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불, 물 속의 별, 쳉헤르 온천

여섯째 날, 3월 28일(금)

by 김연화
☑ 쳉헤르 온천(Tsenkher Hot Spring)
몽골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대지 위에서 드물게 만나는 따뜻한 쉼표 같은 곳이다. 해발 1,850m 산악 지형 속에 자리한 이곳은, 푸른 초원과 침엽수림이 함께 어우러진 보기 드문 풍경을 자랑한다. 수온이 약 36~40℃에 이르며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 여행 중 피로를 풀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눈 속의 불, 물 속의 별, 쳉헤르 온천에서의 하룻밤

쳉헤르 온천까지는 100Km. 멀지 않은 거리라 여유롭게 기상하여, 천천히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9시경 출발하였다. 아, 노정의 아름다움이여! 끝이 휘어져 아스라이 멀어지는 길만 보면 늘 가슴이 뛰었는데, 길이 없는 몽골의 길은 예측불가능한 창조주의 손길을 본떼있게 보여주며 몽환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저 눈밭에서 할매들은 흥에 겨워 한 명씩 한 명씩 대지의 신에게 기쁨을 바치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얼마나 자발적이고 경외로운 공연이었던가, 이를 지켜본 신들은 아시리라!

영하의 혹한 속, 밑둥을 강물 속에 잠근 채 ‘아야, 추워’ 한 마디도 내뱉지 않고, 깊은 침묵으로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저 나무들을 보라! 명상하는 목신들이다.


혹한, 강 속의 밑둥, 침묵 속에 명상하는 목신들!


점심이 어중간하다. 화장실을 쓸 수 있는 슈퍼에 들러 고기만두와 간식거리를 사서 간단하게 푸르공 레스토랑을 이용했다.


쳉헤르 온천. 이 지역도 숙박지가 자꾸 늘어나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여행 때 묵었던 곳이라 또 다른 정겨움에 혼자 설렌다. 몽골에는 ‘몸이 아플 땐 초원 위의 물이 낫게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온천은 오랜 전통의 자연요법이다.


나의 해마 속엔 참 행복한 쳉헤르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은하수 짙던 재작년 어느 가을의 캄캄한 밤, 탕에서 만난 내몽골 가수와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했었다. 연극인 출신이던 가이드는 몽골 가요를, 내몽골 가수는 중국 노래를, 나는 우리 민요를 순서대로 부르며, 뜨거운 물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밤하늘을 깨뜨렸다. 유목의 숨결과 별빛이 함께 어우러진 몽골 한복판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인드라의 그물처럼 씨줄과 날줄로 얽혔었지.


즐거운 기억으로 짐을 내리고 바로 입욕을 시작했다. 눈을 보며 즐기는 온천이라니! 뜨거운 물과 차가운 눈, 그 경계에 몸을 담그니 신체의 일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느낌이다. 따뜻한 물과 하얗게 쌓인 눈 사이, 조용한 비일상적 치유의 시간, 증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에 잠겨 순간 넋을 놓고 명상의 순간으로 들어간다. 위로와 포용, 치유와 생명의 싹이 튼다.


정신적으로 크게 아팠던 십여 년 전 어느 겨울, 홋카이도 호헤이교의 산속 노천탕. 옆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과 수증기 속에서 몇 시간을 울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를 온전히 덮어주던 숲의 어둠, 함께 울어주던 산새의 슬픈 울음, 흰 터번을 쓴 채 우는 나를 내려다보던 소나무들, 그리고 심이 뾰족한 노란 연필로 써 내려갔던 나에게 보내는 연서! 그 길로 분연히 일어섰고, 귀국해서 정신적 고통이었던 직장에 복귀했고, 나를 괴롭히던 이를 용서했다. 용서란 묘한 것이어서, 용서한 순간 악연이 끊어지고, 상대는 내 삶에서 사라져 버린다.


저녁은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곁들였다.


탕 안에서 마시는 보드카는 위험하다!

본 건물에서만 와이파이가 되길래, 리셉션에 앉아 밀려 있던 온라인 강의를 듣고, 과제 제출하고, 남이는 부산50+생애재설계대학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별이 그리 빛나진 않았지만 거친 바람과 뜨거운 탕 안에서 2차로 별의 기운을 받는다. 물속에 떨어진 별과 물에 들어간 나의 정신적 혼욕! 천천히 가는 시간과 깊은 고요 속에서 몸과 마음을 동시에 데우며, ‘온기’에 대해 성찰한다. 천천히 스며듦.


새벽 2시. 사위는 조용하고, 나도 내일을 위해 이 호사를 멈추어야겠다. 유황 성분 덕분에 피부가 미끄러진다. 우리 젊은이들, 단체팀이 들어오더니... 저 젊은이는 무슨 사연으로 저리도 술을 마시고 이 추운 겨울,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는가! 도무지 일어서질 못하니 일단 리셉션의 소파에라도 눕혀보려고 친구들이 애를 쓰고 있다. 칭기스 칸이나 골든 고비 등 몽골의 보드카를 얕잡아 보면 큰일 난다. 도수가 40도 가까이 되며, 특히 뜨거운 탕 안에서 마시는 보드카는 정말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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