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3월 27일(목)
다섯째 날, 3월 27일(목
세상 상남자 더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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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 30분. 레스토랑 출발.
몽골에서 가장 길다는, 1,124km의 어르헝강이 내려다 보이는 뷰포인트에 서서 사진 촬영. 타이어로 만든 계단이 눈에 익다. 1년 반 전에도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도로는 아직 아스팔트를 기다린다. 오른쪽으로 꺾어 도니, 이제부터 돌밭이다. 화석암길, 끝도 없다. 더기 씨는 매의 눈으로 귀신같이 길을 찾아 달린다. 그는 “한국의 할매들을 또 다시 어떻게 만나겠어요. 함께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할게요.” 이 믿음직한 젊은이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더기 씨는 차 수리 중, 꽁꽁 언 손에 굵은 가시까지 박혀 터진 맨손을 물 대신 흰 눈으로 씻는다. 할매들은 온 가방을 다 뒤져 가시 빼는 쪽집게를 찾아내고, 상처가 덧날까 봐 약까지 발라준다. 고마운 마음이 바다처럼 넘실거린다.
18시 30분. 진짜 얼음강을 건넌다. 꺄악! 우린 살기 위해, 차의 무게를 줄여주기 위해 몇 번이나 내리려 했지만 어기 씨가 자꾸 가만있으란다. 눈 덮인 얼음강을 지그재그 작전으로 건넌다. “어기 더기 파이팅!”이 이어진다.
수억 년 전 바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대 화석암, 신생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암이 온통 널부러져 있는 길을 몇 시간 동안이나 달렸으니... 손잡이도 제대로 없는 푸르공 안에서 좌충우돌, 앞으로, 뒤로 흔들리는 동안 “모두의 허리는 안전하신가요?” 물어본다.
사라진 으르헝길
현무암이 멋들어지게 늘어진 협곡을 지나 노을 곱게 내리는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의 목적지인 어르헝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는 바짝 얼어 울란 추트갈란 벼랑 끝에서 멈춰 있고, 여기저기 헤매어 보아도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 없다, 내려가는 길이 없다. 왜 사라졌을까? 지난번엔 있었다. 게르의 개가 폭포 밑으로 잽싸게 내려가며 안내해주었고, 주상절리층을 보며 내려가 폭포 아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길은 봉인되고, 물은 결빙되고, 시간조차 말을 아끼는 극단의 정적 속에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19시 30분. 돌고 돌아 헤매고 헤매다 게르에 도착, 전통복을 입은 주인부부가 뛰듯이 나와 객들을 맞이한다. 밤이 되니 춥다. 손도 얼고 발도 얼었지만 마음과 말과 웃음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게르의 화덕엔 진정한 장작이 불쏘시게로 들어가고 주인장이 수시로 장작을 던지러 들어온다. 아, 따뜻함의 극치여!
어기 씨가 끓여준 계란국이 속을 훑어내리며 미감을 북돋운다. 매운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김에 싸먹으니 미슐랭 음식이 부럽지 않다.
은하수 찍는 기법을 공부하며 별을 보러 들락날락 부산하다. 이 시기의 은하수는 띠가 얇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무작정 기약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이 쏟아져 내리는데, 별을 보며 두근두근 가슴 떨릴 새도 없이 게르 안으로 도망친다, 너무 춥다.
혜의 한국춤 시연을 보며 귀여워서 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차 안에서 뺨이 부딪혀 웃고, 옆 게르의 굴뚝으로 새어나오는 불똥이 불꽃놀이 같아 웃고, 참으로 많이도 웃었던 하루였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아름다웠다. 지금도 장작불이 타고, 바람이 불고 게르 안에는 열심히 살았다는 표시로 코고는 소리가 아련하다. 게르의 불을 관장하는 주인장은 1시간마다 게르의 문을 연다.
온 세상의 고마움이 오소소 내게로 쏟아진다. 모든 신께 이 아름다움을 바치고, 아름다움을 내려주신 모든 신께 경배를 올린다. 게르의 하늘 창문을 통해 별들과 눈이 마주쳤다. 몽골의 밤하늘은 잠든 우주 위에 펼쳐진 살아 있는 기도문이다.
별이 그린 음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