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파리를 잡으며

7. 아비 죽이기

by 문영

간혹 자식이 부모를 해하였다는 뉴스를 접하는데, 그런 반인륜적인 사건에 우리는 격앙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본능적으로 갈등이 생기고, 살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했다. 또 맹자는 '…자식으로서 아비를 죽이는 자도 있으니 공자가 두려워서' 춘추전국시대를 지었다 했으니 아비 죽이는 사건은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동물들은 제 먹이를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둥지를 떠나 부모와는 인연 없이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특히 맹수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번식을 위해서 아비가 새끼를, 새끼가 아비를 죽이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또 거미나 사마귀 같은 곤충들은 제 아비의 몸을 자양분 삼아 태어난다. 큰 가시고기 새끼는 알을 돌보느라 기진한 아비의 육신을 취해 성장해 간다. 동물 세계에서 아비 죽이기는 생존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오래전에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주말 드라마가 있다. 가난한 변호사 아가씨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혼했으나 결국 들통이 나서 갈등이 고조된다. 그리고 정해진 화해 과정을 거쳐 해피엔드로 끝나는 드라마였다. 극의 마무리 단계에서 주인공은 구치소에 수감 된 학생의 변호를 맡아, 그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잘못도 치유해 간다.

‘아버지를 죽일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저 자신을 죽이려고 남의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낸 겁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나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거든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의 변론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 어쩜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꿈조차 꿀 수 없던 시기에 태어난 우리 아버지는 관습대로 철없는 나이에 아버지가 되었고, 가부장제가 무너져가는 때에 무능한 가장으로 살아야 했던 분이다.

하루하루 집안을 꾸려가느라 허덕거리는 어머니 모습을, 나는 보고 자랐다. 집안의 기둥은커녕 가족들을 힘들게 하던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던 딸년의 속내를 모르지 않으셨을 테니 그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아버지가 작고하신 뒤에야 철이 든 딸년은 사죄할 기회조차 놓치고 말았다.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양육 기간이 길다. 양육이란 자식이 잘 자라도록 돌보는 것을 말한다. 부모의 영역에서 독립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람은 결혼 무렵에야 양육이 끝난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요즈음은 결혼한 자녀들을 돌봐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사람은 동물 중에서 양육 기간이 가장 긴 동물에 속할 것이다. 반면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동물도 사람밖에 없지 싶다. 간혹 무리를 이루고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동물도 있겠지만 가장 긴 기간 동안 부모를 보살피는 것 역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 데는 오랜 기간의 양육과 부양도 한몫했으리라. 그러나 긴 기간의 양육과 부양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만만치 않아서, 있어서는 안 될 문제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폐륜적인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기 보다 아비의 권위를 넘어서지 못한 어리석은 자식의 폭력이다. 아비는 죽여야 할 상대가 아니다. 죽었으면 하고 바랄 상대도 물론 아니다. 다만 넘어서야 할 상대일 뿐이다.

바르게 자라고 남부럽지 않게 효심이 지극한 우리 자식들도 제 부모인 나나 제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윽박지르고 상처 준 일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도 자명한 사실이니 그리 생각했다 해도 나무랄 수 없다. 만약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그것은 아비를 넘어서기 위한 성장 과정이니 죄의식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2009.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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