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리와 거울
오늘은 겨울 날씨치고는 포근하다. 창밖에는 알몸을 드러낸 은행나무가 무뚝뚝한 사내처럼 하늘을 응시하고 서 있다. 나도 은행나무 끝을 따라 하늘을 올려 본다. 하늘은 웅덩이 물처럼 깊이 가라앉아 있다. 맑다고는 할 수 없으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 주는 묘한 힘이 느껴진다.
나는 불현듯 미루어 두었던 유리창을 지금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동이에 물을 담아오고 자루걸레와 세제도 준비했다. 남편은 날도 추운데 공연히 수선을 떤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혼자 벌인 일이니 알아서 하라는 눈치다.
나는 가을에 창유리를 자주 닦는 편이다. 방안까지 파란 하늘이 들어와 호수처럼 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유리를 깨끗이 닦았는데도 창밖의 하늘은 조금 전 그 하늘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겨울 하늘은 돌 하나만 던져도 금방 흐려지고 마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같다. 바짓가랑이와 소맷자락이 젖어서 냉기가 자꾸 몸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포근하다고 깔봤으나 겨울은 역시 겨울이어서 나는 쫓기듯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오던 벽에 걸린 거울이 오늘은 유난히 더럽게 보인다. 창유리를 닦은 뒤라서 더 더러워 보이나 보다. 내친김에 방안의 거울도 닦는다. 예전의 거울은 면이 고르지 못하여 이마가 길어지기도 하고, 주름 종이를 접어놓은 것 같이 턱이 오그라들기도 하여 묘한 얼굴을 만들었는데, 요즈음의 거울은 다 괜찮은 편이다. 이마가 긴 사람도 턱이 짧은 사람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속없는 거울은 닦아 놓으니까 내 얼굴의 주근깨와 기미까지 속속들이 찾아내어서 보여준다. 나는 공연히 거울은 닦았나보다 싶어 피식 웃었다.
우리는 밖을 보기 위하여 유리를 집안에 들여놓았다. 유리가 귀했던 시절에는 격자 문에 네모난 구멍을 만들고 손바닥만한 유리 조각을 붙여 밖을 내다보았다. 문을 열지 않아도 쉽게 밖에 무슨 일이 있으며, 누가 왔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바깥사람의 동태를 살피고 얼른 대처하여 민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붙여놓았을지도 모른다.
자식놈이 제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들어앉아 있으면 녀석의 방문에 유리 한 조각을 붙여놓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진다. 아들 녀석의 미심쩍은 구석을 훔쳐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 조각이 아닌 거울을 붙여둔다면 어떨까. 아들놈은 방에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제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또 놈을 훔쳐보고 싶은 나도 내 얼굴을 볼 테니, 우리 모자는 스스로 보기에도 가관인 제 얼굴을 보며 반성하게 되지 않을까?
유리의 뒷면에 약품을 발라서 빛의 통과를 막아놓은 것이 거울이다. 유리로 거울을 만들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동경(銅鏡)을 만들어 자신의 모습 보기를 즐겼다. 그보다 앞에는 나르시스처럼 웅덩이에 고인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제 모습을 보고 싶어 했을까? 밖을 그러니까 남을 훔쳐보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지 않나 싶다. 상대가 말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직접 보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서 거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매번 밖의 웅덩이로 달려 나가서 봐야 하는 불편을 덜려고 동경을 만들고 거울을 만들어 집안에 들여놓지 않았을까? 오늘날은 거울이 제 모습을 본다는 단순 기능으로보다 과학의 여러 방면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분명히 유리를 통하여 밖을 보고, 밖에 있는 남들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유리가 거울이 되어서 내 모습을 반사 시켜 줄 때가 있다. 어두운 천이나 종이로 유리의 바깥쪽을 가렸거나, 창밖에 어둠이 내릴 때, 내가 타고 있는 열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갈 때가 그렇다. 그럴 때면 창밖의 풍경과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이 하나가 되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남들과 섞여 있으며, 나는 여기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또 밖에 있는 것이다.
유리는 밖을 보기 위한 창이다. 그리고 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집의 창문이 유리고, 상가의 창도 유리다. 그러나 거울은 화장실에, 화장대에, 쓰레기장에, 그리고 교통 사각지대에 설치한다. 나를 보고, 고치고, 주의하며,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자는데 거울의 의미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2001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