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나이들어 좋은 것들

9. 점

by 문영

친구 따라 얼굴에 난 점을 빼러 간 일이 있다. 나이 드니 기미, 죽은 깨는 말 할 것도 없고 검버섯까지 얼굴에 넙죽넙죽 자리 잡았다. 잡티가 난 부위에 화장품을 덧칠해서 감춰보려 해도 그때뿐 금방 거뭇거뭇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들 결혼식 때 고생에 찌든 촌티 나는 시어머니 모습으로 하객을 맞으려느냐며, 친구가 바람을 넣는 바람에 귀가 얇아지고 만 것이다.

간호사가 얼굴 전체에 마취약을 바른 뒤에 의사가 들어와 점과 검버섯, 사마귀까지 레이저로 지져대기 시작하였다. 지지직거리며 살 타는 소리와 냄새, 따끔거리는 아픔이 한동안 계속되자 후회되었다. 그러나 이제야 어찌하겠는가, 참아내는 수밖에.

다 끝난 뒤 거울을 보고 너무 놀랐다. 크게 자리 잡은 점 몇 개만 없앨 줄 알았는데, 그 많은 점은 물론 주근깨까지 정리해 놓았으니 뜨거운 기름이라도 뒤집어쓴 몰골이 되어버린 것이다.

2주일가량 바깥 출입을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밖에 나왔을 때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간호사는 두세 차례 더 시술을 받으러 오라며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내 얼굴을 보고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대부분 모른채 했는데, 논술 수업 시간에 만난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나는 튀김을 하다가 기름이 튀어서 화상을 입었다고 둘러댔다.

정작 아들 결혼식 날은 화장술이 아니었으면 큰 낭패를 당할 뻔했으며, 결혼사진도 카메라 기사의 포토샵 덕택에 아직 가시지 않은 흔적들을 말끔히 지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내가 참여하는 단체에서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애초에 있던 점보다 더 흉하게 흔적이 남아 그때의 어리석음을 확연히 기억나게 한다.

여인들이 얼굴의 점을 없애는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 든 사람이나 남자들도 피부과나 성형외과 병원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 아들놈도 늦은 나이에 장가들면서 아내 될 사람과 같이 여러 차례 피부 관리를 받았다. 사람을 대할 때 맨 먼저 보는 것이 얼굴인데다 얼굴색이나 표정이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을 보면 얼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점이 그냥 점으로 끝나면 별문제 없다. 그런데 그 점이란 놈이 자라는 놈도 있고, 이상하게 세포 분열하여 암으로 발전하는 놈도 있다니 문제다. 조금 수상쩍은 놈을 아예 없애버리면 피부암 같은 걱정을 덜 수 있는 데다 미용 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서 얼굴이나 몸의 점 제거가 성행하는 것이리라.

점은 본인임을 나타내는 증표가 되기도 한다. 간혹 이름에 '점'자가 들어 있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은 어딘가에 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또 텔레비전의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헤어진 사람의 특징을 말할 때 어디에 어떻게 생긴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을 가끔 본다. 점이 찾는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표가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점을 빼어버렸다면 확인하기 힘들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얼굴에 큰 점이 있으면 위치에 따라 어떤 것은 복점이라고 하고 어떤 것은 흉점이라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사람도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서 점이 자라게 마련이다. 오래전에 우리 아랫집 처녀는 양잿물을 바늘 끝에 묻혀 점이 난 부위에 살짝 찍어준다는 것이 잘못하여 큰 화상을 입은 것을 보았다.

내 얼굴의 점이나 검버섯은 햇빛 걱정할 새 없이 허겁지겁 살아온 흔적일 것이다. 젊을 때는 여름에 생겼던 점이 겨울이면 흐려지거나 없어지더니, 육십여 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점들이 여기가 내 자리입네 하고 얼굴 여기저기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얼굴에만 그리 삶의 흔적이 남았겠는가. 마음속에는 더 크고 더 시커먼 점들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몸속 곳곳에도 점과 흔적들이 생겼으리라.

두어 차례 더 시술받으러 오라던 간호사의 말을 무시한 때문인지, 아니면 관리를 게을리한 탓인지 얼굴은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점과 검버섯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비록 얼굴에는 점들이 다시 생겼지만 몸과 마음에는 더 이상 점이 생기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2012.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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