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껌에대한 추억
"그까짓 거 다 껌이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하잘것없고 쉬운 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껌값이야."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거나 푼돈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껌이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자리 잡은 뒤 언제부턴가 관용구처럼 쓰이게 된 말이다
껌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6.25 전쟁 후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어렸을 때 군산 비행장에 가는 국도변에 살았고, 그 신작도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시커멓고 덩치가 큰 병사들이 탄 군용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그 길을 휙 휙 달려갔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헬로, 짭짭'을 외치며 트럭 뒤를 쫓아갔다. 미군 병사들은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며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어쩌다가 먹을거리를 던져줄 때도 있었는데, 대부분 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껌을 씹어보았다.
네모나고 반들반들한 바둑돌 모양으로 당의정이 된 녀석을 아작하고 씹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그렇게 달고 향기로운 맛을 처음 느꼈다. 얼마 안 가서 그 좋은 향과 단맛이 사라져서 안타까웠다. 씹고 또 씹어도 목으로 침만 넘어가고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없었으나, 줄어들지 않는 그놈은 우리에게 귀한 주전부리였다. 씹던 껌을 벽이나 책상 밑에 붙여놓았다가 다음날 떼어 다시 씹었다. 내 것만이 아니고 형제들이 붙여놓았던 것까지 몰래 떼어서 차지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놈을 떼어내면 붙어있던 자리의 때 묻은 벽지까지 묻어났다. 손때까지 묻어 결국 회색으로 변해서 삭아버리곤 했다.
서른이 조금 넘었을 때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도와 가게 일을 했다. 그때 나는 껌을 씹으며 보냈다. 지금 내 치아가 좋지 않은 것은 그때 껌을 너무 씹어댔기 때문이리라. 장사꾼은 몇 푼의 이익을 위해서 인격도 자존심도 없이 산다고 여기는 몇몇 사람들의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다. 장사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경멸할 때는 치욕스러웠다. 반 욕지거리로 지껄인 자기 말본새는 모르고 내 말투가 거만하다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을 보면 뒷덜미를 잡아 세우고 따지고 싶었다.
내가 그런 사람들과 일으킨 소란을 무마시키느라 남편이 애를 먹곤 했다. 남편은 늘 나더라 입을 다물라고 했다. 말을 삼켜버려야만 했던 입은 애꿎은 껌만 씹어댔다. 딱딱 소리도 내고 질겅질겅 씹기도 했다. 그리고 입안의 껌을 아무 데나 '퉤-'하고 뱉어 발로 쓱쓱 문질러가며 울화를 짓이겼다. 그때 나는 바뀐 삶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하고, 참담한 자신의 모습을 짓이기며 껌을 씹어댔는지 모른다.
요즈음은 아주 다양하고 여러 가지 기능을 지닌 껌이 많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향과 맛을 첨가한 것도 있고, 풍선을 만들며 즐기도록 만들어진 것도 있다. 입에서 음식 냄새를 없애주는 것도 있고, 졸음을 쫓아주는 것도 있다. 어떤 껌은 특수한 원료를 첨가하여 충치 예방 효과가 있다고 광고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남의 신경 거슬리게 쩍쩍 소리 내며 껌을 씹는 사람도 적어졌고, 아무 데다 버려서 다른 사람들 난처하게 만드는 일도 적어졌다. 껌을 받아들여서 성숙해지기까지 7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껌이 하잘것없고 버려도 무방한 것이 되었다.
철없던 시절 좌충우돌하던 생각과 행동이 겸손해진 지금 내 나이는 70이 넘었다. 남을 이해하고 참아주며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지는데 70년도 더 걸린 것이다.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세상에 순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씹던 껌을 포장지에 싸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이제는 껌을 짓씹지 않아도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달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