 들어왔다. 작은 생명이 끈끈이에 붙어서 버둥거리는 모습은 보기 안타깝다. 그렇다고 떼어내어 살려줄 수도 없는 일이다. 남편은 나와보지도 않고 그냥 두면 도망간다고 한마디 한다.

“그럼 나가서 처리하든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툭 내뱉었다.

다음날 남편은 일찌감치 일어나 밖에 나가더니 쥐 붙은 끈끈이 어디 놨냐고 묻는다. 얼른 나가보니 정말 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그냥 두고 들어왔는데 쥐가 없다. 끈끈이 개수는 어제 놓은 여섯 장 그대로다.

끈끈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 장이 다른 것과 달랐다. 쥐가 붙어있던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 있고 끈끈이의 둘레는 쥐 이빨로 새긴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끈적거리는 접착제 위에 누가 흩뿌려 놓은 것처럼 모래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이었다. 모래 위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전혀 끈적거리지 않는다. 마침 한쪽 구석, 두어 발쯤 떨어진 곳에 집을 고치다 남은 모래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쥐새끼같이 영리하다더니….”

한마디 던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 사회에서 분노할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부모에 의해 학대당하다 죽은 아이들 사건이 보도될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제 부모가 좋다고 매달리는 자식들을 굶기고, 때리고, 방치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식을 낳는다고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자식이 곤경에 처해있다면 온몸을 던져서 자식을 구할 것이다. ‘오가베’ 속의 도마뱀처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어미는 새끼 옆을 떠나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먹이를 구해다 줄 것이다.

어미의 사랑으로 새끼는 성장하고 생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새끼는 어미가 되어 받은 사랑과 함께 지혜와 지식을 자손에게 전해주리라.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어미의 희생으로 자신들의 유전자를 이어 가고 있다.

나는 ‘도마뱀의 사랑’ 속에서 도마뱀이 왜 스스로 꼬리를 잘라내고 도망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은 차치하고, 먹이를 날라다 준 도마뱀이 어미라고 확신한다. 어미가 아니고는 상대를 10년 동안이나 보살필 동물은 드물다.

끈끈이에 붙었던 것이 새끼 쥐였으니, 누가 녀석들을 구조해 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022.에세이 문학 천료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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