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이들어 좋은 것들

4. 망설여지는 일들

by 문영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이 한산하다. 여기저기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있다.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런데 차 바닥에 100원짜리 동전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건너다보며 아는 체한다. 나는 잠깐 망설인다. 액면이 큰 지폐였다면 이거 누구 돈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100원짜리인데 묻기도 뭐하고 그냥 두자니 아깝다. 줍자니 그것도 망설여진다. 주워서 누구 거냐고 묻는대도 답하는 이가 없을 게다. 버스 기사에게 전하려면 운전석까지 가야 한다. 내릴 때 건네준다면 사람들은 주워서 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무슨 일에나 이렇게 망설이는 성격이다.

가게에서 거스름돈을 더 받았을 때 잠깐 망설인다. 그리고 더 받은 돈을 되돌려준다. 자기 돈인데 돌려받고 고마워하는 가게 주인 앞에서 속으로 공연히 되돌려주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으쓱 착한 사람이 된다.

조금 아주 조금 안면이 있는 남자의 바지 지퍼가 열렸을 때 나는 망설인다. 알려주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대부분 눈을 피하고 어름어름 자리를 떠나 버린다. 그런 경우 텔레비전 카피처럼 “거기 열렸어요.”라는 말이라도 건네야 할까?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는 중인데, 아이를 업은 여인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이 버스에 올라타면 나는 또 망설인다. 자리를 양보해야 맞나 하고? 힘들어도 그런 경우 대부분 자리를 양보하는 편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만 괜찮다며 사양하기를 바라는 내가 그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신혼 시절에 집안 어른댁에서 족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망설였다. 다리는 저려 오는데 바꿔 앉을 수도 없고, 코끝에 침을 서너 번씩 찍어 바를 수도 없는 일이다. 편하게 자리를 고쳐 앉으면 될 일을 무릎을 꿇은 채 참아내고 있었는지….

마당에 오래된 감나무의 가지를 쳐줄 때 나는 또 망설인다. 대추나무, 박티기나무, 라일락의 가지를 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으로 치면 팔을 뚝뚝 잘라내는 것인데 나무가 과연 좋다고 할까? 녀석이 필요해서 새순이 돋고 가지를 벋었을 텐데. 좀 더 실한 꽃과 열매를 맺고 수형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으니까 혹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컷트 한다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망설일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 일인가 하고.

봄마다 뜰에 난 민들레 포기를 뽑아야 할 것인지, 그냥 둘 것인지 망설이다 제초 시기를 놓치고 만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그 여리고 가벼운 것이! 안타깝고 애잔하다. 봄볕이 마당에 하나 가득 넘치는 봄날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으면 정말 아름답다. 민들레의 번식력을 익히 경험했으면서도 망설이다 민들레 홀씨가 날릴 때야 앗차!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와 나의 뜰에서 싹을 틔워 1년 동안에 회초리만큼 자란 어린 오동나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또 망설인다. 그냥 두어 나무 그늘을 만들기에는 우리 집 마당은 너무 좁다. 미련을 가지고 그냥 두면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가 되어버릴 것이니 그도 걱정이다.

겉보기에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 역 대합실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물건을 팔거나 구걸을 할 때 나는 망설인다. 어디 가서 노동이라도 하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물건을 사주는 것이 그를 돕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한다.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데, 내 작은 도움에 용기를 얻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렇게 하찮은 일은 망설인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결단이 필요한 큰일에서도 망설인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미리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옳다고 판단되는 일을 선택하고 실천하면 될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나의 이익도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리면 될 것이다.

100원짜리 동전은 주워서 기사에게 전하면 되고, 자리를 양보할 형편이 아니면 그냥 앉아 있으면 된다. 남이 뭐라고 할까 하고 신경 쓸 필요 없다. 자리가 불편하면 편하게 앉으면 된다. 동정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고, 민들레는 그냥 두고 보면 된다. 아기 오동나무는 뽑아내야 맞다. 감나무 가지는 쳐주면 될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일을 무얼 그리 망설이는가. 망설이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은데. (2009)

keyword
작가의 이전글2. 나이들어 좋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