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파리를 잡으며

9. 도깨비 감투

by 문영

어릴 때 투명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비슷한 이야기로 우리나라의 도깨비감투 이야기도 생각난다. 어릴 적에는 나에게도 도깨비감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 투명 인간처럼 계속 안 보이는 것은 싫고, 필요할 때 쓰면 남들이 나를 보지 못하는 도깨비감투가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깨비감투는 동화지만, 그것만 쓰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구미가 당겼다. 그것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문제없이 극장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교외 생활지도 선생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 서 있는, 학생 입장 불가 영화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시험 보기 전날 시험지를 몰래 훔쳐내기만 한다면 100점 맞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시험의 중압감에 짓눌려 있던 나는 정말 도깨비감투만 있다면 그런 유혹에 흔들렸을 것 같다. 크게는 은행에 들어가 돈을 잔뜩 가져온다고 해도 아무도 모른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고 범죄를 공상한 것도 사실이다.

도깨비감투에 구멍이 뚫려 사람들의 눈에 띄고, 결국 호되게 당하는 것으로 황당한 이야기는 결말지어진다. 「투명 인간」은 실험 도중 투병 인간이 된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보이지 않는 자신의 실체를 인식시키기 위해 온몸을 붕대로 감고 살던 그는 범죄에 대한 유혹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범죄를 저지르는 투명 인간을 두려워하고, 그는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익명성의 뒤에서 행해지는 범죄에 빠지는 우리 인간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고발하는 소설이었다.

나는 도덕성과 윤리의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누가 억류시킨 것도 아닌데, 구속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안에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광기가 잠재해 있나 보다. 점잖은 사람도 남이 보지 않는 데서는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속인들이 일상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공상 속에서나 해보기 위하여 투명 인간을 만들어내고 도깨비감투를 지어낸 것 같다.

투명 인간이든, 도깨비감투를 쓴 인간이든, 육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야에서 육체가 사라진다고 정신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형체가 없는 정신은 깃들데 없이 떠돌게 되고, 그리하다 보면 인간성은 황폐해지고 말살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익명의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행하는 익명의 자선가도 세상에는 많다. 그러나 간혹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다면, 아니 속일 수만 있다면 속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내 안에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생각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리라.

남이 무엇을 하는지 몰래 훔쳐봐서 내게 무슨 득이 될 것이며, 모습을 감추고 알아낸 것들이 그리 요긴하게 쓸데가 어디 있겠는가. 재판을 통해 시비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면 남의 것을 몰래 알아낸다 해도, 진정 그것이 나에게 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범죄 여부를 떠나서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으리라. 사람들은 대개 거기서 거기이고,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산다. 네 생각이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내가 하는 일을 남도 대부분 하면서 산다. 그러나 그 평범함을 욕심내는 투명 인간과 도깨비감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도깨비감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공상 속에서 추구하던 그 도깨비감투를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의 세상에 이미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보이지 않음을 기회로 도깨비감투를 쓴 사람들이 판을 치고, 투명 인간들이 밤낮은 가리지 않고 날뛴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에 구미가 당겨 그럴듯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데에 맛을 들이기도 한다. 우리가 바라던 도깨비감투가 되돌아오고, 투명 인간이 되살아 난 것이다.

나는 아직 인터텟 활용 능력이 서툴러서 어릴 적 도깨비감투에 걸었던 기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허나 속물근성이 다분한 나도 기능이 향상된다면 익명성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문 앞에서 누구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춤거릴 지도 모른다.

필요한 것도 다 못하고 사는 세상에 왜 그리 쓸데없는 일에 관심들이 많은지…. 보는 사람이 없다 해도 마음속에 부릅뜬 양심의 눈은 있을 텐데. (2007)

keyword
작가의 이전글3부. 파리를 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