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눈물
섭씨 30도를 웃도는 복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오늘 P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가 나가고 있는 문학회 모임의 회원이다. 내가 문학회에 가입한 지 일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그에 대해 자세한 속내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아주 성실한 늦깎이 문학도였다. 사찰이나 한옥 등 고건축물을 짓느라 투박해진 손으로 영롱한 시어를 엮어내는 그를 볼 때 존경심이 생겼다.
영안실 밖의 우거진 나무 위에서 매미만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의 가족들은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은 체 문상객들을 맞았다. P의 아내는 우리의 손을 덥석 잡으며 자기를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생목숨을 끝은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말만 쏟아놓았다. 나는 같이 간 K여사와 같이 분향하였다. 죽은 P씨가 문단에 등단하는 데 힘이 되어 주었다는 K여사는 눈물을 흘리며 영정 앞을 떠날 줄 몰랐으나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와 불화가 심해서 이혼하겠다고 별렀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읍내에 사둔 땅이 경제불황 때문에 묶여서 곤란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한편에서는, P가 가슴에 쌓인 시심을 풀어 쓸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심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이도 했다. 그는 갔지만 그의 영정 사진은 그가 사랑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아직 남아 있는 빛나 보였다.
나는 T.V의 멜로 드라마를 보고도 줄줄이 눈물을 흘린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계면쩍어 남편이나 아이들과 같이 앉아서 볼 수 없을 때가 있다. 탤런트의 연기가 미숙하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들이 강요하는 눈물의 바다에 빠져들고 만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나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조문을 왔던 친구들은 후에 나더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지독한 애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나는 울 수가 없었다. 간신히 쉰을 넘긴 아버지, 딸 대신 죽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는 외할머니, 어린 동생들, 내 생각은 남은 사람들에게서 떠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눈을 감고 편히 잠든 어머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관이 매장되는 순간 장례 기간 내내 나오지 않던 눈물이 쏟아져서 주체할 수 없었다. 그다음부터 어머니가 내 삶 속에 따라와 같이 했다. 눈뜨면서부터 시작한 어머니 생각은 잠들 때까지 순간순간 내 생활 속에 끼어들었고, 시도 때도 없이 눈자위가 젖어 들었다.
너무 슬퍼도, 너무 기막혀도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장례가 끝난 뒤의 P의 아내가 걱정된다. 먼저 간 사람에 대한 미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산 사람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미움은 잠깐이고 죽은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은 산 사람을 죄인으로 바꾸어 놓고 만다. 나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괴로웠다.
눈물은 땀과 비슷한 성분의 체액이다. 그러나 눈물에는 감정이 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 더 기쁘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 더욱 서러움이 북받친다. 그래도 가슴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고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메말라 남편의 악담을 쏟아내는 P의 아내가 안쓰럽다. 그녀는 지금 눈물이 필요 없는 사치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앞에 가로놓인 문제들이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크게 닥쳐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과 슬픔을 치유해주는 것도 눈물일 것이다.
그녀가 앞으로 남은 긴 시간 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다.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