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타래난초의 수난
7월 정기모임이었습니다. 장소는 지역의 명산에 있는 개인소유의 조그만 사찰이었습니다. 어쩌다 그 절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P여사가 초청하였습니다. 증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량도 깔끔하고 기도 터도 새로 지었습니다. 관리인이 관리를 잘해서 신록의 흑진주처럼 예뻤습니다.
거기서 오랜만에 타래난초를 발견하였습니다. 어릴 적 놀이터였던 묘 바탕에서 본 바로 그 꽃이었습니다. 꽃줄기 두 개를 묶어 꽃 관을 만들어 쓰고 놀았던 여덟 살 어린 계집애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흔치 않은 꽃이 되었지요. 너무 작고 연약해서 생존경쟁에서 뒤진 모양입니다. 야생화를 무리 지어 재배하는 관광지에서도 이 꽃을 보기 힘듭니다.
타래난초꽃은 꽃줄기가 두어 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앙증맞고 작은 분홍색 꽃들이 조르르 줄을 지어 돌아가며 피어있습니다. 모든 꽃들에게 햇볕을 받게 하고 싶은 꽃의 전략이라고 합니다.
‘타래난초의 생존전략은 치열합니다. 씨앗이 먼지만큼 작아 배젖이 없어 혼자 발아할 수 없답니다.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난균 곰팡이에게 손을 내밉니다. 곰팡이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비로소 한줄기 꽃대를 올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타래난초의 수명은 3년밖에 되지 않는다니 너무나도 귀한 생명입니다.’ (네이버 글 참조)
점심을 먹고 혼자 산책하다 발견한 타래난초꽃을 스마트폰에 담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옆에 앉은 K여사에게 자랑했는데, 그녀는 관심이 없는듯했습니다. 그런데 등 너머로 그 말을 들은 A 씨의 아내가 남편에게 제 말을 전했습니다.
"당신 우리 사는 데는 타래난초 볼 수가 없다고 했잖아? 여기 있대."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A 씨는 ‘타래난초’ 라는 말에 귀가 번쩍 떠졌나 봅니다. 그는 이 모임의 설립자였고, 자타공인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나도, 나도 하며 A 씨를 선두로 우르르 타래난초를 보러 나갔습니다. 연약한 줄기에 꽃을 피운 타래난초 대여섯 포기가 풀 속에서 저녁 햇빛을 받으며 하늘거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고 화려하지도 않아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A 씨는 뽑아가야겠다는 것입니다. 뽑아다 자신의 정원에 심겠답니다. 그리고 잘 키우겠다고 합니다. 아마 잘 키울 것입니다. 그러나 백 프로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들 죽어갔을 테니까요. 심드렁하던 다른 사람들도 앞다투어 뽑아다 자기 정원에 심겠다고 야단들입니다.
숨어서 몰래 피었을 타래난초를 그들의 눈앞에 소개한 잘못을 뒤늦게 후회하였습니다. 모두를 말리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타래난초를 몰랐던 사람들만이라도 말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기분 나쁠 만큼 강하게 말렸습니다.
'주인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들은 그 작고 아름다운 꽃이 어떻게 피었는지 그 힘든 과정을 모르니까요.
문득 지난해 동인지에서 읽은 A 씨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전원주택을 짓고 나니 정원을 가꾸게 되고,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산에 갔다가 흔치 않은 야생화를 발견하고 정원에 옮겨 심었더니 죽고 말았다며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쓴 짧은 글입니다.
그리 반성을 했으면서도 귀한 꽃을 보니 자신의 정원에 가져다 놓고 싶은 욕심이 되살아난 모양입니다. 이런 잘못은 A 씨뿐만이 아닙니다. 나도 여러 차례 그랬으니까요. 지리산에 갔다가 노란제비꽃을 발견하고 뽑아다 심었는데 죽고 만 일도 있고, 참꽃마리, 산자고, 현호색 등을 꽃밭에 심었는데 몇 해 안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자연이 모두 우리의 정원이니, 보고 싶으면 찾아가면 되고, 모두 같이 보면 되는 것인데, 우리 집 울타리 안에 소유하고 싶은 어리석음이 작고 아름다운 생명을 사라지게 하고 맙니다.
차마 A 씨를 강하게 말리지 못했습니다. 모임에서의 위치도 있는 데다 뽑아가겠다는 집념이 강했으니까요. 야생화 재배 경험이 많아 살릴 가능성도 없진 않으니까요. 한 포기만 뽑겠다고 했지만, 호미도 없어 작대기를 들고 나서는 그가 제대로 한 포기만 뽑아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 몇 포기의 뿌리가 상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발아와 생육 과정이 까다로운 녀석이 그의 정원에서 오래 발붙이지 못할 것이 뻔한데 말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사찰의 주인인 P 여사도 말리지 못하고 말없이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먼저 산을 내려왔습니다. P 여사는 같이 내려오며 내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알려주지 말지!“
(2021 계간 수필 천료작가 동인지 「바람의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