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나이들어 좋은 것들

10. 소금 두포대의 선물

by 문영

며칠 전 우리 반 박○○의 아빠가 소금 두 포대를 다른 사람의 차편에 보내왔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말도 함께 전해 받았습니다. 박○○ 아버지는 남의 염전을 세내어 소금을 만드는 가난한 염부(鹽夫)입니다. 이곳 염전 마을에서 30Kg들이 소금 한 포에 8천 원씩이라니까 16,000원의 뇌물을 받은 셈입니다. 집이 충남인 내가 전남의 서해안 바닷가 마을에 혼자 와서 근무하고 있으니, 소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박○○는 2학년 아이입니다. 처음 내가 교실에 들어가자 녀석은 뭐든지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두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앉아서 고개를 수굿하고 있는 모습이 왜소하고 측은해 보였습니다. 분명하게 제 의사를 밝힐 줄도 모르더군요.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습니다. 책도 읽을 줄 몰랐고, 1학년 수준의 한자리의 기본적인 셈도 할 줄 몰랐습니다. 즐거운 생활 수업 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손만 조물락 거리며 구겨진 종이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담임한 아이들은 모두 10명입니다. 1학년과 2학년 복식학급이지요. 처음에는 8명이었는데, 2명이 전학을 왔습니다. 그래 1학년이 2명, 2학년이 8명입니다. 놀며 쉬엄쉬엄 가르치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아이들의 학력은 바닥이고, 학부모들은 먹고살기 바빠 바다로, 논으로 눈만 뜨면 일하러 나가지요. 학원을 몇 군데 다닌다는 도시의 아이들에 비하면 학원이 없는 이곳의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요? 저학년은 학부모의 협력이 필요한 학습 내용이 많은데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처음 과제는 발표력을 키워주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 의사를 분명히 말하는 능력이 극히 빈약하였습니다. 발표력 부족은 시골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특성입니다. 돌아가면서 반장을 시켰지요. 물론 박○○도 예외는 없었지요. 처음에는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또 입을 모아 “박○○는 못해요.”을 외치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도 엇비슷하면서 말이지요.

처음 한 달 동안은 하루씩, 그다음 달에는 3일씩 시켰습니다.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실패감을 계속 맛보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잘못했으면 다음에는 좀 더 잘할 수 있게 개인지도를 했습니다. 요즈음 일제의 잔재라고 전체적인 구령은 없애라는 시달이 내렸지만, 나는 그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기 훈련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요. 반장이라는 감투도 감칠맛 나는 미끼가 됩니다. 어느 정도 단계에 오른 뒤 거수로 반장 부반장을 뽑았습니다.

전 학년 담임이 박○○를 가리켜 구멍 뚫린 콩나물시루라고 했습니다. 헛고생하지 말라고 미리 귀띔해준 것이지요.

나는 그 녀석을 지금 잡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학습의 양은 자꾸 누적되어 가는데, 그때는 더욱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처음 녀석을 데리고 공부를 시작할 때 나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한 학기가 걸릴지, 아니면 한 학년이 지나도 한글 독해도 못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녀석에게는 자신 있게 말했지요. 2학기 때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공부할 수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우리 반 아이들은 8시 30분이면 모두 등교합니다.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협조를 얻었지요. 1학년이 두 명밖에 안 되지만 두 학년이니 아이들의 주당 시간은 48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그 시간을 다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허나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하면 일주일에 180분이 누적되어 교육과정을 이수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토요일도 등교했거든요. )

8시 30분부터 일기 검사와 숙제 검사가 시작됩니다. 일기는 날마다 쓰도록 하고 날마다 검사를 했습니다. 어려운 낱말 쓰기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틀린 글자를 다시 고쳐오고 몇 번씩 쓰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니, 받아쓰기를 자주 하지 않아도 맞춤법 지도는 되더군요. 일기검사 시에도 맞춤법 지도와 띄어쓰기 지도를 같이 했지요. 문장을 짧게 쓰기, 꾸며주는 말 넣기, 대화 넣기, 경어 쓰기, 쓰기와 글짓기 영역을 일기 검사를 하면서 지도했습니다. 소인수 학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성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가 오후 3시에 끝납니다.

다행히 박○○는 7시 30분이면 학교에 옵니다. 염전에서 나오는 버스가 아침에는 그것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찍 등교합니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8시 30분까지 한 시간 동안은 녀석을 위한 시간입니다. 학교에 오자마자 안아주기부터 먼저 했지요. 그리고 어느 때는 으름장도 놓고, 어느 땐 업어주기도 했지요. 간식을 준비했다가 녀석만 몰래 주기도 하고, 선물을 주기도 했지요. 울리기도 많이 했습니다.

언젠가는 결석했기에 부모에게 전화했더니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한답니다. 한글을 몰라도 좋으니 졸업장이나 따게 그냥 놔두라고 합니다. 부모마저 두 손 들고 포기한 셈이었지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어쨌건 녀석의 닫힌 마음을 열고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조금만 잘해도 칭찬해주고 온몸을 간지럽혀 실컷 웃기기도 했지요.

드디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학년 과정의 덧셈과 뺄셈은 물론 구구단도 외웁니다.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말도 자신 있게 못하던 녀석이 잘 웃고 잘 놉니다. 가끔은 싸움도 합니다. 고자질도 제법 잘합니다. 아이들도 박○○의 발전에 손뼉을 쳐주고 같이 뛰며 즐겁게 놉니다. 녀석은 요즈음 공부가 참 재미있다고 합니다. 정말 지금은(2학기) 다른 친구들과 같은 과정을 공부합니다. 물론 개인지도가 필요하지만 2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소금 어떻게 할 거냐고요? 뇌물이지만 그냥 받을 겁니다. 저는 차가 없어서 되돌려줄 수 없거든요. 김장철에 택배로 집에 붙여서 김치를 담가야지요. 올해 김장 김치는 정말 맛이 있을 것입니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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